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로 빚어낸 이탈리아의 삶
이탈리아 아트 글라스 브랜드 베니니가 서울에 첫 단독 부티크를 열었다. 한국을 방문한 실비아 그라시 다미아니 회장이 말하는 베니니의 헤리티지와 가치.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1921년 밀라노 출신 변호사 파올로 베니니와 베네치아의 골동품상 자코모 카펠린이 설립한 베니니는 카를로 스카르파, 지오 폰티, 풀비오 비안코니,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거치며 20세기 유리 예술의 기준이 됐다. 다미아니 그룹은 2020년 베니니 인수를 완료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비아 그라시 다미아니는 다미아니 그룹을 ‘이탈리아 문화의 큐레이터’라고 말한다.
다미아니 그룹 부회장이자 베니니 회장인 실비아 그라시 다미아니.
베니니의 첫 단독 매장이 오픈했다. 한국 고객들이 어떤 경험을 했으면 하는지
베네치아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경험하길 바란다. 매장 천장에 일렁이는 형태의 거울을 배치해 베네치아의 물결과 색감이 연상되도록 했고, 현지 건축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베니니의 시그너처 컬러 ‘로쏘 베네치아’를 적용해 도시 특유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또한 베니니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고자 아트 라이트 컬렉션과 아이코닉한 아트 글라스 컬렉션을 다채롭게 셀렉션했다. 발로톤(Balloton), 데코(Deco), 파촐레토(Fazzoletto) 같은 상징적인 작품으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잘 보이도록 했으며, 다양한 소재와 컬러를 고를 수 있는 맞춤 제작 공간도 마련했다. 베니니라는 브랜드를 이해하면서 집처럼 편하게 즐기도록 만들고 싶었다.
베니니의 첫 번째 부티크인 현대백화점 무역점 부티크.
주얼리 하우스에서 나고 자랐는데, 베니니를 인수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베니니는 내 유년 시절부터 늘 가까이 있었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베니니 컬렉터였고 늘 애정을 갖고 지켜보았다. 아트 글라스 분야에서 베니니만큼 특별한 브랜드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카이브의 깊이가 남다르고, 카를로 스카르파부터 풀비오 비안코니, 안도 다다오, 피터 마리노까지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해왔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들이 보였다. 우리가 인수하면 이탈리아 전통을 지키면서 베니니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다미아니와 베니니 두 브랜드 사이에서 다양한 시너지의 가능성을 보았다. 특히 두 브랜드가 같은 고객층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생각했는데 이러한 시너지는 현재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무라노 장인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있다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형제들과 베니니를 인수한 후 공방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매료되었다. 이때까지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하고 흥미로운 소리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장인들의 소통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서로 눈빛으로 소통했다. 숙련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언어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들을 마에스트로라고 부른다. 마에스트로는 여러 뜻을 갖고 있는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며 선생님이라는 뜻도 된다. 무라노 장인들은 그 얼굴을 모두 갖고 있다. 그들은 지금의 기술에 절대 안주하지 않는다. 마에스트로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낸다. 그들의 인내와 끈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베니니에는 125가지의 독자적인 컬러 팔레트가 있는데 하나의 색으로 표현한다면
베니니 레드다. 그런데 베니니 안에서도 레드는 하나가 아니다. 서로 다른 다섯 가지 셰이드가 있다. 레드 계열은 24K 골드를 써야 하기에 유리 제작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비싼 작업이 필요한 컬러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로고에서도 알다시피 레드는 베니니를 상징하는 컬러이기도 하고.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보나
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 때 색은 단순히 형태를 장식하는 요소가 아닌 디자인을 새롭게 표현하고 혁신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나의 작품에서도 서로 다른 색을 사용하거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작은 베이스 하나만으로 공간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듯이, 색은 내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
100년의 아카이브를 가진 브랜드는 과거에 갇힐 수도 있는데
아카이브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아카이브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의 아티스트들도, 앞으로의 아티스트들도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아야 하며 동시에 디자이너들이 아카이브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도전할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고 본다.
주얼리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경험이 베니니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공통점이 많다. 다미아니도 베니니도 불을 다룬다. 주얼리를 만들기 위해 금을 녹이고, 유리공예는 유리를 녹이고 불어 형태를 만든다. 불로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정 자체가 비슷하다. 그리고 금세공사도, 아트 글라스 메이커도 둘 다 마에스트로로 불린다. 두 브랜드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이 무척이나 행복하고 동시에 자부심을 느낀다.
수많은 아티스트, 장인들과 함께 일해왔는데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좋은 디자인이란 그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과거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 경험들을 통해 작품이 탄생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남을 수 있어야 한다. 베니니의 오래된 작품들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을 기록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60~7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연식으로 보면 빈티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갖고 싶은 것, 그것이 좋은 디자인이다.
이탈리아의 예술적 유산을 지키는 것도 브랜드의 역할이라고 보는지
베니니를 인수하는 것은 이탈리아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수 후에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보존하는 일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인하우스 박물관은 물론 세계 각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도 다양한 전시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탈리아 예술은 물론 이탈리아만의 독특한 장인 정신과 전통적인 제작 방식 역시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이를 소개하고 이어가는 것이 이탈리아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트 글라스와 라이팅 중 특별히 확장하고 싶은 영역은
아트 라이트와 아트 글라스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자 한다. 아트 라이트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대형 호텔 프로젝트와 함께 협업할 경우 공간 자체에 많은 제품이 필요하기에 매출과 규모가 성장할 수 있다. 다양한 하이엔드 브랜드 매장과 협업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손수건 형태에서 영감 받은 베니니의 시그너처 화병인 파촐레토.
수많은 베니니의 피스가 있을 텐데 가장 좋아하는 하나의 피스를 고른다면
하나만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레드 파촐레토다. 레드 컬러의 큰 사이즈의 파촐레토는 베니니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작품이기도 하고 특히 파이어 레드 컬러는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들게 한다.
베니니의 회장이자 다미아니 그룹의 부회장으로 한국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단히 중요한 시장이다. 다미아니는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그룹의 워치·주얼리 리테일 브랜드 로카(Rocca)도 9월 18일에 청담에 문을 연다. 한국은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나라이자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도 많은 영감을 주는 곳이다. 그런 한국 고객들이 다미아니를 아껴주는 것에 늘 감사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미아니 그룹이 이탈리아 스타일, 혹은 이탈리아의 럭셔리 선택지를 큐레이션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Credit
- 프리랜서 에디터 김지후(미디어랩)
- 사진 브랜드 제공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