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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트렌스젠더가 몸에 관해 깨달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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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침대에 눕기 전 거울 앞에서 40초 동안 혀를 내미는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들뜬 마음을 안정시켜 숙면하고 싶다. 머리끝까지 치민 스트레스를 침대까지 가져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잠들기 전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누군가는 피부 미용을 위해 LED 마스크를 쓴 채 붉은 광선 속 고요함으로 빠져들고, 누군가는 침대에 몸을 누인 채 읽던 책을 펼쳐 활자의 세계로 침잠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40초 동안 혀를 내미는 동작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틱톡커의 숏폼을 보게 된 것. 말이 40초이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동작이 ‘미주신경’을 자극해 스트레스를 완화해 주는 효율적인 루틴이라는 설명에 매일 밤 내 당혹스러운 모습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뇌의 한가운데에 있는 뇌간에서 시작해 목을 지나 심장, 폐가 있는 흉강을 거쳐 전신의 혈관, 내장기관까지 길고 복잡하게 분포돼 있는 뇌신경을 뜻하는 미주신경(迷走神經; Vagus Nerve). 평소 스트레스를 논할 때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겼느니,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됐거나 부교감신경이 저하됐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미주신경은 다소 낯설다.
쉽게 말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은 자율신경계를 이루는 ‘시스템’에 가깝다. 미주신경은 부교감신경의 신호를 여러 장기에 전달하는 ‘회선’에 가까운 개념. 미주신경에 자극을 주어야 부교감신경과 교감신경 간의 유연한 반응 활동을 촉진해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 우리가 스트레스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웰니스 업계에서 미주신경이 새로운 히어로로 급부상하게 된 것. 한국에서는 한 연예인이 미주신경 기능 저하로 인해 장기간 라디오 진행을 쉬는 일이 생기면서 최근 들어서야 그 관심이 커졌지만, 동양의학에서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심박수와 소화 기능, 면역력 등을 관장하는 몸과 뇌 사이의 소통 경로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제 초점은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킬 것인가’에서 ‘어떻게 신경계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어요. 스트레스의 영향을 낮추는 신호는 제대로 기능하는 미주신경을 통해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미주신경을 활성화하라>의 저자 나바즈 하비브(Navaz Habib) 박사의 설명이다. “장과 심장, 폐에서 발생한 감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고, 다시 각 기관의 면역 세포에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내 만성 스트레스 과부하를 막습니다. 이 신호가 이동하는 소통의 고속도로가 미주신경인 것이죠.” 뉴로테크 기업 소나(Sona) 창립자인 제인 올리스(Jane Ollis)는 미주신경을 우리 몸의 ‘식스 센스(Sixth sense)’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우리는 흔히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해요. 실체가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 ‘소리’, 몸이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통로가 미주신경이니까요.”
나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를 몸이 먼저 느낀다. 양쪽 어깨가 뻣뻣하고, 턱에 힘이 들어가며, 나도 모르게 위아랫니를 앙 다물고 있는 것. 이미 내 몸이 ‘투쟁’ 혹은 ‘도피’ 모드에 들어갔음을 뜻한다. “미주신경이 자극받으면 신체의 면역 시스템을 안정화하기 위해 아세틸콜린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합니다. 면역 시스템이 무너지면 기분이 저하되고, 불안이나 브레인 포그(Brain Fog), 피로감을 유발하는데, 아세틸콜린이 몸에 염증 신호를 낮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죠.” 올리스의 설명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미주신경이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 대신 스트레스가 주변에 ‘배경음’처럼 깔린 상태에서 거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해준다는 데 핵심이 있다. 건강한 신경계란 무조건 평온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눈앞에 위험이 닥쳤을 땐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우리 몸에 즉각적 경고를 보내는 것이 극히 정상인 것처럼 말이다. “건강한 신경계는 ‘반응’할 줄 압니다. 언제 움직여야 하는지, 언제 긴장을 풀어야 하는지 알고 있죠.”
미주신경의 활동 정도를 뜻하는 미주신경 긴장도(Vagal tone)는 주로 심박변이도(HRV; Heart-rate Variability)를 통해 측정한다. ‘HRV’란 연속된 심장 박동 사이의 시간 간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수치화한 지표로, 일반적으로 미주신경의 긴장도가 높은 경우(HRV가 높은 경우) 스트레스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미주신경 긴장도가 낮은 경우(HRV가 낮은 경우) 몸이 긴장 상태에 머물고 있어 회복이 더디다는 신호다. 보통 긴장도가 높으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미주신경에 대해서라면 오히려 긴장도가 높은 것이 좋은 신호임을 기억할 것.
지난여름 한국에 론칭한 오우라 링에는 이 HRV를 추적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돼 있고, 얼마 전 공개된 애플 워치 시리즈 12에도 새로운 건강 센서가 탑재돼 전반적인 HRV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HRV 수치는 미주신경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졌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HRV가 낮다’ 혹은 ‘미주신경 긴장도가 낮다’는 건 실생활에서 어떻게 체감할 수 있을까? 중국 전통의학 전문가이자 페이셜리스트인 아다 오이(Ada Ooi)의 설명을 들으면 마치 내 상태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몸은 파김치처럼 축 처져 있는데 정신은 말똥말똥 깨어 있고, 감정적으로 예민하며, 판단력은 흐릿할 때가 있죠. 신경계가 긴장을 이완하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방법을 잊어버린 거예요.”
이쯤 되면 어떻게 미주신경에 자극을 줄 수 있을지, 즉 미주신경 긴장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신체 감각을 교육하는 소마틱 테라피스트 나히드 드 벨건(Nahid de Belgeonne)은 설명한다. “안전하다는 미세한 신호를 꾸준히 반복해 주는 것이 신경계에는 더 효과적입니다.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리듬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세요.” 미주신경에 ‘진짜’ 좋은 자극을 주는 방법은 오히려 단순한 일상 속의 작은 습관에 있다.
미주신경에 ‘안전하다’는 자극을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호흡. “호흡은 미주신경 경로를 따라 뇌간으로 전달되는 신호를 변화시키고, 그 결과 호흡에 따라 심박수가 자연스럽고 규칙적으로 오르내리게 해줍니다.” 호흡법 전문가인 롭 레아(Rob Rea)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미주신경의 활동을 원활히 만들어주는 것은 들이마시는 숨보다 내쉬는 숨으로, 4초 동안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6초 동안 천천히 입으로 숨을 내쉬는 소위 ‘4-6 호흡법’을 추천한다. 올리스는 호흡에 소리까지 결합하면 장기적으로 신경 경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허밍·사운드 배스 등이 대표적으로, 미세한 진동이 목과 외이도 주변을 지나는 미주신경을 자극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주는 것. 아침저녁으로 세안 마지막에 차가운 물을 한두 번 끼얹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얼굴 부위 감각을 담당하는 ‘삼차신경’을 통해 뇌간에 신호를 보내 미주신경성 활동의 증가를 유도하는 메커니즘이다. 자기 전에 40초 동안 혀를 스트레칭하는 건 과연 도움이 될까?
“혀를 내민다고 미주신경을 자극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혀와 턱, 목 주변 등의 근육을 이완시킴으로써 감각적으로 ‘편안하다’고 느끼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죠.” 나히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미주신경을 둘러싼 콘텐츠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모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 아래 더 많은 방법을 찾아보고, 더 많은 기기를 구입하며,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해 더 빠르게 신체 상태를 최적화하려 하지 않나. 하지만 최근 미주신경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심과 이에 대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깨달은 결론은 하나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신경계가 회복할 수 있도록 모든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는 습관이라는 점이다.
미주신경 긴장도를 높여 스트레스로부터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은 각종 루틴부터 고가의 기기와 이를 통한 데이터 측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로부터 벗어나 ‘눈 감고 호흡하기’ 같은 혼자만의 단순하고 평온한 순간이 축적됐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오늘밤, 나는 40초 동안 혀를 내미는 대신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하며 잠을 청할 것이다. 미주신경을 자극해야 한다는 생각이 또 다른 웰니스 강박이 되지 않도록, 무엇이든 ‘덜’ 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라는 역설을 곱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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