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은 철공소는 어떻게 가게나우가 되었나
세계적인 하이엔드 주방가전 브랜드 가게나우의 340여 년 역사를 관통한 것은 다름아닌 ‘손끝의 정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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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러형 냉장고와 와인 셀러를 나란히 매립해 거대한 건축적 주방을 완성할 수 있는 ‘바리오 쿨링 400 시리즈’.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 가게나우(Gaggenau)는 원래 독일의 검은 숲(Black Forest) 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 이름이다. 1683년 8월 9일, 이 일대를 다스리던 루드비히 빌헬름은 이곳에 철공소를 세웠고, 못과 단조 철물을 만들던 작은 공방은 340여 년 뒤 세계적인 하이엔드 주방 가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340여 년 사이 이들이 만든 물건은 여러 번 바뀌었다. 바뀌지 않은 것은 금속을 다루는 손, 그 손에 요구됐던 정밀함의 기준이었다. 가게나우 연표에는 주방과 무관해 보이는 시기가 여럿 있다. 자전거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고, 법랑 간판을 만들던 시절도 있었다. 자전거 제조는 사람의 몸이 지닌 스케일에 맞춰 치수와 비례를 정하는 법과 손이 닿는 부분을 다르게 마감하는 노하우를 남겼을 것이다.
‘2026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가게나우는 빌라 네키 캄필리오의 유리 파빌리온에서 가전 제품을 건축의 구성 요소로 다룬 설치미술 작품 ‘프레즌스(Presence)’를 선보였다.
오늘날 가게나우 오븐의 문을 열면 마주할 수 있는 블루 컬러는 행인의 눈을 붙들기 위해 개발된 법랑 간판용 유약에서 왔지만, 이제는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 오븐 안쪽에 칠해져 있다. 1956년, 가게나우는 아이레벨 빌트인 오븐과 독립형 쿡탑 그리고 환기 시스템을 내놓았다. 브랜드는 이를 시장 최초로 기록한다. 아이레벨 빌트인 오븐은 사용자의 움직임을 바꿨다. 오븐이 눈높이로 올라오면서 우리는 선 채로 조리 과정을 보게 됐고, 무언가를 오븐에 굽는 동안에도 등 돌리지 않은 채 주방에 있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쿡탑과 환기 장치를 오븐에서 분리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해다. 주방을 각각의 기능을 가진 부분들의 조합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이때 시작됐고, 60여 년 뒤 완전히 통합된 모듈형 시스템인 400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모듈’은 주방 전체의 언어가 됐다.
파란색 에나멜로 마감한 내부가 드러나는 하이엔드 빌트인 오븐 라인업 ‘오븐 400 시리즈’. 상부 후드 없이 조리대 상판과 완벽한 수평을 이뤄 탁 트인 개방형 아일랜드 주방 구조를 완성해 주는 ‘400 시리즈 플렉스 인덕션 쿡탑’.
1960년대 말에 완성된 가게나우의 로고는 바우하우스의 조형 언어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원칙을 그대로 옮겨왔다. 유럽 최초의 90cm 오븐, 완전 자동 세척 기능을 갖춘 스팀 콤비네이션 오븐, 모듈형 400 시리즈의 완성까지. 나열하면 기술 경쟁의 기록 같지만 전제는 항상 같았다. 새로운 기능은 실제로 요리하는 사람의 손끝에서 검증돼야 한다는 것. 스펙으로 앞서는 것보다 조리대 앞에 선 사람의 동작이 실제로 달라지는지를 먼저 확인했던 가게나우의 ‘최초’들은 대부분 이미 하고 있던 일의 조건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683년 대장간의 망치질에서 오늘의 통합 쿠킹 시스템까지, 이 브랜드가 오래 붙들어온 것은 안목을 가진 사람만 알아보는 디테일과 매일의 의식을 조금 더 높은 자리로 격상시키는 경험이다.
그 사이 우리가 요리를 대하는 태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을수록 좋다고 여기던 시기를 지나 썰고 굽고 끓이고 나누는 반복 자체를 의식처럼 여기는 흐름이 자리 잡았다. 가게나우가 오래전부터 오븐이나 쿡탑이 아니라 경험을 판다고 말해 온 지점과 겹친다. 국내에서 가게나우는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디벨로퍼가 공간의 완성도를 위해 선택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었다. 하이엔드 레지던스와 타운하우스, 프리미엄 아파트 등이 준공될 무렵이면 가게나우의 쿠킹 시스템은 이미 그곳의 주방 안에 들어가 있었고, 일반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최근 가게나우는 국내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주요 백화점 매장을 통해 리테일 네트워크를 확대하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가게나우에게 럭셔리란 ‘값비쌈’이 아니라 절제된 확신이다. 1683년 대장간의 망치질에서 시작해 오늘날 정밀하게 통합된 쿠킹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가게나우는 단 한 번도 보여주기 위한 화려함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안목을 가진 사람만 알아보는 디테일, 매일의 의식을 격상시키는 경험을 택했다. 그것이 340년이 넘는 시간을 관통해 지금까지 이어져온 가게나우의 방식이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박경혜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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