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공간 디자이너의 집에 이유 없는 물건은 없다

공간 디자이너 김용호 대표의 치밀한 선택과 고민이 깃든 공간

프로필 by ELLE 2026.10.23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어드레스(AADDRESS)'를 운영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공간 디렉터 김용호입니다. 주거부터 상업 공간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며, 공간을 쓰는 사람의 취향과 생활 방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디자인을 고민합니다.

여행을 가거나 낯선 곳을 찾을 때도 소재, 가구의 배치,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시선이 먼저 가요. 저에게 디자인은 특별한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라기보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조금 더 섬세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과 일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가고, 오래 쓸 물건을 고르고, 좋은 가구와 작품을 보는 일이 제게는 일이자 취미입니다.


공간을 소개해 주세요.

서울 도심에 있는 아파트입니다. 제게 집은 쉬는 곳이면서, 좋아하던 디자인과 가구를 좀 더 자유롭게 경험해 볼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이에요. 클라이언트의 집을 만들 때는 목적과 기능, 생활 방식이 먼저지만, 제 집에서는 제 취향과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의 가구와 오브제, 여러 소재가 공존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차분한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 번에 완성된 공간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나며 취향이 쌓이고 조금씩 변해 가는 집에 가깝습니다.


현재 공간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집을 볼 때는 구조를 먼저 봅니다. 이 집은 기둥식 구조라 공간 구성이 비교적 자유롭고, 일반 아파트보다 층고가 높다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창의 위치처럼 쉽게 바꿀 수 없는 조건들도 제게 잘 맞았고요.

무엇보다 거실을 넓게 확장해, 제가 좋아하는 가구와 조명, 오브제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 끌렸습니다.


공간을 처음 꾸밀 때 계획해 둔 이미지나 레퍼런스가 있었나요?

하나의 레퍼런스를 그대로 구현하기보다, 오랫동안 좋아해 온 공간들의 공통된 분위기를 떠올렸어요. 현대적인 건축 공간에 동양적인 무드와 오래된 빈티지 가구가 놓여 있거나, 절제된 공간에 조형적인 조명 하나가 자연스럽게 서 있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미드센추리 디자인과 일본 특유의 절제된 공간 구성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고, 집을 꾸미기 직전에 출장으로 다녀온 아만 방콕에서도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스타일도 하나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미니멀한 공간을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비어 있는 건 선호하지 않고, 빈티지를 좋아하지만 모든 가구가 오래된 물건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제가 원한 건 특정 스타일의 집이 아니라, 서로 다른 취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공간이었습니다.


거실, 침실, 주방, 욕실 등 각 공간의 특징을 알려 주세요.

거실은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입니다. 가구를 많이 놓기보다 각각의 형태와 소재가 잘 보이도록 여백을 둬요. 조명도 천장등으로 균일하게 밝히기보다 스탠드와 간접조명으로 깊이와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침실은 시각적인 자극을 줄이고 가장 차분하게 유지하려 했어요. 흥미로운 요소를 더하기보다 소재의 촉감, 빛의 온도처럼 생활하며 실제로 느끼는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침대도 공간의 분위기에 맞춰 천갈이를 했어요.

주방은 기능적인 편리함과 시각적인 정돈감 사이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전자제품은 시대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서, 2~3년만 지나도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서 인테리어가 금세 오래돼 보이거든요. 그래서 가전은 최대한 숨기고 싶었고, 정수기도 가렸어요. 조금 불편하긴 해도 후회하진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손이 닿는 곳에 두면서, 전체적으로는 복잡해 보이지 않는 구성을 지향해요.

욕실은 아만 방콕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아, 공사 도중 급하게 디자인 방향을 수정한 공간입니다. 욕실은 비교적 작은 공간이지만, 그만큼 사소한 디테일이 전체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여러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각 소재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도어와 손잡이도 공간의 분위기에 맞춰 새로 제작하며,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디테일을 실험해 봤어요. 새로운 시도가 많았던 만큼 작업하는 과정도 즐거웠고, 결과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공간 중 하나입니다.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은 어떤가요?

외부 일정과 현장 방문이 많아서 집에서는 여유롭게 보내려 하는데, 막상 쉽지 않더라고요. 집에서도 계속 일하게 돼요. 그래서 아예 노트북을 멀리 두고, 침대나 소파에 누워 음악을 틀어 놓고 쉬려고 합니다. 그러다가도 문득 가구 위치를 바꿔 보거나 조명 방향을 조정하곤 하는데, 작은 변화만으로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지금도 재미있어요.

새로운 가구와 디자인을 살펴보는 것도 일상의 일부입니다. 다만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해도 바로 사지는 않아요. 제 공간에 놓였을 때를 상상하며 오래 고민하는 시간이 더 깁니다. 제게 집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영감을 얻는 곳이에요.


집을 꾸밀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균형'이 있다면?

서로 다른 요소가 만들어 내는 자연스러운 긴장감입니다. 모든 가구와 소재를 비슷한 스타일로 통일하면 정돈돼 보이지만 단조로워지기 쉬워요. 저는 성격이 다른 요소가 함께 있을 때 공간이 더 흥미로워진다고 느낍니다. 현대적이고 간결한 구조에 세월의 흔적이 있는 빈티지 가구를 놓거나, 따뜻한 원목 옆에 차가운 금속을 두고, 직선적인 가구와 유기적인 형태의 오브제를 함께 두는 식이죠.

중요한 건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강조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강하면 공간이 쉽게 질리거든요. 저는 오래 보고 싶은 집을 원했어요. 각자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균형입니다.


가구와 작품을 하나의 장면처럼 배치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개별 가구보다 전체 장면을 먼저 그립니다. 어떤 가구가 예쁜지보다, 그 가구가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더 중요해요. 구조와 동선,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살펴 주요 가구의 위치를 정하고, 중심이 될 가구나 조명을 고른 다음 나머지를 하나씩 더해 갑니다. 이때 너무 채우려 하지 않아요. 채워서 예쁜 것보다 비워서 예쁜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특히 가구 사이의 거리와 비워 둔 면적의 비율을 중요하게 봅니다. 좋은 가구라고 반드시 중심이 될 필요는 없고, 존재감을 조금 덜어냈을 때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해요.


다른 사람의 공간을 만드는 일과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어떻게 달랐나요?

클라이언트의 공간에서는 사용하는 사람의 취향과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게 먼저입니다. 디자이너의 취향을 보여 주기보다 그 사람에게 가장 잘 맞고 오래도록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 집에서는 더 자유롭게 실험했어요. 이전에 클라이언트께 제안드렸지만 선뜻 선택하기 어려워하셨던 소재를 제가 먼저 써 보고 직접 보여 드리고 싶었고, 해 보지 않은 것도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 공간이 일종의 실험실이었던 셈이에요. 꼭 실용적이지만은 않은 요소도 과감하게 시도했습니다.

그렇다고 더 쉬웠던 건 아닙니다. 좋은 디자인과 공간을 많이 접하다 보니 선택지가 너무 많았고, 무엇을 선택하지 않을지 정하는 일이 더 어려웠어요.


무엇을 들이고 무엇을 덜어낼지, 결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유행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좋아할 수 있을지를 먼저 봅니다. 디자인이 뛰어난 물건과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물건은 다를 때가 많아요. 유명한 디자이너의 가구라도 제 공간이나 생활 방식에 맞지 않으면 들이지 않고, 특별한 브랜드가 아니어도 형태와 소재, 비례가 마음에 들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공간에 이미 있는 것들과의 관계입니다. 새 물건이 들어왔을 때 기존의 가구와 오브제가 더 잘 보이는지, 서로의 존재감을 방해하는지를 따져 봐요. 좋아하는 것을 모두 소유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들 중 무엇을 남길지 고르는 과정이 취향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공간 디렉터로 일하며 쌓인 경험이 집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아마 조명 디테일이 아닐까 싶어요.

조명은 공간을 밝히는 기능을 넘어 소재의 질감과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요소입니다. 어디를 비추는지, 빛을 반사하는 면인지 흡수하는 면인지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지고, 빛의 강도도 분위기에 큰 영향을 줘요. 그래서 조명 설계에 특히 신중했고, 모든 조명을 디밍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낮과 밤에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중요하게 봤고요.


각별한 애정을 가진 가구나 오브제가 있다면?

지금은 침대가 아닐까 싶어요. 미국 킹사이즈라 크기도 상당히 큰 편입니다. 사실 미국에서 가져올지 말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배송비도 많이 들었고, 가져오더라도 집의 분위기에 맞춰 천갈이를 해야 했거든요. 그래도 이상하게 애정이 가는 가구라 결국 가져오게 됐습니다.

이번에 천갈이를 하면서 몇 가지 기능도 추가했어요. 침대 양옆에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도록 충전기를 매립하고, 누운 상태에서 조명을 바로 끌 수 있도록 스위치도 설치했습니다. 크기도 크고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간 가구지만, 그만큼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최근 구매한 아이템과 앞으로 갖고 싶은 아이템은?

최근에는 Lasvit의 Miles Floor Lamp를 들였어요. 가구 스타일링도 병행하다 보니 여러 편집숍을 자주 다니고, 자연스럽게 할인 행사 소식도 빨리 접하게 되거든요. 덕분에 좋은 가격에 만날 수 있었는데, 집에 들이고 나니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쏙 듭니다.

갖고 싶은 건 너무 많지만, 가격을 따지지 않는다면 Valentin Loellmann의 다이닝 테이블이에요. 처음 보자마자 감탄했을 만큼 아름다워서, 제겐 '꿈의 테이블'입니다.


공간을 정의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1. 균형 (Balance): 서로 다른 시대와 스타일, 따뜻한 소재와 차가운 소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

2. 시간 (Timeless): 유행보다 시간이 흘러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공간. 오래된 물건과 새로운 디자인이 함께하며 시간의 층위가 쌓이는 공간.

3. 여백 (Negative Space): 모든 곳을 채우기보다 비워 둔 부분을 통해 가구와 오브제의 아름다움이 더 잘 드러나는 공간.


끝으로, 앞으로 공간에 더하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지금의 집을 완성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취향과 생활 방식이 변하듯 집도 자연스럽게 변해야 하니까요. 마음에 드는 가구나 작품을 하나씩 더할 수도, 가진 것을 덜어낼 수도 있겠죠.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디자인이 어떻게 달라지고, 그 변화가 공간에 어떻게 담기는지 지켜보는 것도 기대됩니다.

좋은 집은 처음 완성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집이 아니라, 오래 살수록 점점 나에게 맞아 가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집을 특정한 스타일로 완성하기보다, 제 취향과 시간이 자연스럽게 쌓여 가는 공간으로 남겨 두고 싶습니다.

Credit

  • 사진&글@yongho.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