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식구의 이야기와 풍경을 품은 4m 층고의 구축 아파트
복층과 옥상, 아치형 구조까지. 사람 셋과 반려동물 넷이 함께 살아가는 23년 된 아파트의 유쾌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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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네 살, 저와 꼭 닮은 아이를 키우며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고 있는 김도희입니다.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지만, 아이를 만나면서 지금은 엄마의 역할에 집중하며 지내고 있어요.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집안일을 하고, 그날그날 달라지는 집의 표정을 사진으로 담곤 합니다. 남편과 아이가 돌아오면 함께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하루를 채워가고 있어요.
평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을 가꾸고 기록하는 일을 좋아하게 됐어요. 가구나 물건의 자리를 바꿔보기도 하고, 계절이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집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SNS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 하나와 반려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지만, 저희 부부는 오랜 시간 쌓아온 단단한 취향을 바탕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모아가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제가 추구하는 공간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공간을 소개해 주세요
저희 집에는 남편과 저, 네 살 난 딸 샘이와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세 마리가 함께 살고 있어요.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함께한 강아지와 결혼 후 인연이 된 고양이 세 마리, 그리고 2023년에 만난 샘이까지, 어느새 일곱 식구가 되었답니다. 아무래도 조금 많은 것 같죠? (ㅎㅎ)
식구가 많다 보니 전셋집을 구하는 게 참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집 마련’을 꿈꾸게 됐고, 작년에 저희 가족의 첫 집을 갖게 됐죠. 첫 집인 만큼 더 애정을 쏟아가며 고쳐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고요. 꼭 일 년을 채운 시점에 이렇게 집을 소개하게 되어 저도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저희 집은 서울에 자리한 23년 된 구축 아파트예요. 23년 동안 단 한 번도 수리한 적이 없어 그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던 집이었죠. 이미 같은 동네의 깨끗한 신축 아파트를 몇 군데 둘러본 뒤였지만, 이 집을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현재 공간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우선 독특한 레이어를 보여주는 구조에 한눈에 반했어요. ‘구축 아파트’ 하면 흔히 떠오르는 투베이 구조가 아니라, 거실-다이닝룸-주방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재미있었고, 그 레이어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장면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물론 수리 전에는 다이닝룸이 아닌 ‘다용도실’이었던 공간이지만요. (ㅎㅎ)
무엇보다 순정 상태 그대로였기 때문에 오히려 미련 없이 말끔히 걷어내고, 저희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유였어요. 이미 완성된 집에 저희의 생활을 맞추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가족의 생활 방식과 취향을 담아 고칠 수 있었던 거죠. 덕분에 집의 구조와 동선부터 수납, 가구와 소재까지 저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 더 세심하게 반영할 수 있었어요.
거실의 높은 층고와 보너스 스테이지처럼 느껴지는 복층, 우리 가족만 사용할 수 있는 옥상 공간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었어요. 사실 그 전에 살던 전셋집도 복층에 테라스가 있는 집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음 집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 집은 복층과 옥상 공간은 물론, 층고 높은 거실까지 갖추고 있었어요. 막연하게 꿈꿔왔던, 조금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집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 개인적으로는 남향집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과 노란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서향 창을 선호한다는 모순을 품고 있었는데요. 이 집은 거실 창이 남향을, 다이닝 창이 서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답니다.
공간을 처음 꾸미고 채워나갈 때 계획해둔 이미지나 레퍼런스가 있었다면?
사실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집’을 꿈꿔왔던 터라 공간별 레퍼런스는 늘 준비되어 있었어요. 활용해보고 싶은 마감재도, 꼭 구입하고 싶었던 조명들도 이미 정해져 있었고요. 다들 인테리어는 ‘선택의 연속’이라 힘들다고들 하는데, 저는 오히려 시작할 때부터 선택지가 꽤 좁혀져 있던 셈이랄까요.
특히 주방을 꾸밀 때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꾸민 것으로 알려진 베니스 리도섬 빌라의 주방 사진을 정말 많이 들여다봤어요. 타일의 질감 때문인지 조금 투박하게 느껴지면서도 이상하게 세련된 색 조합이 꼭 제가 만들고 싶었던 주방의 모습과 닮아 있었거든요. 당연히 완전히 똑같은 공간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색 조합이나 타일의 질감 같은 부분은 꼭 가져와보고 싶었죠.
누구나 그렇듯 핀터레스트 속 이미지들도 꽤 참고했지만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 공간에서 받은 영감도 많았어요. 이미 여러 번 본 작품들도 인테리어를 앞두고 다시 돌려보면서, 인물과 스토리보다는 그들이 사는 공간을 더 유심히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나 조명의 위치, 가구의 배치, 벽과 바닥의 소재와 색감, 패턴, 그리고 그 공간에 놓인 식물까지 구석구석 살펴봤어요.
아르텍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잔뜩 나오는 북유럽을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멋진 조명과 공간에 어울리는 식물들이 인상적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러브 앤 아나키>, 그리고 80년대 이탈리아의 어느 집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듯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중에서는 류성희 미술감독이 참여한 작품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아가씨>, <헤어질 결심>, <작은 아씨들>처럼 각 공간의 콘셉트에 따라 색감과 패턴이 짙게 드러나는 비주얼들을 좋아하거든요.
단순히 영화나 드라마 속 공간을 그대로 참고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좋아해온 작품들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제가 어떤 공간과 분위기에 끌렸었는지, 그동안 쌓여온 제 취향을 다시금 확인하고 그 안의 디테일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거실, 침실, 주방, 화장실 등 각 공간의 특징을 간단히 공유해 주세요.
거실&다이닝룸
거실은 4m에 가까운 층고가 가장 큰 매력이에요. 그래서 그 압도적인 높이가 느껴지면서도, 지저분한 물품이나 생활감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계획했어요.
청소용품과 고양이 화장실을 숨기기 위해 기존에는 없던 날개벽을 만들고, 날개벽 사이를 잇는 아치도 함께 만들었어요. 층고가 제대로 느껴지려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시선이 이어지는 벽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날개벽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지요. 기능적인 이유로 만든 벽이지만 거실의 가장 큰 포인트가 되었어요.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날개벽 사이에는 대칭으로 유리블럭과 빈티지 조명을 시공해 빛과 개방감도 더했어요. 거대한 게이트처럼 보이는 탓에 실내이면서도 실외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요.
거실의 한쪽 벽면에는 장식적인 역할이 큰 시스템 선반도 설치했어요. 다들 저를 심미주의자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 저는 꽤나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실용성 없는 선반은 꿈꿔본 적이 없거든요. (ㅎㅎ) 그런데 커다란 벽면을 그냥 비워두기에는 아쉬워서, 이번에는 과감하게 꽤 높은 위치에 선반을 달아봤어요.
손이 잘 닿지 않아 자주 꺼내 쓰는 물건을 올려두기는 어렵다 보니 식물이나 오브제를 올려두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어요. 대신 조명을 함께 설치해 간접적인 빛을 만들어주고, ‘집구석 영화관’의 핵심인 빔 프로젝터도 이곳에 올려두었습니다. 처음에는 장식적인 요소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름의 기능까지 갖춘 공간이 되었어요.
또 주방과 거실 사이에 위치한 다이닝룸은 저희 가족이 매일 저녁마다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이에요. 여기에도 거실과 똑같은 형태의 아치를 시공해 이국적인 느낌이 들도록 했어요. 얼마전 아이의 세 번째 생일상 겸 포토존을 이 다이닝룸에 마련하기도 했어요.
안방
안방은 집 안에서 구조적인 변화가 가장 큰 공간이에요. 출입문의 위치부터 바꾸고, 드레스룸을 만들기 위한 가벽을 세우는 한편, 안방 베란다와의 경계 또한 커다란 창호 대신 가벽과 세로창을 만들어 기존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바꿨죠.
옷이 많은 저희 부부는 드레스룸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어요. 침실이 좁아지게 되긴 했지만, 답답하기 보다는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답니다.
그 시작은 머리맡을 밝혀줄 빈티지 조명이었어요. 마음에 드는 조명을 우연히 빈티지숍에서 만나 구매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스트라이프 벽지와 세로창, 침대 프레임을 차례로 골랐죠. 처음부터 정해둔 레퍼런스가 있었던 방은 아니지만, 하나의 아이템에서 시작된 선택들이 하나둘 이어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 같아 개인적으로 꽤 마음에 드는 공간이에요.
주방
우연히 만난 하나의 아이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안방과 달리, 주방은 처음부터 주된 콘셉트가 정해져 있었어요. 앞서 이야기했던 루카 구아다니노가 꾸민 낡은 빌라의 주방 사진이 바로 그 레퍼런스였죠.
그래서 주방은 어떤 모습으로 꾸밀지보다 ‘공간의 효율’이 더 중요했어요. 이 ‘효율’을 두고 인테리어 업체 대표님과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다이닝룸과 이어지는 구간의 개방감은 어떻게 살릴지, 음식을 만들고 식탁으로 내는 동선은 어떻게 만들지, 대형 가전과 소형 가전은 어떻게 배치해야 제대로 쓰이면서 깔끔하게 보일지, 세탁실과의 동선은 어떻게 연결할지까지 하나하나 따져봤죠.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정사각형의 아일랜드였어요.
이 아일랜드는 정말 야무지게 쓰이고 있어요.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과 식재료를 바로 올려두기에도 좋고, 꺼낸 즉시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로 옮기기에도 좋아요. 주방 옆 세탁실에서 꺼내온 세탁물을 개는 일도 아일랜드에서 한답니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어주고 있어요. 네모 반듯한 이 아일랜드 위에서 같이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베이킹을 하기도 하거든요.
공용 욕실 + 안방 욕실
우리 집 화장실들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쌍둥이나 다름없다는 게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동일한 시리즈의 타일과 같은 세면대 제품을 사용한 공간이라는 걸 설명해야 알아챌 수 있을 정도거든요.
우선 아이와 제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 욕실은 밝고 화사하면서도, 구석구석 알찬 공간으로 만드는 데 애썼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카이블루 컬러의 모자이크 타일과 분홍색 세면대의 조화가 포인트랄까요. 간혹 집에 놀러 오는 분들 중 남자 손님들이 ‘내가 화장실을 쓰는 게 미안할 정도’라고 하실 때도 있어요. (ㅎㅎ) 아이가 사용하기 좋은 반신욕 전용 미니 욕조와 저를 위한 좌식 샤워 공간을 나란히 넣은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실물로 보면 정말 아담한 욕실인데, 제가 하고 싶은 요소들로 정말 꽉꽉 채웠죠.
남편이 주로 사용하는 안방 욕실은 좀 더 빈티지하고 어두운, 묵직한 분위기로 꾸몄어요. 조명의 색온도도 좀 더 노르스름한 타입으로 선택했고요. 타일 사이를 메우는 줄눈 색도 베이지 톤으로 골랐는데, 우스갯소리로 ‘청소 주기 늘려주는 조합’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어둑어둑하고 분위기 있답니다. 빈티지 무드를 좋아하는 남편과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에요.
아이방&작은방
어려운 과제를 받아든 기분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공간이 바로 아이방이에요. 어렸을 적 ‘내 방’에 대한 결핍이 있었던지라 쌓아둔 로망은 많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공간의 진짜 주인은 제 아이이지 ‘어렸을 적의 나’는 아니다 보니 참 고민이 많았죠.
공사가 한창이던 당시 아이는 갓 두 돌을 넘긴, 간단한 소통만 가능한 나이였기 때문에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엄마인 제가 관찰하고 유추해 방을 꾸며주어야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게 아이의 키에 맞춰 설치한 조명 스위치와 가방 걸이였어요.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게’ 설계하면 엄마인 저도 편하고 아이도 즐거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는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고, 자신의 방을 참 좋아한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우드 소재의 가구들과 이 방을 꾸미며 사들인 컬러감 있는 가구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더 재미있는 공간이에요.
아이방 옆에는 '작은 방'이라 불리는 방이 하나 더 있어요. 현재는 키 큰 붙박이장만 덩그러니 있는 공간이지만 차차 꾸며볼 예정이에요. 붙박이장은 코너 형태로 시공했는데, 창 옆으로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가 쏙 들어가도록 공간을 비워두었어요. 언젠가 어릴 적 그림책에서 본 '알프스 소녀의 다락방'처럼 꾸며볼 예정이에요.
복층&옥상
제가 ‘보너스 스테이지’라고 부르는 우리 집 복층은 사실상 남편을 위한 공간이에요. 책장에는 남편의 애장품인 만화책이 가득하고, 바닥 또한 남편이 좋아하는 빈티지한 레드 컬러로 시공했어요. (우리 집은 공간별로 바닥 컬러가 다 다르답니다!) 남편은 이곳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회사 일을 처리하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해요. 본인만의 맥주 냉장고도 가져다두고 쓰고 있죠.
굉장히 낮은 층고에 박공 지붕 형태의 천장이라 공간 활용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공간이 아닐까 해요.
게다가 옥상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 역할도 하고 있어서 저와 아이도 자주 올라가는 공간이에요. 아이는 옥상에서 물놀이, 모래놀이도 하고 비눗방울 놀이도 해요. 날씨 좋은 금요일이면 기름이 마구 튀어오르는 기름진 고기를 마음놓고 구워 먹기도 하죠.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
아이가 함께하는 집이다 보니 아이의 일상에 맞춰서 흘러가는 편이에요. 한창 역할놀이를 좋아하는 샘이를 위해 거실의 소파들은 주로 병원 침대로 변신해, 엄마 환자분과 아빠 환자분은 치료받기 바쁘고요. 이제는 영화관 나들이가 어려워 큰맘 먹고 구매한 빔 프로젝터는 매 주말마다 ‘뽀로로’나 ‘로보카 폴리’를 상영하기 바쁘죠. 제 SNS에서 주로 보여지는 차분한 집의 모습과는 달리, 저희 집 또한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사는 집’ 그 자체예요. 아이 방에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 놀이를 하고, 거실에서는 책을 읽거나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끼적이기 놀이를 해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제야 집 안이 고요해져요. 거실에서 빔 프로젝터로 남편과 함께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해요.
아이와 반려동물이 함께 생활하는 집인 만큼 공간을 꾸밀 때 특별히 포기하거나 타협한 것이 있다면?
사실 특별히 포기한 건 별로 없어요. 아이와 반려동물이 함께 사는 집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건 안 되겠다’고 선을 긋기보다는, 제가 원하는 모습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함께 편하게 살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요.
대신 새로운 가구를 들일 때에는 관리가 쉬운지, 아이가 부딪히거나 반려동물이 다닐 때 위험하지는 않은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정도의 타협은 있었어요.
완벽하게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함께 살면서 조금씩 생겨나는 흔적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하고요. 실제로 우리 집 중문에는 지난 일 년 동안 쌓인 강아지의 발톱 자국들이 있어요. 처음 발견했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언젠가는 우리 강아지가 이 집에 살았다는 흔적이 될 것 같아 괜히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하죠.
공간을 채운 사물 중 각별한 애정을 지닌 가구나 오브제가 있다면?
함께 지내는 네 마리 반려동물의 초상이 그려진 핸드메이드 타일로 만든 홈바 상판에 특히 애정이 있어요. 라트비아에서 델프트 타일을 직접 그려 판매하는 한 작가를 찾아 남편이 직접 제작을 부탁했고,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 타일에 담아 받았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타일을 제가 직접 하나하나 배열하고, 남편이 줄눈을 채워 홈바 상판을 완성했기 때문에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또 집에 들인 마지막 조명이기도 한 샬롯 페리앙의 빈티지 조명도 정말 아끼는 것 중 하나예요. 다이닝룸과 거실 사이의 내력기둥에 설치할 벽조명을 아주 오래 찾아 헤맸는데,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공간에 잘 어울리는 조명을 만나서 볼 때마다 만족스러워요. 같은 디자인의 실버 컬러 제품은 많이 보이는데, 레드 컬러는 흔치 않아서 더 마음에 들었고요. 특히 페어로 구입해 세로로 배치한 것도 참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옆 벽을 타고 흐르는 마다가스카르 자스민의 초록 잎과도 잘 어울리고요.
공간을 정의하는 3가지 키워드는?
취향 / 효율 / 레이어 이 세 단어를 꼽고 싶어요.
먼저 ‘취향’은 저희 부부가 오랜 시간 좋아해온 것들을 집 곳곳에 담았다는 의미예요. 특정한 스타일 하나를 정해두고 꾸며가기보다는, 다양한 분위기를 가진 가구와 조명, 색과 소재를 저희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언젠가 아이가 좀 더 자라 ‘취향’이 짙어지게 되면 아이의 취향도 이 집에 담기는 순간이 오겠죠?
‘효율’은 실제로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공간을 고민했다는 의미로 붙여보았어요. 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떠올리며 동선과 수납, 가구의 쓰임까지 많이 고민했거든요. 사실 이런 부분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예쁜 집’을 꿈꾸기도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더 열심히 고민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키워드 ‘레이어’는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예요. 거실과 다이닝룸, 주방이 이어지는 구조부터 복층과 옥상까지, 한 공간 안에서도 시선과 동선에 따라 여러 장면이 만들어지는, 표정이 많은 우리 집이라 붙여보았어요. 저는 그런 공간의 겹이 만들어내는 재미를 참 좋아해요.
앞으로 이 공간에 더해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집을 한 번 완성해놓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보다는, 살면서 계속 조금씩 바꿔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지금도 가구나 식물, 오브제의 위치를 소소하게 옮기면서 집의 모습을 바꿔가며 지내고 있고요.
7년 전, 호주 멜버른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 숙소 중에 ‘응접실’이 있는 집이 있었거든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여러 개의 소파와 의자, 잎이 크고 초록초록한 관엽식물들로 가득했던 그 작은 공간이 늘 기억에 남아 언젠가 응접실이 있는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응접실’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지만, 우리 집에 그런 공간이 생긴다면 ‘대화’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지금 우리 집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다이닝룸’이 있는 구조인데, 언젠가는 이 다이닝룸에 소파와 작은 커피 테이블을 두고 식탁을 거실로 옮겨보고 싶어요. 그러면 저희 집에도 제가 오래 바라왔던 작은 응접실이 하나 생기는 거죠.
‘물건을 더해’ 만들고 싶은 변화도 한 가지 있어요. 다이닝룸과 거실 사이의 기둥에 전신 거울을 하나 두고 싶은데,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거울을 만나지 못했어요. 기둥과 잘 맞는 사이즈여야 하고, 설치 방식도 안전해야 하다 보니 계속 고민이 깊어지더라고요. 이러다 결국 주문 제작을 하게 될 것 같아요. (ㅎㅎ)
끝으로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여느 부모들이 그렇듯, 아이가 잠든 후에 시작되는 고요한 시간들도 참 좋아해요.
그렇지만 매일 저녁 검정색 프렌치 도어가 열리며 활짝 웃는 얼굴을 한 아이가 “엄마, 보고 싶었어요” 하며 들어서는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하루 24시간 중 단 1초 정도 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매일 반복되고 있는 장면이라 여러모로 애틋해요.
그런 소중한 순간을 매일 이 집에서 맞이할 수 있다는 게 참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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