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섹스 불황 시대, 달라진 욕망에 관하여

자고 싶은 마음만으로 밤을 내주기에는 시간도, 평온도, 안전도 귀해졌다. 섹스보다 더 희소한 것이 많아진 시대의 욕망에 관하여.

프로필 by 박찬 2026.10.10

‘Z세대는 섹스를 포기하고 있다. 어쩌면 그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난 7월 <뉴욕 타임스>에 실린 칼럼의 제목이다. 섹스를 덜 하는 세대를 두고 걱정하는 대신, 글은 조금 낯선 질문을 던진다. 정말 섹스를 덜 하는 게 문제일까. 미투운동 이후 동의와 경계에 대한 감각은 더 예민해졌으며, 연애나 섹스 밖에서 친밀감을 얻는 방법도 많아졌다. 삶에서 섹스가 차지하던 자리가 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읽다 보니 ‘섹스 불황(Sex Recession)’이라는 오래된 표현도 다시 눈에 들어왔다. 2018년 <디 애틀랜틱> 저널리스트 케이트 줄리언이 젊은 세대의 성관계 빈도 감소 현상을 다루며 널리 알린 말이다. 8년 전 ‘불황’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저널리스트 카터 셔먼은 이를 ‘성적 매력의 덫(Fuckability Trap)’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나는 아직 남들이 자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를 확인하게 되는 덫이다. 잘 나온 사진을 올리고 반응을 살피거나 데이팅 앱에서 몇 명과 매칭되는지 은근히 신경 쓴다. 누군가 나를 원한다는 사실은 꽤 즉각적인 매력의 증명이니까. 그런데 여기서 묘한 일이 생긴다. 상대가 나를 원한다는 사실은 좋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상대를 원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얼마 전의 소개팅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 옷에 신경 썼고, 향수도 일부러 센슈얼한 향으로 골랐다. 다행히 분위기는 좋았다. 2차까지 갔는데 밤 11시가 되지 않았고, 그는 좀 더 프라이빗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가도 된다는 말도 슬쩍 던졌다. 이 신호를 못 알아들을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다. 그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다음은 내키지 않았다. 호텔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퀴퀴한 베개 냄새까지 미리 맡은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다음 장소 대신 집에 갈 택시를 잡았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섹스어필이 된다는 사실은 좋았지만, 그 매력을 굳이 섹스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게 정말 나만의 변화인지 궁금했다. 곧장 20대 중반부터 30세까지, 주변 네 명의 여성에게 물었다. 요즘도 누군가와 자고 싶은 마음이 들면 기꺼이 그 다음까지 가는지, 아니면 대체 무엇이 발목을 잡는지.


30세 캐주얼 의상 디자이너 A씨의 사례다. 그는 최근 자신의 취향과 꽤 거리가 있는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다. 열 살이나 많았고, 소년적이고 청량한 인상을 좋아하는 A의 평소 이상형과도 부합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저 술자리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했다. 연애할 사람인지 따질 필요가 없으니 그 정도의 호감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남자가 진지하게 만나자고 하니까 이야기가 달라졌다. 막상 ‘남자친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니 그동안 대충 넘긴 것들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정적인 건 두 번째 데이트였다. 남자는 그날도 당연히 함께 밤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본가에 사는 A가 외박하기 어렵다고 하자 왜 안 되는지, 정말 방법이 없는지 몇 번이고 물었다. “내 스타일도 아닌데, 굳이 이 사람의 성욕에 내가 맞춰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때 확 정이 떨어졌죠.” 한 번 잤다는 사실에 마치 다음 섹스까지 약속한 것처럼 구는 그의 태도도 싫었다. 두 사람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이후 A는 ‘지금 자고 싶은가’ 보다 ‘자고 난 뒤에도 만나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자고난 뒤에도 만날 만큼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27세 IT 업계 종사자 B는 섹스를 일종의 ‘기회비용의 결과물’로 표현했다. 누군가와 밤을 보내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감정을 소진해야 한다. “풀 세팅하고 나갔는데 내가 원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B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건 밤을 보내는 방식이기도 했다. 예전보다 몸을 챙기고 술을 덜 마시면서 처음 보는 사람과 충동적으로 가까워질 일도 줄었다고 했다.


실제로 NH농협은행의 데이터에서 올해 상반기 20대의 일반 주점 이용 건수는 2023년 같은 기간보다 52%나 줄었다. 특히 자정 이후 이용 건수는 40% 넘게 감소했다. 물론 술과 섹스를 곧바로 인과관계로 묶을 수는 없지만, 술은 평소라면 한 번 더 생각했을 사람에게 다가가게 하고, 예상치 않은 친밀함이 생길 시간을 만들어왔다. 진지한 연애로 이어진다고 해서 기회비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더 많은 시간과 감정 소비가 필요하다. 가볍게 끝나면 상처가 남고, 잘되면 기회비용은 더 커지는 셈이다.


지금 한국 청년에게 이 비용은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 · 중국 · 일본 · 미국 · 스페인 5개국의 18~39세 미혼 청년을 비교한 최근 조사에서 한국 응답자의 55.4%가 연애에 관심 없다고 답했다. 다섯 나라 가운데 가장 높았고, 한국 여성은 60.8%였다. 취업과 커리어, 주거만으로도 빠듯한 일상에 누군가를 들이려면 시간과 감정을 따로 떼어낼 수밖에 없다.


한편 29세 간호사 C에게는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 비교적 가벼운 성병이 발견돼 짧은 기간 동안 병원에 다녔다. 치료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 일을 겪고 난 뒤 섹스를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상대가 멀쩡해 보이는 거랑 안전한 사람인 건 아무 상관이 없더라고요.” 성교육자이자 작가 에밀리 나고스키는 저서 <Come as You Are>에서 성적 반응을 자동차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에 빗댔다. 욕망을 일으키는 자극만큼 스트레스와 불안, 위험에 대한 감각도 성적 반응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C는 성병을 겪은 뒤 그 브레이크가 훨씬 민감해졌다. C는 요즘 연애를 시작하기 전 성병검사 결과를 서로 확인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고 했다. 성병검사 여부와 피임에 대한 태도까지 연애 조건이 된 셈이다.


더욱이 여성이 섹스에서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성병만이 아니다. 피임 실패와 임신, 불법 촬영, 교제 폭력과 스토킹까지 있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가정 폭력 · 교제 폭력 · 스토킹 등 3대 관계성 범죄 112 신고는 43만 건이 넘어 전년보다 23.1%나 증가했다. 그만큼 섹스 전에 명확히 확인해야 할 것이 많아진 것이다. ‘싫다’고 했을 때 멈출 사람인지, 콘돔을 쓰자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계가 끝난 뒤 집요하게 연락하지 않을지는 한두 번의 만남으로 알기 어렵다.


사람을 믿는 일 자체가 전보다 어려워졌다고 느낀 적도 있다. 얼마 전 C는 친구와 혼술 바에 갔다가 옆자리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말을 걸어온 남자는 적극적이었고, 직접 차로 맛집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공주님’. “친구랑 동시에 봤어요. 공주님? 누구지?” 아내인지, 여자친구인지, 딸인지는 끝내 모른다. 다만 그 순간 C는 사람을 몇 분 만에 알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25세 대학생 D는 이 셋 가운데 가장 어린 동시에 가장 참신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좋은 섹스와 나쁜 섹스를 구분하기도 전에 애초에 섹스를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성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요. 그걸 해결하려고 굳이 누군가를 만나야 하나 싶어요.”


D는 보이 그룹과 아이돌을 좋아한다. 스마트폰을 열면 좋아하는 얼굴도 보고, 무대도 찾아보고, 팬들과 이야기도 나눈다. “현실에서 누군가를 보면 쉽게 설레지 않아요.” 물론 이걸 ‘아이돌을 봐서 눈이 높아졌다’고만 정리하면 지금의 팬덤을 절반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거다. 미디어 속 인물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친숙함과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는 라이브 방송과 팬 플랫폼이 일상화되면서 훨씬 촘촘해졌다.


흥미로운 건 현실 연애에 무관심한 젊은 여성이 늘어나는 동안 로맨스와 욕망까지 시들해진 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웹소설과 웹툰에서는 로맨스와 BL 같은 여성향 장르가 활발하게 소비되고, 팬덤 안에서는 팬픽과 ‘RPS(Real Person Slash;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가상 연애 장르)’가 이어진다. 설렘과 욕망을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진 것이다.


A는 한 번 자고 난 뒤에도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기 어려웠고, B는 불확실한 즐거움을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고 느꼈다. C에게는 한번 알게 된 위험이 있었고, D에게는 섹스하지 않아도 충분히 채워지는 삶이 있었다.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네 사람에게 공통적인 건 욕망 하나가 다른 모든 조건을 밀어낼 만큼 힘을 잃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섹스 불황 시대’에서 정말 희소해진 건 섹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람은 앱을 켜면 계속 나타나지만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시간, 함께할 때 안전하다는 확신,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얻을 수 없다.


희소한 것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섹스를 뒤로 미루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내 시간과 평온, 안전과 기준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을 만큼 궁금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다시 기꺼이 스스로의 밤을 내어줄까. 아직 호텔에도 가지 않았는데 베개 냄새부터 떠올리는 계산조차 잊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 앞에서는 이 많은 이유가 다시 사소해질 수 있을까.

Credit

  • 에디터 박찬
  • 사진가 BJARNE X TAKATA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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