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디의 2027 봄여름에는 옷을 입는 자유가 번뜩입니다
유리벽 안과 밖에서 시선이 교차했다. 펜디 2027 봄 여름 컬렉션은 익숙한 옷의 조합을 바꾸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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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들은 거대한 유리벽 안을 걸었다. 투명한 경계 너머로 실루엣이 지나갔고, 관객들의 모습은 유리벽에 새겨지며 런웨이의 일부가 됐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펜디의 2027 봄 여름 컬렉션을 위해 마련한 생경한 무대. 쿠튀르 쇼가 발표된 로마에서 키우리는 엘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모두 24시간 내내 누군가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처럼 보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오늘날의 용기라고 덧붙였다.
그런 키우리가 이번에는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거울의 반사보다 유리벽 안팎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경험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자신으로 존재할 것인가? 이번 쇼가 남긴 질문이었다.
공식 쇼 노트에는 미국 시인 E E 커밍스의 시구가 인용됐다. “네 몸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내 몸이 좋다(I like my body when it is with your body).” 상대와의 신체적 친밀함을 고백한 시다. 키우리는 그 친밀한 감각을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확장했다. 타인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몸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 그런 차원에서 키우리에게 옷은 신체를 규정하는 틀이 아니라 감정과 욕망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피부다.
키우리의 펜디를 돌아보면 변화가 차례로 읽힌다. 첫 레디 투 웨어 컬렉션에서는 펜디의 다섯 자매와 아틀리에 협업 정신을 되짚었다. 절제된 테일러링으로 하우스의 옷장을 다시 정리한 시즌이었다. 첫 쿠튀르 컬렉션은 신체를 조이지 않는 실루엣과 유연한 드레이핑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그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로 시야를 옮겼다. 란제리가 겉으로 나오고, 단정한 재킷과 과감한 피스가 나란히 놓였다. 펜디의 질서를 무너뜨리기보다 가능한 조합을 늘린 셈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언더웨어였다. 옷장 안쪽에 있던 피스들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를테면 옆구리가 깊게 열린 슬리브리스 톱에 레이스 쇼츠를 입은 모델이 등장했다. 블랙 레이스 브라 위에는 비대칭 시어 톱을 겹치고 단정한 팬츠를 매치하기도 했다. 지난 가을 겨울 컬렉션에서 남녀가 비슷한 수트를 공유했다면, 이번에는 속옷과 겉옷의 경계까지 넘나든다. 란제리를 꺼내 입는 시도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핵심은 오래된 도발을 다루는 방식이다. 키우리는 여성성을 고정된 이미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생각이 스타일링으로 구체화됐다. 노출을 극대화하기보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과 겹쳐 입을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신체를 바라보는 태도는 실루엣으로도 이어졌다. “옷은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자, 몸이 살아가는 집이다.” 키우리가 로마에서 밝힌 개념은 원 숄더 드레스에서 선명해졌다. 한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드레이프가 모델의 걸음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 펜디가 태어난 도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한편, 옷이 몸을 따라 움직이는 방식이 돋보였다. 키우리는 신체를 정해진 실루엣에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움직이는 몸이 옷의 형태를 완성한다. 그가 언급한 ‘집’의 의미는 몸을 가두는 구조물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마냥 부드럽고 관능적인 컬렉션은 아니다. 대담한 시도가 돋보였다. 슬립 드레스 위에 넉넉한 블랙 재킷을 걸쳤다. 그런가 하면 볼륨감 있는 애니멀 패턴 아우터웨어 아래에는 느슨한 셔츠와 팬츠를 입혔다. 한쪽에 힘을 주면 다른 한쪽에서 힘을 빼는 식이다. 키우리는 관능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요소를 과장하지 않는다. 익숙한 재킷과 팬츠로 대담한 피스의 균형을 잡았다. 덕분에 무대 위에서만 통할 법한 스타일도 일상복과 섞어 입어볼 만한 조합으로 다가왔다.
이 경쾌한 반전의 단서는 1970년대 이탈리아 대중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라파엘라 카라를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가수이자 TV 스타였던 카라는 대담한 무대 의상과 자유로운 몸짓으로 당시의 관습에 도전했다. 파격과 다름없는 카라의 매력은 과감한 의상에만 있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그 일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키우리가 그 시대에서 차용한 것은 특정한 의상보다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펜디의 이번 시즌도 관능적이지만 마냥 진지하지 않다. 대담하면서도 유쾌한 매력이 번뜩인다.
가방에서는 펜디의 유산이 드러났다. 바게트 백은 소재와 장식을 바꾸며 고유한 디자인에 다양한 개성을 부여해 온 아이콘이다. 이번에도 실험적인 태도가 이어졌다. 드레스에는 긴 프린지가 흘러내리는 백을, 기하학적인 롱 베스트에는 로고 패턴의 토트백을 더했다. 프린지는 드레스의 움직임에 호응했고, 대담한 패턴은 간결한 실루엣과 대비를 이뤘다. 가방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옷차림에 뜻밖의 표정이 생겼다. 이처럼 키우리는 펜디의 유산을 전시하기보다 지금의 스타일링 안에서 새롭게 활용했다.
소재와 장식을 바꾸며 고유한 디자인에 다양한 개성을 부여해 온 바게트 백은 이번에도 실험적인 태도가 이어졌다.
‘Less I, More Us.’ 키우리가 펜디 복귀 후 첫 컬렉션에서 내건 메시지였다. 여기서 ‘우리’는 펜디를 함께 만들어온 자매들과 아틀리에 동료들이었다. 이번에는 그 옷을 입는 이들까지 포함한다. 키우리는 “나는 옷보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고 말한 적 있다. 이번 컬렉션을 보고 나니 그 의미가 좀 더 분명하게 다가왔다. 같은 피스도 누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첫 시즌에 키우리가 펜디의 옷장을 다시 정리했다면, 이번에는 그 안의 옷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꺼내 입기 시작한 듯하다. 물론 그 옷장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Credit
- 에디터 김영재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 COURTESY OF 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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