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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앳킨스가 말했다 "완벽한 것들을 의심한다"

에드 앳킨스는 테이트 브리튼 전시로 지난 15년의 작업을 회고한 뒤, 무엇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지 자문했다.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열린 국내 첫 개인전<1 day in space>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첫 대답이다.

프로필 by 이경진 2026.09.25

지난해 출간한 책 <Flower>를 흥미롭게 읽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CGI 비디오와 퍼포먼스, 연극으로 구현한 작품의 핵심 구조 역시 글에서 시작한다고 말해왔다. 이번 전시 역시 글쓰기에서 시작했나

<Flower>에서 내가 ‘메크(Mech)’로 들어가는 대목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도피로서, 어떤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전시다. 나는 항상 책이 멋진 사물이라고 생각해 왔고, 내 작업의 상당수는 이론을 읽는 데서 나온다. 내 작업이 나와 나의 역사, 매체에 대해 말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케치북이나 노트를 쓰지 않는다. 구상을 위한 드로잉도 거의 하지 않는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고, 어떻게 하라는 요구도 받지 않기에 순전히 즐겁다. 글쓰기는 내게 사유의 방식이다.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환상으로 그리며 생각한다.


서울에서 여는 첫 개인전에 신작을 들고 왔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지난 15년의 작업을 회고하는 전시를 끝낸 시점에 새 작품을 만나 기쁘다. 이번에는 아날로그적 전략을 기반으로 예술 언어를 재구성했는데 이 전시를 통해 무엇을 보고 싶었나

무빙 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 전시의 중심이 되는 ‘패시브 메크(Passive Mech)’는 타임랩스 영상 작품이다. 무빙 이미지의 역사에 관한 일종의 에세이이자 나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패시브 메크’를 위해 덴마크 셸란 섬에 있는 여름 별장 마당에 골판지 무대를 세우고 한 달간 무너지는 과정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1분마다 한 프레임씩 찍은 4만 3200장의 사진이 영상으로 재생된다. 이전 작업과 이어지는 실마리가 있다면

2년 전, 1920년대 프랑스 무성영화의 한 장면을 가져와 영화의 음향효과를 만들어내는 폴리 아티스트와 작업했다. 애초에 아무 소리도 없던 화면에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사운드트랙을 입히는 일이었고 그것이 무빙 이미지와 역사, 소리와 몸에 대해 말하는 방법이 됐다. 동시에 이것을 개인 관계로 끌어당기고 싶어서 집에서 촬영했다. 나는 늘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는데, 타임랩스 역시 투박하고 기초적인 애니메이션이다. 그것이 지닌 아날로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화면에 담긴 연극 무대는 아일랜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한 달 동안 수많은 프레임이 지나가는 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또 모든 것이 바뀌는, 그런 걸 만들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오랫동안 집착해 온 여러 가지에 두루 걸쳐 있으면서도 만져지는 듯한, 아날로그한 작업이 된 것 같다.


4세 아들이 우연히 찍은 사진을 재료로 삼은 조각 작품.

4세 아들이 우연히 찍은 사진을 재료로 삼은 조각 작품.

‘패시브 메크’ 화면에 등장하는 골판지 무대 형상뿐 아니라 이번 전시에는 골판지 부조 작품이 많다. 아이들과 무언가를 함께 만들고 칠한 것, 아이가 실수처럼 찍은 사진도 보이더라. 예술가의 작업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이다

아이들에게서 온 만들기의 언어, 내가 깊이 관심을 둔 것에서 온 연극의 언어 그리고 건축의 언어를 결합했다. 타임랩스 촬영을 위해 여름 별장 마당에 세운 구조물은 아이들과 함께한 만들기 작업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변화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대상을 찾고 있었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무엇인지 알기 힘든 모호한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기초적인 구조나 모양을 가지고 고전적 형식을 실험했던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 같은 작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파리지앵의 비석이나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우주 구조물도 떠올렸다. 레퍼런스는 다양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귀결되지 않길 바랐다.


‘패시브 메크’에서 ‘보는 권한’을 가진 카메라의 위치가 딸의 방 창가다. 가족과의 시간에 매우 밀착된 작품인데

내 작업이 삶의 일부라는 건 중요하다. 이 일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가족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나는 삶의 여러 국면과 내가 만들고 싶은 것 사이에서 경계를 느끼지 않는다. 결국 이 작품에서 골판지 무대는 무해한 형상, 하나의 등장인물에 가깝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목격되고 동시에 무언가를 목격하고 세계를 받아들이는 존재.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빛의 에드 앳킨스. 지난해 펴낸 책 <Flower>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에 대해 진실인 건 무엇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게 이렇게 많고,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데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빛의 에드 앳킨스. 지난해 펴낸 책 <Flower>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에 대해 진실인 건 무엇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게 이렇게 많고,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데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골판지 무대 구조물은 작품 속 등장인물이지만, 이전 작품들을 관통하던 대리인(아바타)과는 다르다. 얼굴이 없고 말하지도 않는다. CGI 작업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스캔해서 연기하던 방식을 비롯해 그간 해온 방식을 내려놓았다

나를 조금 뒤에 두고 싶었다. 물론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고, 내가 느끼는 방식을 가로막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 작업에서 여전히 자화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물은 어떤 면에서 자화상이 될 수 있다. 사물에서 자신과 닮은꼴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나 자신을 향해 나를 연기하는 나르시시즘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최근 작품을 보면 그런 방식에서 빠져나온 것 같고, 그런 면에서 타임랩스 작품 속 골판지 구조물이 꽤 명시적이다

그렇다. 나처럼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나처럼 느껴지며, 분명 부분적으로는 나의 일부다. 마치 집처럼. 나는 그것을 차라리 나무 같은 것에 가까운 무언가로 생각한다. 곁에 있는 어떤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시 한 번 양가적이길 바랐다. 그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상하기를, 그 안에 약간의 상실을, 어떤 달콤함과 부패를, 또 어떤 고요함을 품고 있는 것이기를 바랐다.


이 작업이 당신의 일부라는 생각은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알았나

이상하게도 이 작업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것이 스스로를 만들도록 허용하는 데 있었다. 그저 설치하고 내버려뒀다. 무언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내 생각을 많이 캐묻지 않는다. 나중에 ‘아, 그렇지!’ 하고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작업이 일종의 실험이기에, 무언가를 가로막지 않고 신뢰하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작업을 알아가는 중이다. 아주 새로운 작업이라서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몇 번쯤 전시하고 나서 그것을 다르게 혹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골판지 조각과 놀이를 재료로 삼은 작품들.

아이들과 함께 만든 골판지 조각과 놀이를 재료로 삼은 작품들.

방대한 스틸 이미지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 제작한 유니크 프린트 연작도 함께 선보였다. 편집 작업을 즐기고, 작품의 완성보다 ‘만드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어떤 장면을 골라내려 했나

4만 장이 넘는 스틸은 전문가용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낱장 프레임 하나하나가 테라바이트 단위의 대용량 고화질 사진이다. 이것을 무빙 이미지로 만들면 각각의 이미지가 24초 분의 1 동안만 화면에 보인다. 사진이 지닌 엄청난 디테일을 포착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관람자는 구조물이 무너지고 해의 그림자가 변하는 등의 큰 변화만 보게 된다. 그 어떤 프레임을 꺼내도 온전한 한 장의 사진이 된다는 것, 그게 좋은 발상이자 계획이었다. 선별은 그저 훑어보며 흥미로운 것, 변화가 드러나는 것, 주의를 기울일 만한 걸 찾는 작업이었다. 이웃집 고양이가 와서 앉거나, 까마귀들이 구조물 꼭대기에 일렬로 앉아서 1분쯤 머문 장면도 있다.


한 이미지가 24초 분의 1만 보인다는 건 인간의 눈으로 붙잡을 수 없는 속도 아닌가. 그러면서 동시에 계절이라는 긴 단위의 시간도 함께 표현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시간 영역을 다 갖고 싶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 사람들이 죽는 것, 부모가 되는 것, 무언가 자라는 걸 지켜보는 것. 타임랩스 영상 속은 봄이다. 겨울에서 완연한 초록으로 변한다. 이 모든 움직임을 스틸 이미지로 담는 일은 시간을 늦추는 또 다른 방법인 것 같다.


'Passive Mech’( 2026).

'Passive Mech’( 2026).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지난 15년간 펼쳐온 당신의 작업과 분명히 다르다. 전환의 계기가 있나

큰 기점은 지난해 테이트 브리튼에서 연 전시였다. 일종의 회고전이었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 지점이 됐다. 15년치 작품들이 모두 자랑스러웠지만,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같은 것 하지 않는 이들이다. 계속 움직이고 변할 수 있는 사람들.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정말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하는 물음과 함께 다시 시작했다.


그럼에도 에드 앳킨스의 지난 작품들이 말했던 감정, 만져지지 않는 것들, 기술과 재현, 자아의 관계가 전부 들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핵심이다. 표현하고 싶은 방식이 달라진 것뿐이다. 사실 컴퓨터로 작품을 만들기 전에 시골 풍경을 많이 찍었다. 자연을 찍어 여러 형태와 리듬으로 편집하곤 했다. 그러니 이 새로운 작품들도 어쩌면 약간의 회귀인 셈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전시를 꾸리기 위해 뒤 돌아보도록 떠밀린 결과랄까. 처음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들을 기억해 냈다. 나는 왜 만드는 일을 좋아하지? 그건 무엇을 위해서지? 기억해 내고 되뇌기 위해 애썼다. 냉소적이거나 무뎌지지 않으려고.


그런 회귀가 물리적으로 드러난 것으로서 이 전시에 선보인 프로타주 세 점이 있다. 구겨진 매트리스에 실크 페이퍼를 대고 손으로 흑연을 문질러 얻은 이미지다

나는 이 전시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생각했다. 프로타주, 필름, 골판지를 아울러 확장된 의미에서 사진에 관한 전시로 접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프로타주도 사진이다. 빛의 역할을 압력이 대신할 뿐. 전시의 프로타주 작품에 담긴 선들은 구겨진 매트리스 시트가 가진 지표(Index)의 일부다. 이 작업에서 중요했던 건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직후의 침대를 본뜨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뒹굴었던 침대는 거기 있었던 몸에 대한 기록이고, 거기에 몸이 있었다는 게 사실이라는 것만 알게 한다. 여기에 내재한 우연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실재를 찾고 싶었다. 나는 완벽한 것을 의심한다. 삶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실제 삶을 향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으니까. 삶의 많은 부분은 구성된 드라마나 완벽함, 퍼포먼스로 채워져 있지 않다. 우연한 소음을 비롯한 나머지가 오히려 전부일 수 있다. 우연과 오류, 상실과 부패, 나아가 성장과 변화까지 받아들이는 일이 내게는 완벽한 어떤 것보다 더 흥미롭다.


아이들이 자고 일어난 매트리스 시트를 흑연으로 본뜬 프로타주 작품들.

아이들이 자고 일어난 매트리스 시트를 흑연으로 본뜬 프로타주 작품들.

예술가에게는 저마다 예민하게 포착하고 반응하는 지점이 있다. 당신의 경우, 마땅히 있어야 하지만 부재하는 것 혹은 누군가 눈여겨보지 않는 데 있는 것 같다

그게 예술가로 산다는 것 아닐까? 독일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일의 상당 부분이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것을 오래 들여다보며 시간을 쓰는 것이다. 이런 일이 내게는 점점 더 전부가 돼 간다. ‘더 웜(The Worm)’이라는 작품이 있다. 어머니와 전화로 나눈 이야기가 담겼다. 내가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든 누가 신경 쓰겠나? 하지만 그런 것도 엄연히 삶이다. 삶은 실재하지만 극적이지 않은 디테일로 가득 차 있다. 전통 기독교 신비주의에 ‘신은 곧 당신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모든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에드 앳킨스의 예술을 볼 때면 예술가의 삶과 창작 행위가 이토록 얽혀 있다는 게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번 전시가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코펜하겐으로 이주한 후, 여름 별장을 가진 지는 1년 반 밖에 안 됐는데 내 작품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에겐 주말마다 갈 곳이 생겼고, 심지어 거기엔 컴퓨터와 TV를 비롯해 그 어떤 화면도 없다. 대신 기술이라고는 별로 없는, 손에 ‘만져지는’ 삶이 있다. 여름 별장은 일종의 도피처이자 즐거움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에 방점을 찍는 멋진 루틴이 됐다. 물론 주중의 일상은 완전히 동시대적이지만.


그런 삶이 런던에 있었다면 가능했을까? 삶의 도시를 옮긴 것이 작업 전환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내게 일어난 작업적 전환의 많은 부분이 덴마크로 이주한 데서 왔다. 이곳 사람들은 일을 덜 하고 가족과 친구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진다. 돈을 엄청나게 벌기를 기대하지 않지만 삶의 질은 좋다. 나는 런던에서 많은 것에 냉소적이었다. 우리가 이주한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의 속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코펜하겐에 오지 않았다면 지난 5~6년 동안 만든 작업의 절반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가 뭘 하는지 들여다보고 내뱉는 헛소리는 나를 지탱하지 못한다. 삶이 더 작아지고 조용해지고 느려지는 곳으로 온 것이 정신적으로나 창작적으로 건강한 선택이 됐다.


“가장 비인간적인 곳에서 인간적인 것을 재발견한다”는 아이디어 역시 에드 앳킨스의 작업 전체를 관통한다. 작가로 지내온 시간 동안, 찾고 있던 것을 정말 찾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

어떤 식의 성공이나 발견이 전혀 없다면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발견에는 끝이 없다. 뭔가 끝내고 나면 나는 빨리 다음으로 넘어간다. 압박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을 더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물어볼 질문은 늘 더 있기 마련이고 그건 좋은 일이다. 나는 어느 것에 대해서도 결론에 도달하고 싶지 않다.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에드 앳킨스,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에드 앳킨스,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그렇게 빨리 다음으로 넘어간다면, 이 전시 이후 곧바로 다음에 벌일 작업도 준비돼 있나

이스트 런던의 한 극장 입구에 들어갈 작품을 만들고 있고, 새 책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리고 앨범이 하나 나온다. 덴마크의 오르간 페스티벌에서 오르간과 함께 노래 부르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녹음했고, LA의 한 레이블에서 이걸 발매하기로 했다. 노래라니! 좀 우습지만 말이다. 앨범 제목은 <Welcome to All the Pleasures>이다.


이번 작업을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반대로 지난 15년간의 작업에선 무엇이 보이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15년 혹은 20년쯤 같은 것을 계속 다뤄온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수천 년 동안 해온 이야기다. 존재와 사랑, 죽음,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주의를 기울이는 일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결국 사람들이 알아볼 만큼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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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가 양중산 · GLADSTONE GALLERY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