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팔로마 울의 디자이너가 펼치는 독특한 세계

안감을 바깥으로 꺼내고, 어른의 유니폼에 봉제 인형을 매단 디자이너. 팔로마 울의 팔로마 라나를 만났다.

프로필 by 김이지은 2026.10.28
팔로마 울의 2026 F/W 캠페인 이미지.

팔로마 울의 2026 F/W 캠페인 이미지.

옷의 안쪽을 바깥으로 꺼낸 디자이너가 있다. 지난 10월 4일, 파리 메종 드 라 시미(Maison de la Chimie) 살롱에서 열린 팔로마 울의 2027 봄 여름 쇼에는 평소라면 보이지 않을 안감이 주인공으로 나섰다. 안감은 짧게 잘려 상의가 되고, 가느다란 끈에 매달린 러플 장식으로 변신했으며, 때로는 드레스 한 벌이 됐다.


옷 밖으로 삐져 나온 안감이나 시스루 상의 아래로 드러난 브래지어처럼 자칫 실수로 보일 법한 장면도 모두 의도된 연출이었다. 감춰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디테일을 오히려 디자인의 중심에 내세운 것이다. 쇼 직후 인터뷰에서 팔로마 라나는 옷의 내부 구조를 탐구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고, 이를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옷의 안과 밖을 구분하던 익숙한 규칙이 그녀의 손에서 새롭게 바뀐 셈이다.


PALOMA WOOL 2026 F/W

PALOMA WOOL 2026 F/W

한편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펼쳤다. 단정한 테일러드 룩에 커다란 푸시아 핑크 리본과 봉제 인형을 더한 것. 어른의 옷차림에 어린아이의 장난스러운 감성을 끌어들인 이 컬렉션에는 팔로마의 경험이 담겨 있다. 시작은 2018년, 팔로마 라나가 홀로 파리 출장길에 올랐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녀는 작은 여우 인형을 가방에 넣어 다녔다. 낯선 도시에서 홀로 일정을 소화하던 시절, 어린아이처럼 인형을 곁에 두었던 기억이 시간이 흘러 컬렉션의 영감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됐다고 어린 시절의 감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단정한 재킷 위에 매달린 봉제 인형과 커다란 리본은 어른과 아이의 모습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두 시즌이지만 익숙한 옷차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둘은 서로 닮아 있다. 이처럼 익숙한 옷차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팔로마에게 패션은 어린 시절부터 친숙한 세계였다.


'팔로마 울'의 디자이너 팔로마 라나.

'팔로마 울'의 디자이너 팔로마 라나.

그녀의 부모는 1980년대 스페인 패션 브랜드 나이스 띵스(Nice Things)를 설립했고, 부모가 옷을 만들고 브랜드를 운영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패션을 접하며 성장한 그녀는 2014년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출발한 팔로마 울은 처음부터 옷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사진과 예술,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창작활동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공간에 가까웠다.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에게 먼저 협업을 제안하고, 오랜 친구들과 함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브랜드는 어느덧 파리 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선보일 만큼 성장했다. 규모는 달라졌지만 다양한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려는 태도는 여전하다. 2023년 10월 파리 패션위크 공식 일정에 처음 이름을 올린 이후, 팔로마 라나는 파리에서 일곱 번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공식 일정에는 늘 ‘프레젠테이션’으로 등록하지만 매 시즌 자신만의 방식으로 쇼를 연다는 사실이다. 정해진 형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태도는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027 S/S 쇼 피날레에 등장한 팔로마 라나.

027 S/S 쇼 피날레에 등장한 팔로마 라나.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옷을 입는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팔로마 라나가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방식이다. 파리 패션위크를 마친 팔로마 라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옷의 안과 밖을 뒤집은 2027 봄 여름 컬렉션부터 어른의 옷차림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한 2026 F/W 컬렉션까지. 그녀가 옷을 만드는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생각 그리고 팔로마 울이 그려가는 세계에 관하여.


PALOMA WOOL 2027 s/s

PALOMA WOOL 2027 s/s

쇼 오프닝을 장식한 곡은 브랫 스타(Brat Star)의 ‘마고 테넌바움(Margot tenenbaum)’이었다. 브랫 스타의 음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한동안 브랫 스타의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힘을 빼고 건조하게 발음하는 무심한 보컬,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전자음 등 자꾸 듣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정말 자주 들었고, 그만큼 좋아했다. 음악은 팔로마 울의 세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컬렉션을 선보일 때도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다만 이번에는 음악이 단순히 쇼의 배경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랐다. 음악을 컬렉션과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싶었다. 브랫 스타의 ‘마고 테넌바움’은 영화 <로열 테넌바움>에서 기네스 펠트로가 맡은 역의 이름이다. 그녀는 극중에서 자신의 세계와 스타일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주제로 한 곡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 가사를 가방과 슈즈에 새긴 것도 인상적이다

‘Insecure and pretty’ ‘It’s everyone’s problem’ ‘In a corner, always sulking’ 같은 구절을 새겼다. 각각 ‘불안하고 자신감은 없지만 예쁜’ ‘그건 모두의 문제야’ ‘구석에서 언제나 토라져 있는’ 의미다. 가사를 가죽 위에 새긴 건 음악을 옷과 액세서리로 끌어들이는 나만의 방식이다. 음악을 컬렉션의 일부로 만들고 싶었다. 마치 좋아하는 노래의 한 조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팔로마 울의 2026 F/W 컬렉션. 2026 F/W 쇼 피날레.

팔로마 울의 2026 F/W 컬렉션. 2026 F/W 쇼 피날레.

2026 F/W 쇼 피날레.

2026 F/W 쇼 피날레.

이번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은 어떤 생각에서 출발했나

출발점은 자카르와 실크, 두 소재였다. 이 소재를 어떻게 반복하고 겹쳐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특히 옷을 수평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에 집중했다. 아주 짧은 크롭트 톱과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대비시키고, 여러 겹의 원단으로 몸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을 강조했다. 이런 구조는 옷의 재단과 비율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쇼가 진행될수록 점점 투명한 소재가 등장하면서 겹쳐진 옷의 안쪽 구조까지 드러나도록 했다. 옷을 겹쳐 입는 방식뿐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구조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파리에서 컬렉션을 선보이지만, 브랜드 거점은 여전히 바르셀로나다. 바르셀로나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나에게 바르셀로나는 집 같은 곳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오랫동안 함께해 온 사람들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건 내 삶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팔로마 울을 처음 시작한 곳이자 지금도 우리 팀이 함께 일하는 곳이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브랜드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 바르셀로나다.


PALOMA WOOL 2027 S/S

PALOMA WOOL 2027 S/S

패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게 작업에도 영향을 미칠까

바르셀로나에 머물다 보면 자연스럽게 패션 업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다. 나는 오히려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패션계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꼭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사람들이 많다. 아트 디렉션을 맡아온 카를로타 게레로(Carlota Guerrero), 10대 시절부터 뮤즈였던 베트 칼리에리(Bet Callieri)도 그중 하나다. 이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나는 언제나 친구들 그리고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서로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단단한 관계도 쌓아왔다. 이제 이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를 넘어 내 삶에서도 무척 중요한 사람이 됐다. 팔로마 울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물론 개인적인 삶에서도 이토록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PALOMA WOOL 2027 s/s

PALOMA WOOL 2027 s/s

2026 F/W 컬렉션에는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 않은 감각이 담겨 있다. 지금도 그런 순간을 느끼나

물론이다. 가끔 어른이 된 것 같다가도, 내 안에 여전히 어린아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지금도 하나씩 배워가는 중인 것 같다. 어른이 됐다고 모든 걸 알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다 문득 두 딸의 엄마이자 한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실감나면 ‘내가 정말 어른이 됐구나!’ 싶다. 그런 순간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신의 이름이 곧 브랜드이다. 그만큼 개인적인 이야기가 작업에 스며 있을 텐데, 브랜드에 드러내지 않는 모습도 있나

팔로마 울에는 내 생각과 취향이 담겨 있다. 가끔 일과 개인적인 삶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브랜드를 통해 보여준 모습이 내 전부는 아니다. 아직 드러내지 않은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다. 앞으로 팔로마 울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수 있을지 기대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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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희수 · 김이지은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 COURTESY OF PALOMA W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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