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허안화 감독 2026 까멜리아상 수상

홍콩 뉴웨이브 영화의 거장 허안화 감독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026 까멜리아상’을 품었다. 부산에서 다시 조명된 그의 오랜 창작 여정과 성취.

프로필 by 이경진 2026.10.07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카메라를 듭니다.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고, 도시의 시간을 기록하고,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습니다. 허안화 감독이 지난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해온 일입니다.


1979년 장편영화 <풍겁>으로 데뷔한 이후 홍콩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해온 허안화 감독. 그의 영화에는 홍콩이라는 도시의 변화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흐릅니다. 특히 감독은 여성의 삶과 관계, 가족과 돌봄, 노년과 상실 같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제 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2026 까멜리아상'을 수상한 허안화 감독과 시상자 샤넬코리아 대표 클라우스 올데거.

제 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2026 까멜리아상'을 수상한 허안화 감독과 시상자 샤넬코리아 대표 클라우스 올데거.


그 오랜 창작의 시간이 올해 부산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6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샤넬과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 제정한 ‘2026 까멜리아상’이 허안화 감독에게 수여됐습니다.


“여전히 영화를 만든다는 것”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개막식 무대에 오른 허안화 감독은 관객과 영화인들의 축하 속에서 트로피를 전달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영화를 만들어온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며 수상의 의미를 전했습니다.


“이 상을 주신 샤넬과 부산국제영화제에 감사드린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영화를 만드는 일이 점점 쉽지 않아진 지금 까멜리아상을 받게 되어 더욱 뜻깊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담담한 말이지만 그 안에는 한 감독이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오랜 세월 영화와 함께해온 감독에게 창작은 경력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 까멜리아상은 그 시간을 기념하는 동시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허안화 감독의 창작을 바라보는 상이기도 합니다.

허안화 감독에게 까멜리아상을 수여하고 있는 샤넬코리아 클라우스 올데거 대표.

허안화 감독에게 까멜리아상을 수여하고 있는 샤넬코리아 클라우스 올데거 대표.


홍콩의 시간을 기록해온 영화인

허안화 감독의 영화 여정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장편 데뷔작 <풍겁> 이후 현재까지 27편의 장편영화와 2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연출했습니다. 그동안 홍콩금상장영화제 감독상을 여섯 차례, 금마장영화제 감독상을 세 차례 수상했으며, <여인사십>(1995)과 <심플 라이프>(2011)를 통해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석권했습니다.


아시아필름어워즈 평생공로상,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베니스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명예 황금사자상) 등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도 꾸준히 영화적 성취를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허안화 감독의 이름을 단순히 수상 기록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영화가 오랫동안 주목받아온 이유는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여성들

허안화 감독은 홍콩 사회의 변화와 그 이면에 놓인 일상의 애환을 포착해왔습니다. 그 시선은 특히 여성 인물을 향할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여인사십>에서는 중년 여성의 삶과 가족을 둘러싼 현실을 바라보고, <심플 라이프>에서는 나이 들어가는 한 여성과 그를 둘러싼 관계를 통해 돌봄과 기억, 존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허안화 감독의 영화 속 여성들은 단순히 이야기의 주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어머니이거나 아내이기 전에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존재합니다. 극적인 사건보다 일상의 표정과 말하지 못한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는 그의 방식은 여성의 삶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제 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2026 까멜리아상'을 수상한 허안화 감독.

제 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2026 까멜리아상'을 수상한 허안화 감독.

동백꽃에서 시작된 ‘까멜리아상’

이러한 영화적 시선은 까멜리아상이 조명하고자 하는 여성 영화인의 창작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샤넬과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 제정한 까멜리아상은 영화 산업에서 여성의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온 여성 영화인의 창작과 성취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이름의 모티프가 된 것은 동백꽃입니다. 부산의 시화이자 샤넬의 설립자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했던 꽃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함께 지닌 동백꽃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의 영역을 확장해온 여성 영화인들의 지속적인 창작 여정을 기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한국의 류성희 미술감독이, 2025년에는 대만의 배우이자 감독인 실비아 창이 수상했습니다. 올해 허안화 감독이 그 뒤를 이으며 까멜리아상의 세 번째 수상자가 됐습니다.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언어를 확장해온 여성 영화인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이번 수상은 의미를 갖습니다.



허안화 감독은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는 사람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영화로 옮깁니다. 시대가 변하고 영화의 방식이 달라져도 자신이 오래 바라봐온 삶의 풍경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방향으로 걸어온 영화인 허안화에게 주어진 까멜리아상. 그것은 한 시대를 대표해온 감독에게 보내는 헌사인 동시에,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한 사람의 창작을 향한 응원이기도 합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영화의전당 및 부산시 일대에서, 제21회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은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열립니다.


Credit

  • 사진 샤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