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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가 10년 만의 화보로 전하는 말 "꿈을 꾸세요. 어떤 꿈이든 좋아요"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너 하고 싶잖아’ 그래요. 그럼 해야 돼요!” 김혜자가 여기 있다. 65년간 수많은 얼굴과 목소리를 지나, 자신 그대로의 이름으로.

프로필 by 전혜진 2026.10.05

“김혜자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나라도 저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에게 내가, 아니 모든 여편네들이 씐 것처럼 오싹해질 때가 있다. 저런 연기의 깊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혹시 드라마 밖에서 그녀는 힘이 다 빠져 무기력하게 지내는 건 아닐까, 궁금해하곤했다.” 소설가 박완서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추천사에 이런 글을 적었다. 연희동, 김혜자의 오랜 삶의 터전에서 오래전 읽었던 이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절로 오싹해졌기 때문이다. 저 작은 사람 안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여자의 삶이 들어 있나 하는, 그런 경외감으로. “박완서 선생님이 어떻게 나를 그렇게 잘 아셨을까? 혹시 선생님도 나 같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분께도 여쭙고 싶네요.”


그렇다. 그녀는 65년 동안 자신의 것보다 더 많은 타인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온 배우다.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딸이었으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이었고, 때로는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여자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런 김혜자에게 84년의 삶을 말로 정리해 달라는 건 어쩐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아직 모르는 것, 여전히 두려운 것 그리고 여전히 기다리는 것을 묻기로 했다. 화보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선 것은 10년 만, 작품 밖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엘르>와 마주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녀의 삶 어딘가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삶에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김혜자가 여기 있다. 이것은 65년 연기 인생에 대한 헌사도, 84년 삶의 회고도 아니다. 아직 연기하고, 아직 기다리고, 아직 설레고, 아직 살아가는 한 여자의 오늘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그녀의 말을 그대로 남긴다. 김혜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보다 지금 그녀가 자신의 언어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에.


페더 디테일의 벨벳 재킷은 The Row. 새틴 드레스는 Erdem. 앵클부츠는 Lemaire. 왼쪽 귀에 착용한 여섯 개의 페어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세르티 수르 비드’ 이어 커프는 Repossi.

페더 디테일의 벨벳 재킷은 The Row. 새틴 드레스는 Erdem. 앵클부츠는 Lemaire. 왼쪽 귀에 착용한 여섯 개의 페어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세르티 수르 비드’ 이어 커프는 Repossi.

배우로서 65년을 살아왔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생경한가요

제 얼굴과 마주하는 건 여전히… 그렇죠(웃음). 사진도 그렇고, 인터뷰는 항상 조심스러워요. 되도록이면 안 하려 하죠. 이번에는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 홍보도 있고 해서 했는데, 잘한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오랫동안 살아온 연희동, 그중에서도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애정으로 설계한 연희정음에서 촬영했습니다. 이 소식에 동네 분들도 무척 기뻐하더군요. 선생님에게 연희동은 어떤 터전인가요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어요. 좋으니까 살아요. 촬영장이 연희동이라 친근하고 편안했어요. 지나다니던 곳들도 지금 눈에 보이네요. 우리 동네는 무척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제가 외출은 잘 안 하고 집에만 있기 때문에 누구를 만날 일이 별로 없는데요. 가끔 동네 분들을 골목에서 뵐 때가 있어요. 서로 보고 웃어요. 그게 우리 인사예요. 그리고 곧 단풍이 예쁘게 물들겠죠.


화이트 셔츠는 Bottega Veneta. 블랙 재킷은 Jacquemus. 핑크골드에 1.49캐럿 페어 컷 다이아몬드와 총 2.51캐럿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블라스트’ 펜던트 네크리스는 Repossi.

화이트 셔츠는 Bottega Veneta. 블랙 재킷은 Jacquemus. 핑크골드에 1.49캐럿 페어 컷 다이아몬드와 총 2.51캐럿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블라스트’ 펜던트 네크리스는 Repossi.

그러잖아도 선생님댁 3층에서는 사계절이 한눈에 보인다죠

사계절이 모두 보여요. 마당에 우뚝 선 나무와 꽃이 변해가는 시간들까지, 다 보죠.


지난해 다큐멘터리 <혜자의 뜰>을 통해 얼핏 살펴봤지만, 요즘 선생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요즘 자주 하는 일 혹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면요. 작품 속 누군가의 삶이 아닌, 아주 즐거운 김혜자의 삶이 궁금합니다

저는 강아지들과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림도 그려요. 미대를 나왔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또 공상으로 가끔 시간을 보내요. 공상은 제한이 없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얼마든지 펼칠 수 있죠. 그래서 공상은 늘 즐거워요. 요즘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우리 영화가 관객에게 닿을, 그 시간이에요.


오버사이즈 벌룬 핏 코트는 Balenciaga. 포플린 라운드 드레스는 Alaïa. 이너 홀터넥 드레스는 Etro.

오버사이즈 벌룬 핏 코트는 Balenciaga. 포플린 라운드 드레스는 Alaïa. 이너 홀터넥 드레스는 Etro.

<길> 이후 9년 만에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로 관객을 만납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했던 단짝 친구를 60년 만에 마주하는 여자 순옥의 이야기더군요. 선생님은 이 작품을 어떤 이야기로 이해하셨나요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예요. 우리들의 슬픈 역사고요. 그럼에도 작품 속 아이들이 참 아름다워요. 꽃 같은 소녀들의 꿈과 찬란했던 순간들, 소중한 우정… 그런 이야기들. 그 소녀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모든 분이 영화를 보면 저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어요.


그건 어떤 마음일까요? 늘 작품 선택에 신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무엇이 선생님의 마음을 붙잡았습니까

그저 내 마음이 움직였어요. ‘하고 싶다’ 이렇게…. 이 영화가 그랬거든요. <여전히 찬란하게> 시나리오를 보기 전에 송일곤 감독님의 편지를 먼저 받았어요. 그 감독의 아내와 잘 알거든요. 그 사람을 통해 송 감독님 이야기를 가끔 들었는데요. 그때마다 이상하게 ‘저 사람은 남자인데도 참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그런 선입견이 있었죠. 그의 편지도 그렇더라고요. 제가 영화는 잘 안 하니까 시나리오는 많이 못 받지만, 이건 느낌이 달랐어요. 가슴이 약간 이상하고…. 그것이 왜 그런가 했더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라 그랬죠. 그걸 너무 아름답게, 또 가슴 뭉클하게 표현했고요. ‘아! 이런 거는 내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젊은 아이들이 많이 봤으면 해요. 제 연기를 보고, 그때를 상상해 보고, 좋은 마음으로 극장에서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요.

카디건은 Loro Piana. 밀 이삭 모티프의 ‘에피 드 블레 드 쇼메’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는 Chaumet.

카디건은 Loro Piana. 밀 이삭 모티프의 ‘에피 드 블레 드 쇼메’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는 Chaumet.


이토록 오랜 시간 연기한 배우와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까 궁금해집니다. <여전히 찬란하게>를 만들며 송일곤 감독과 오래 이야기한 것은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영화 속 과거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 말이죠. 감독님은 섬세하고 정확하게 디렉팅을 해주는 분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나이가 많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걸 알까? 예를 들어 엔딩 장면에 한 대사가 있는데요. 현장에서 곧바로 수정해서 줬어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 마지막 대사에 정말 많은 의미가 포함돼 있어요. 큰 감정을 섞지 않아도 돼요. 여러 감정이 숨어 있어요. 가엾다, 어떡하니, 고맙다, 사랑한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 이래서 감독을 하는구나’ 했어요. 저는요, 그때 이 감독이 관객에게 어떤 감정과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 알겠더라고요. 좋았어요. 저도 같은 마음이었거든요. 감성이 섬세하고 좋은 감독인 것 같아요.


선생님은 이 작품을 통과하며 무엇을 품었습니까? 그리고 관객은 무엇을 품고 돌아가길 바라나요

저는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나라가 힘이 없던 시절, 과거의 어린 소녀들이 너무 가여워요.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그 세대의 아픈 이야기를 잘 기억해 주고, 현재에 감사하면서 착한 마음으로 살면 좋겠어요. 관객 모두 영화를 보고 난 후 좋은 영향력이 돼주면 좋을 테고요.


브라운 니트 카디건과 스커트, 슈즈는 모두 Loro Piana. 18K 옐로골드 네크리스는 Chaumet.

브라운 니트 카디건과 스커트, 슈즈는 모두 Loro Piana. 18K 옐로골드 네크리스는 Chaumet.

65년을 연기해도 새로운 작품의 촬영과 공개는 여전히 설레거나 두렵나요? 김혜자는 자신의 작품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바라보나요

촬영 전에는 내가 이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공개를 앞두고는 설레기도 하지만, 걱정도 많이 돼요. 내가 이 역할을 잘해냈는지…. 촬영하는 순간만큼은 에너지를 다 쏟았으니까 두려움은 없어요.


선생님을 뵙기 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20여 년 만에 다시 펼쳐 봤습니다. 1992년부터 소말리아와 케냐, 르완다, 인도, 라오스 등을 오가며 만난 아이들과 여성에 대한 기록이죠. 표지 속 선생님의 얼굴도 한참 들여다봤어요

저의 60대 시절이네요. 그때는 ‘어떻게 하는 게 잘 사는 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 마음을 실천하고 싶어서 많이 움직였어요. 아프리카 아이들도 만나고.


페더 디테일의 벨벳 재킷은 The Row.

페더 디테일의 벨벳 재킷은 The Row.

배우는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 몸과 시간이 고스란히 기록되는 직업이에요. <전원일기>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를, <마더>에서는 익숙한 모성을 섬뜩할 만큼 낯선 곳까지 밀어붙였으며, <눈이 부시게>에서는 노년의 얼굴에 한 사람의 청춘을 겹쳐 보였습니다. 아주 젊은 김혜자부터 지금의 김혜자까지 화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감각은 어떤가요

젊은 날의 어떤 부분은 ‘진짜 한심하구나’ 하고, 또 어떤 부분은 ‘어? 이런 생각도 했네, 이런 감정도 표현했네? 기특하구나’ 그렇게 생각하지요. 화면 속에 고스란히 기억되는 일이란, 글쎄요. 감사하지만 저만 간직하고 싶기도 해요.


아직도 연기하면서 정말 모르겠다 싶은 게 있나요? 혹은 지금 비로소 알게 된 것도 있을까요? 늘 정답은 배우가 아닌, 연기한 ‘그녀’들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모르는 감정은 없어요. 오래 살았으니까요. 다만 어떻게 표현해야 빙 두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죠. 맞아요. 그건 연기한 ‘그녀’가 가장 잘 알아요.


카디건과 스커트는 모두 Loro Piana. 바람에 흔들리는 밀 이삭에서 영감받아 18K 옐로골드에 0.84캐럿 상당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41개를 세팅한 ‘에피 드 블레 드 쇼메’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는 Chaumet.

카디건과 스커트는 모두 Loro Piana. 바람에 흔들리는 밀 이삭에서 영감받아 18K 옐로골드에 0.84캐럿 상당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41개를 세팅한 ‘에피 드 블레 드 쇼메’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는 Chaumet.

단 한 번이라도 연기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그럼에도 다시 카메라 앞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 배우로 살아오게 한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럴 때도 있죠. 내 생각이 창조적이지 않을 때입니다. 생각하기 싫고, 쉽게 하고 싶고, 더 이상 발전이 없을 때. 그냥 꼭꼭 막혀서 ‘아, 이제 안 되겠구나’ 해요. 근데요,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너 하고 싶잖아’ 그래요. 그럼 해야 돼요!


오랫동안 ‘국민 어머니’로 불렸지만 정작 김혜자는 요리나 살림과 꽤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수많은 역할과 대중이 붙여준 수식어를 모두 떼어내고 스스로를 바라본다면, 김혜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그냥 보통 엄마예요. <전원일기>에서 보는 엄마 같은 모습도 있으니까요. ‘국민 엄마’도 맞지요.


블랙 재킷은 Jaquemus. 화이트 셔츠는 Bottega Veneta. 니트 스커트는 Lemaire. 슈즈는 Ferragamo. 왼쪽 새끼손가락에 착용한 다이아몬드 세팅 ‘블라스트’ 링, 핑크골드에 1.49캐럿 페어 컷 다이아몬드와 총 2.51캐럿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블라스트’ 펜던트 네크리스는 모두 Repossi.

블랙 재킷은 Jaquemus. 화이트 셔츠는 Bottega Veneta. 니트 스커트는 Lemaire. 슈즈는 Ferragamo. 왼쪽 새끼손가락에 착용한 다이아몬드 세팅 ‘블라스트’ 링, 핑크골드에 1.49캐럿 페어 컷 다이아몬드와 총 2.51캐럿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블라스트’ 펜던트 네크리스는 모두 Repossi.

긴 인생을 지나오면서 결국 오래 남는 건 무엇이던가요? 성취, 사랑, 사람 혹은 전혀 다른 무엇일까요? 젊은 김혜자는 몰랐지만 지금 김혜자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성취 속에 사람도 들어가고, 사랑도 들어가죠. 젊었을 때는 내가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그건 나쁜 게 아니에요. 나를 발전시키니까요. 나이 먹을수록 나보다 가족이 중요하죠. 그리고 이 또한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에요. 둘은 같은 이야기입니다. 내가 중요한 게 가족이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 꿈을 꾸세요. 어떤 꿈이든 좋아요.


영화 제목을 빌려 묻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삶에서 ‘여전히 찬란한 것’은 무엇입니까

저에게 여전히 찬란한 건,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남는 거! 많은 사람에게 좋은 배우로 기억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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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피처 에디터 전혜진
  • 에디터 손다예
  • 사진가 장덕화
  • 헤어 아티스트 이지은
  •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 어시스턴트 박지오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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