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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의 거짓말> 대본을 처음 읽은 날을 기억하나요
유정 기획 의도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요.‛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어떤 사랑에 대한 기록이고, 남기지 못한 유서이자, 뒤늦게 도착한 연서이며, 밤새 써 내려간 답신이다.’ 마음에 훅 와닿았습니다. 살다 보면 좋은 순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여러 경험과 다양한 사람을 마주하며 삶의 정답은 결국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던 시기에 운 좋게도 이 작품과 만났어요.
진영 1930년대 청춘의 삶을 자세히 보여준 작품이 최근에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본 속 그들의 삶이 신선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가왔죠. 어느 캐릭터 하나 비어 있지 않고 모두 살아 숨 쉬는 이야기였습니다. 더구나 좋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걸 알았거든요.
김유정이 입은 드레스는 Mark Gong. 박진영이 입은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경성 최고 소매치기에서 밀정이 된 가경과 조선총독부 엘리트 통역관 태웅으로 두 사람은 마주합니다. 서로가 상대역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땠나요
유정 너무 좋았어요(웃음). 진영 씨의 전작을 정말 재밌게 본 데다 제가 상상하던 태웅의 모습과 꼭 맞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진영 대본을 받았을 때 유정 씨가 가경 역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작품 선택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죠. 유정 씨라면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꺼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그랬습니다.
가경은 돈을 벌어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 꿈인 평범한 스무 살이죠. 갑작스럽게 위장 신분으로 살게 된 그에게 왜 끌렸나요
유정 생존 자체가 삶이었던 사람이에요. “조선이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라면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 했죠. 그런 그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어요. 어떤 길을 택하고, 어떤 마음으로 나아갈지. 그 길을 저도 함께 고민하며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카디건은 Shushu/Tong. 쇼츠는 Nana Jacqueline.
태웅은 굉장히 복합적인 인물이더군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과 일본인 양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죠
진영 인간은 흑백 논리로 정의할 수 없잖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지만 무의식이나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존재니까요. 배우로서 모순적인 캐릭터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태웅이 그랬고요.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고민해 나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죠.
두 사람은 청춘의 표상으로 불리는 배우들입니다. 1930년대 청춘을 연기하는 즐거움도 있었나요
유정 의상이나 세트도 아름다웠지만 그 세월을 고스란히 녹여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한국인이라면 그 시대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기에 감사함도 있었고요. 새롭게 느낀 건 당시 청춘들이 품었던 고민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죠.
진영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사람이 돼야 할지…. 시대는 달라도 사랑과 동료애가 가득한,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점이 느껴졌습니다. 유정 다만 촬영하면서 그 공간과 그 순간을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마음 아프고 서글픈 순간들이 꽤 자주 찾아왔어요.
카디건과 이너 톱은 모두 Dries Van Noten.
첫 대본 리딩 때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묵념도 했다지요. 작품에 임하는 마음도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유정 어렵고 조심스러운 질문인데요.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은 그저 실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저희도 아직 완성된 작품을 끝까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배우들과 제작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임했다는 거예요. 후반부로 갈수록 진심이 하나로 모아졌어요.
진영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 그 인물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하고 느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예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고, 최대한 진심이고 싶었어요.
둘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의심과 비밀이 그 사이에 놓여 있죠. 서로 가장 많이 나눈 얘기는
진영 유정 씨와 통화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게 ‘이들은 왜 사랑하게 됐는가’였죠. 대화를 나누며 그 실마리를 찾아 나갔어요.
유정 우연처럼, 또 운명처럼 계속 마주치는 두 사람이 서로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뭘까? 꼭 정답을 찾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그 과정 덕분에 촬영에 들어가서는 편하고 즐겁게 찍었습니다.
진영 생각해 보면 장난치고 웃었던 순간이 훨씬 많아요.
유정 특히 태웅은 ‘엔딩 요정’이거든요. “잡았다, 소매치기!” 같은 쫄깃한 대사가 회차 마지막에 자주 등장해요. ‘서로 장렬하게 쳐다보고 있다’는 식의 엔딩도 많아서 늘 웃음이 터졌어요.
김유정이 입은 수트와 셔츠는 모두 Tom Ford. 박진영이 입은 수트와 셔츠, 타이는 모두 Tom Ford.
김유정이 입은 재킷과 셔츠는 모두 Dolce & Gabbana. 보디수트는 Ermanno Scervino. 박진영이 입은 베스트는 Songzio. 셔츠와 팬츠, 타이, 타이바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상대를 지켜보며 새롭게 발견한 매력이 있나요
진영 유정 씨는 다채로운 사람이에요. 표정도 다양하고, 늘 생동감이 가득하죠. 배우로서 굉장히 유연하다는 의미예요. 무엇보다 작품 전체 그림을 볼 줄 아는 눈이 멋있더라고요. 잘 풀리지 않을 때 유정 씨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선생님이자 누나죠(웃음).
유정 하하. 진영 씨의 첫인상은 ‘따뜻하다’였습니다. 제가 가장 크게 느낀 매력은 선명함이에요. 뚜렷하다고 해야 할까요? 감정이나 분위기, 어떤 말을 전할 때도 그 마음이 제게 선명하고 분명하게 전달돼요. 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에요.
공교롭게도 가경과 태웅 모두 3개 국어에 능통합니다. 쉽지는 않았겠어요
유정 쉽지 않았어요(웃음). 어려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이곳저곳에 적응하며 언어를 익힌 인물이라 감독님과 작가님도 굉장히 능숙하게 구사하길 원했어요. 제 말투처럼 자연스러워야 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죠.
진영 다행히 태웅은 과묵한 친구입니다(웃음). 그럼에도 다재다능한 엘리트라는 설정에 맞게 준비가 필요했어요.
유정 특히 통역이라는 소재가 두 사람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 혹은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것들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김유정이 입은 드레스는 Mark Gong. 네크리스는 Self-Portrait. 박진영이 입은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유정 씨는 어린 나이부터 여러 시대를 사는 인물들을 연기해 왔습니다. 그 즐거움은 무엇이었나요
유정 그동안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선택해 온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런 점이 제게도 도움이 됐죠. 저 역시 성장하는 나이였고, 때론 흔들리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니까. 대부분 여러 경험을 거치며 유연해지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 인물이었는데 혼자는 발견하지 못했을 것을 연기로 배웠어요. 덕분에 제 안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더라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진영 씨가 연기한 인물은 왠지 떠올리면 눈물 날 것 같아요. 그들에게 얻은 것들이 있을까요
진영 저는 굉장히 수동적이고 불안해하다가 끝내 자기 확신을 갖고 세상을 알아가는 인물을 주로 연기해 왔어요. 대부분 혼자 해내지 못하더라고요. 사람을 통해 배우고 변화하죠. 사실 어릴 때는 내가 누군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직업이 두 개니까. 지금은 둘 다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무엇이 ‘진짜 나’인지 줄곧 고민했어요. 어쩌면 그때 느꼈던 불안함을 가진 캐릭터에게 공감하고 끌려왔는지도 몰라요.
롱 코트와 이너 톱은 모두 Tonywack. 벨트 체인은 Chrome Hearts.
이 작품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진영 사랑이요. 모든 것이 빠르게 휘발되는 시대잖아요. 결국 우리는 주변 사람들, 가족과 친구, 연인과 동료를 향한 존경과 사랑이 있기에 무엇이든 이겨내고 다음 단계로 걸어갈 수 있죠. 잊고 지냈던 마음을 다시 꺼내 보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좋겠어요.
유정 제목에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결국 진심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간절한 진심으로 촬영했어요.
가경과 태웅이 지금 눈앞에 서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유정 음…. 갑자기 좀 울컥해요.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할 것 같아요. 그저 안아주고 싶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안겼을 때 받았던 위로를 전해주고 싶어요.
진영 “태웅, 네 부탁은 이뤄졌어.” 작품을 끝까지 보시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코트는 Amiri.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세팅된 디바인 에니그마(Divine Enigma) 하이주얼리 펜던트 네크리스는 Messika. 슈즈는 Jimmy Choo.
김유정이 입은 드레스는 Mark Gong. 네크리스는 Self-Portrait. 슈즈는 Jimmy Choo. 박진영이 입은 셔츠와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Recto. 슈즈는 Marni.
마지막으로 서로에게도 한 마디씩 남겨주세요
진영 유정 씨가 없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현장의 모두가 유정 씨를 사랑하고 아꼈어요. 이 드라마를 통해 유정 씨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유정이는 최고야!
유정 당신도 최고야! 진영 씨는 정말 좋은 배우이자 사람입니다. 그게 오롯이 느껴지거든요. 많이 의지했고, 고마웠어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우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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