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올가을 체크 패턴은 우리가 알던 모습과 다릅니다

격자무늬에 새긴 새로운 질서. 2026 가을 겨울 시즌, 디자이너들은 가장 익숙한 패턴을 통해 저마다 새로운 미학을 펼쳐 보인다.

프로필 by 김유진 2026.10.25
AMI

AMI

AURALEE

AURALEE

DIESEL

DIESEL

가로와 세로의 선이 교차하는 단순한 구조에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패턴이 있을까. 스코틀랜드 클랜(Clan)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타탄부터 영국 신사의 품격을 대변하는 글렌 체크, 전원적인 낭만을 간직한 깅엄까지. 체크는 시대와 계층,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획득하며 패션 역사와 함께해왔다.


1970년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타탄을 펑크의 상징으로 끌어들였고, 1990년대 그런지 세대가 낡은 플란넬 셔츠를 반항의 유니폼으로 삼았듯 체크는 전통과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처럼 상반된 역사를 지닌 체크가 2026 가을 겨울 런웨이에 다시 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체크 자체보다 그것을 다루는 디자이너들의 태도다. 익숙한 문양은 그대로 두되 소재와 실루엣, 옷 입는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BURBERRY

BURBERRY

LOEWE

LOEWE

영국의 전통을 대표하는 버버리부터 예외는 아니었다. 다니엘 리는 네이비와 짙은 붉은색이 교차하는 타탄 코트는 물론이고 풍성한 퍼 머플러에 체크를 입혔다. 영국 시골 저택의 옷장에서 꺼냈을 법한 코트가 순식간에 런던 밤거리에 어울리는 화려한 아우터웨어와 액세서리로 탈바꿈한 것. 영국적인 품격과 도시의 관능이 공존하는 모습은 체크가 지닌 오래된 이미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체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로에베의 접근은 한층 더 과감하다. 부피와 실루엣을 극적으로 부풀린 코트는 반듯한 격자무늬와 거대한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대비로도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CHLOÉ

CHLOÉ

CELINE

CELINE

JEAN PAUL GAULTIER

JEAN PAUL GAULTIER

끌로에의 셰미나 카말리 역시 선명한 붉은색 타탄으로 뒤덮은 코트에 숄처럼 늘어뜨린 패브릭과 프린지를 더해 스코틀랜드 전통 복식의 민속적인 낭만을 강조하거나 흩날리는 시폰 롱 드레스에 타탄 체크를 더해 클로에만의 보헤미안 테마를 완성했다.


셀린느의 마이클 라이더는 이보다 더 현실적인 옷차림을 제안했다. 매니시한 베이지 트렌치코트 아래 큼직한 체크 팬츠를 매치한 모습은 익숙한 영국식 클래식이지만 어딘가 삐딱하다. 단정한 옷을 굳이 단정하게 입을 필요 없다는 듯이 스타일링을 통해 메시지를 드러냈다. 여름날 피크닉을 떠올리게 하는 깅엄 체크도 계절을 바꿔 입었다. 작고 반듯한 격자무늬가 지닌 소박함 대신 볼드하고 박력 있게 변모했다.


VIVIENNE WESTWOOD

VIVIENNE WESTWOOD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카키색 깅엄 체크를 코트에 적용해 반항적인 매력을 더했고. 아미는 체크 니트 레이어링으로 일상적인 패턴을 한층 도시적으로 풀어냈다. 장 폴 고티에의 해석은 더욱 대담하다. 듀란 랜팅크는 흑백 체크를 조각적인 실루엣에 적용해 낯선 긴장감을 부여했다. 체크의 성격을 바꾸는 데는 소재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LOUIS VUITTON

LOUIS VUITTON

루이 비통은 울 펠트 소재의 그린 체크 투피스에 반짝이는 장식을 더하고, 서로 다른 패턴을 조합한 패치워크로 목가적인 복식을 미래적 옷차림으로 바꿔놓았고, 샤넬은 다채로운 색실과 광택이 어우러진 트위드 수트로 체크를 장식적 요소로 승화시켰다.


격자의 규칙을 의도적으로 어긋나게 만드는 시도도 있다. 드리스 반 노튼은 크기와 색상이 다른 체크를 겹쳐 특유의 색채 감각을 드러냈고, 디올은 체크 재킷과 패턴 팬츠를 조합해 서로 다른 무늬가 맞부딪치는 재미를 살렸다.


DRIES VAN NOTEN

DRIES VAN NOTEN

ACNE STUDIOS

ACNE STUDIOS

CHANEL

CHANEL

아크네 스튜디오는 비대칭 레이어드와 상반된 소재를 활용해 더욱 불규칙한 조합을 완성했다. 일정한 간격과 반복을 전제로 하는 패턴이지만, 서로 다른 격자가 한데 뒤섞이자 오히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살아난다. 규칙이 명확할수록 그것을 벗어나는 방식도 다양해지는 법이다.


클래식은 과거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취향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본래의 의미와 정반대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귀족의 복식에서 펑크의 유니폼으로, 남성 수트에서 낭만적인 드레스로 끊임없이 영역을 넓혀온 체크가 이를 증명한다. 엄격한 규칙으로 이뤄진 패턴이 가장 자유로운 표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 2026 가을 겨울 시즌 런웨이를 가로지른 수많은 격자무늬가 새삼 흥미로운 이유다.

관련기사

Credit

  • 에디터 김유진
  • 사진 LAUNCHMETRICS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댓글쓰기

0 / 100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