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으로 튀르키예를 다 봤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
걸음마다 시대가 달라지는 이스탄불, 느긋한 이즈미르, 수천 년의 시간이 남은 고대 도시까지. 튀르키예에서 만난 다채로운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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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수백 년의 시간이 쌓인 건축물일 수도 있다. 오래된 건물의 벽에 겹쳐진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 수천 년 전 누군가도 밟았을 돌길, 올리브나무 사이로 낮은 돌집과 골목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모습까지. 언뜻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한 권의 책처럼 이어지는 풍경에 튀르키예를 여행하는 동안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떠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에서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보고 지나온 도시들의 이야기를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들려주듯, 튀르키예에서 만난 서로 다른 풍경을 차례로 꺼내본다.
겹쳐진 도시, 이스탄불
6세기 동로마 제국의 성당으로 세워져 여러 시대의 종교와 역사를 품어온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의 내부 공간.
이스탄불은 몇 걸음만 옮겨도 시대가 달라진다.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중심이었던 역사 지구에는 히포드롬, 아야 소피아, 예레바탄 사라이가 걸어서 닿을 거리에 모여 있다. 한때 전차 경주가 열리던 히포드롬, 6세기에 세워진 아야 소피아, 도시의 물을 저장하던 예레바탄 사라이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을 차례로 만날 수 있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 도시의 물을 저장하기 위해 조성된 지하 저수조 예레바탄 사라이.
다양한 식료품을 만날 수 있는 스파이스 바자르.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그랜드 바자르와 스파이스 바자르가 등장한다. 수천 개의 상점이 미로처럼 얽혀 카펫부터 수공예품, 향신료, 식료품이 빼곡하다. 15세기 중반부터 이어진 이 시장의 풍경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이 사고, 먹고, 흥정하는 활발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느리게 흐르는 에게해
석조 주택과 부티크 호텔, 해변이 이어지는 알라차트.
쉬린제 마을 전경.
오래된 와인 문화와 미식이 이어지는 우를라.
올리브나무 사이로 돌집과 좁은 골목이 이어지고, 길을 따라 작은 식당과 공방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우를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올리브와 와인 문화를 바탕으로 한 팜투테이블(farm-to-table) 미식을, 알라차트에서는 잘 보존된 석조 주택과 부티크 호텔, 거리의 레스토랑과 해변이 어우러진 한적한 휴양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즈미르 셀축 지역의 쉬린제에서는 오래된 집과 올리브밭, 포도밭 사이로 마을의 일상이 이어진다. 직접 만든 잼과 과실주, 올리브오일을 파는 작은 가게를 지나 골목을 걷다 보면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걷기보다 천천히 거닐며 이곳의 여유를 즐기게 된다.
돌길 위에 남은 고대 도시
셀수스 도서관과 고대 극장 등 로마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에페소스.
극장과 경기장, 아고라와 교회가 남아 있는 고대 도시 라오디케이아.
돌로 닦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도서관과 극장, 신전과 집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에페소스는 로마 시대 소아시아의 주요 도시로 번성했던 곳으로, 오늘날에도 셀수스 도서관과 고대 극장, 하드리아누스 신전, 테라스 하우스가 당시 도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데니즐리의 라오디케이아에서도 고대 도시의 흔적은 이어진다. 긴 대로를 중심으로 극장과 경기장, 목욕 시설, 아고라와 교회가 자리해 하나의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작동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실제로 걷고 모였던 길 위에 다시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자연과 시간이 만나는 파묵칼레
온천수가 오랜 시간 빚어낸 새하얀 석회층의 파묵칼레.
온천을 중심으로 발달한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
새하얀 석회층 사이로 온천수가 흐르고, 그 위로 고대 도시가 이어진다. 파묵칼레의 독특한 풍경은 칼슘 성분을 품은 온천수가 지표를 흐르며 오랜 시간 만들어낸 것으로, 계단처럼 겹쳐진 흰 지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이룬다. 그 곁에는 기원전 2세기부터 온천을 중심으로 발전한 히에라폴리스가 자리한다. 고대 극장과 종교 시설, 목욕 시설이 남아 있고 지금도 온천수가 흐른다. 자연이 빚은 풍경과 사람이 세운 도시가 한자리에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곳에서는 수천 년이라는 시간이 조금 더 실감 나게 다가온다.
Credit
- 사진 튀르키예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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