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환경인류학자가 이름 없이 떠난 동물들을 추모하는 방식

길 위에서 끝난 생에 마지막 꽃 한 송이를 건네는 아만다 스트론자. 그의 연작 ‘더 라스트 메모리얼’은 이름 없이 떠난 존재들이 이곳에 살아 있었음을 기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프로필 by 박찬 2026.11.07
생후 8주가량 된 새끼 보브캣. 공원 인근 도로에서 발견해 숲속으로 옮긴 뒤 발치에는 데이지를, 상처에는 분홍색 꽃을 놓고 어미를 생각하며 꽃으로 원을 만들었다.

생후 8주가량 된 새끼 보브캣. 공원 인근 도로에서 발견해 숲속으로 옮긴 뒤 발치에는 데이지를, 상처에는 분홍색 꽃을 놓고 어미를 생각하며 꽃으로 원을 만들었다.

‘더 라스트 메모리얼(The Last Memorial)’ 사진 연작을 이어오고 있어요. 길에서 죽은 동물을 꽃과 나뭇잎으로 추모하고 그 모습을 기록하는 작업이죠. 지난 8년간 300마리가 넘는 동물을 기려왔는데,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첫 추모 대상은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의 한 산책로에서 발견한 다람쥐였어요. 사람들이 그 다람쥐를 지나치거나 거의 밟을 듯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그래서 다람쥐를 길에서 옮기고 그 몸을 아름다운 것으로 둘러쌌습니다.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 때문이라도 잠시 바라보고, 그 존재를 ‘죽은 다람쥐 한 마리’가 아니라 누군가로 바라볼 수 있길 바랐어요.


길에서 죽은 동물을 발견해 몸을 옮겨주는 일은 작품을 떠나 오래전부터 해왔다고요. 죽은 동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됐는지

어머니에게 동물을 가족으로 대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어요. 동물은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가족 같은 존재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길에서 다치거나 죽었다면 당연히 멈출 것이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혹여 도움이 필요하다면 마땅히 힘을 보탤 거예요. 제 경우에는 동물에게도 같은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죽은 동물 앞에서 차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순간이 기억나요. 제 앞을 달리던 차가 다람쥐를 쳤는데 운전자도, 그 장면을 본 다른 차들도 멈추지 않았어요. 저는 빨리 차를 세우고 다람쥐를 도로에서 옮겼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보지 못했는지, 보고도 무심했던 건지 의아했어요. 차라리 보지 못했다고 믿고 싶었죠.


한 인터뷰에서 ‘로드킬(Roadkill)’이라는 말이 그 안에 담긴 개별적인 삶을 지워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어요. 우리가 그런 죽음 앞에서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미국에서는 매일 자동차로 인해 수많은 새와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가 죽지만 우리는 그 죽음을 ‘로드킬’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려 바라봅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 한 마리의 삶을 일일이 상상하는 건 드물죠. 환경 보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연구를 위해 동물을 종이나 개체군처럼 큰 단위로 바라봐야 할 때가 많지만, 저는 그 안에 존재하는 한 마리의 삶에도 관심이 갑니다. ‘이 라쿤은 생전에 어떤 아이였을까? 모험심이 많았을까, 수줍음이 많았을까?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가족이 있었을까? 지금도 가족은 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요. 한 마리의 라쿤에게도 저마다 성격과 감정, 관계와 삶이 있었을 테니까요.


일주일 사이 같은 고속도로에서 발견한 세 번째 코요테. 동물들이 오가던 길을 인간이 도로로 가로막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몸을 꽃으로 감쌌다.

일주일 사이 같은 고속도로에서 발견한 세 번째 코요테. 동물들이 오가던 길을 인간이 도로로 가로막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몸을 꽃으로 감쌌다.

동물을 조용한 곳으로 옮기고 꽃과 나뭇잎, 열매 등으로 둘러싸는 과정은 일종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동물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증언하기 위해서예요. 이들은 살아 있는 동안 매일 아침을 함께 맞이하고, 사랑하고, 기억해 주는 인간이 없었던 동물입니다. 대부분 우리 눈에 띄지 않은 채 살아왔죠. 그래서 죽은 뒤에라도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봐주었으면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기록하는 이 작업에서 제가 보여주고 싶은 건 그들이 지녔던 생명의 아름다움이에요. 뱀의 몸이 만드는 리본 같은 곡선, 아르마딜로의 배에 난 가느다란 털, 늑대거북의 눈빛, 독수리 깃털에 스민 수많은 검은색과 회색, 호저의 부드러운 얼굴 같은 것들이요. 사람들은 도로에서 죽은 동물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리잖아요. 저는 꽃과 나뭇잎, 열매로 그 곁에 아름다움을 더해 사람들이 잠시라도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은 동물의 몸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에도 당신만의 원칙이 있나요

우선 (죽은 동물을) 발견하면 사고가 난 곳에서 옮겨 평온한 장소를 찾고, 아름다운 것으로 둘러싼 뒤, 몸이 다시 대자연으로 돌아가도록 둡니다. 제가 사진을 촬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죽음을 자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예요. 우리는 늘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삶 바로 곁에 죽음이 있어요. 부패한 것은 다시 생명을 키우고, 죽은 몸은 살아 있는 존재를 먹입니다. 제가 동물들을 땅에 묻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사체를 먹고 살아가는 독수리와 여우, 주머니쥐 같은 동물에게 안전한 먹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은 뒤에도 그 동물이 지닌 고유의 모습과 야생성을 존중한다고요

몸을 만지는 것은 꼭 필요한 만큼만 합니다. 낡은 수건으로 감싸 옮기고 발이나 발톱, 날개를 정돈하거나 사고로 훼손된 모습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 보이도록 하는 정도예요. 그들이 원했을 것 같은 모습으로 눕히고, 그들이 보이고 싶었을 것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으려 합니다. 이를테면 야생 토끼의 털이 아무리 부드럽더라도 살아 있었다면 인간의 손길을 두려워했겠죠. 죽은 뒤에도 그들의 야생성을 존중하고 싶어요.

길에서 발견한 다람쥐. 수건으로 몸을 감싸 옮기고 나뭇잎과 꽃, 씨앗을 둘러놓으며 수많은 다람쥐 중 하나가 아닌 고유한 존재로 기억하고자 했다.

길에서 발견한 다람쥐. 수건으로 몸을 감싸 옮기고 나뭇잎과 꽃, 씨앗을 둘러놓으며 수많은 다람쥐 중 하나가 아닌 고유한 존재로 기억하고자 했다.


우리는 반려동물의 죽음에는 깊이 슬퍼하면서도 길에서 죽은 다람쥐나 사슴, 새의 죽음은 쉽게 지나칩니다. 동물을 향한 인간의 애도는 왜 이토록 선택적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어떤 동물을 ‘누군가’로 여기고, 어떤 동물은 그저 이름 없는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일 거예요. 인간에게는 오래전부터 죽음을 기리는 문화와 의식이 있었고, 이제는 반려동물 역시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야생동물에게는 여전히 그런 애도의 언어가 없어요. 길에서 죽은 동물들을 각각의 생명이라기보다 ‘로드킬’이라는 하나의 대상으로 묶어 부르고, 죽은 몸을 더럽거나 불쾌하게 여기며 외면하죠. 그런 동물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시간을 들여 추모하는 일은 여전히 이상하고 섬뜩한 행동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한 존재의 삶을 얼마나 가까이 상상할 수 있는지가 그 죽음을 애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환경인류학자로서 30년 넘게 생물다양성 보전과 함께 인간과 야생동물의 관계를 연구해 왔습니다. 학자로서 ‘더 라스트 메모리얼’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추모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때문에 사라진 생명을 기리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잠시 멈춰 바라보면서 인간이 동물의 집과 보금자리, 이동 경로와 물길, 놀이터와 은신처를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기도 해요. 우리는 그들의 세계 위에 우리 것을 올려놓았습니다. 쇼핑몰과 주유소, 주차장, 주택과 고층 건물이 그들의 공간을 대체했고, 도로는 원래 하나로 연결돼 있던 삶의 터전을 나눠놓았어요. 하늘처럼 보이는 유리창은 새들의 비행 경로를 가로막고,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시설은 다른 존재에게서 물을 빼앗기도 합니다. 확신하건대 그들에게도 분명 각자의 역사와 이야기, 살아온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야생동물과 같은, 한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산길에서 발견한 어린 여우. 자동차에 거듭 치인 몸을 풀밭으로 옮기고 민들레꽃을 놓았다. 길을 건널 몇 초의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산길에서 발견한 어린 여우. 자동차에 거듭 치인 몸을 풀밭으로 옮기고 민들레꽃을 놓았다. 길을 건널 몇 초의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더 라스트 메모리얼’을 본 뒤 자신도 죽은 동물을 위해 작은 추모를 시작했다는 메시지를 세계 곳곳에서 받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세계 각지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직접 만든 추모 장면을 보내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스스로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제 작업을 본 뒤 죽은 동물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이후 새끼 고양이와 토끼, 두더지의 몸을 숲으로 옮겨 양치식물과 나뭇잎으로 덮고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했어요. 그의 어린 딸도 죽은 쥐를 발견하고 꽃과 나뭇잎을 놓아주었다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길에서 죽은 토끼를 보고 처음으로 차를 세웠다고 했어요. 이런 마음은 점점 다른 사람에게 번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주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가장 달라졌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요

우리 곁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특히 인간이 두려워하거나 징그럽고 불길한 존재로 여겨온 동물들에게 마음이 갑니다. 독수리와 뱀, 주머니쥐, 코요테, 검은 고양이 같은 동물이요. 제가 작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 문구인 ‘모든 생명을 바라봐주세요(See them all)’는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변 생명에게 귀 기울여달라는 부탁이에요. 야생동물은 요세미티나 아마존, 오카방고처럼 멀리 떨어진 자연에만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오가는 길과 집 앞마당에도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공간이 정말 인간만의 것일까요? 우리에게는 작은 마당일지 몰라도 그곳에 사는 동물들에게는 인간 없이도 온전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일 수 있습니다. 저는 나뭇가지와 풀숲 틈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이 저를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하곤 해요. 지금 살아가는 공간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려 300마리가 넘는 동물을 추모해 오며 아직 마음을 떠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요

모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요. 올빼미와 매, 코요테, 보브캣, 다람쥐, 아르마딜로, 호저, 새, 라쿤, 주머니쥐, 뱀, 거북이, 고양이, 개…. 그중에서도 코요테와 늑대거북, 어린 보브캣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어린 보브캣은 생후 8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공원 근처 도로에서 발견했는데, 소나무와 참나무가 있는 은신 굴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어요. ‘어미가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보브캣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겠구나’ 하고 상상했습니다. 새끼를 들어 올릴 때도 어미가 떠올랐어요. 혹시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자신의 새끼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저는 담요로 어린 보브캣을 감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공원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발에는 데이지를, 상처에는 분홍색 꽃을 놓고 원을 만들었어요.


고속도로 갓길에서 발견한 갓 태어난 새끼 염소. 몸에는 마른 탯줄이 남아 있었다. 약 48km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꽃으로 둘러싸고 기록했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발견한 갓 태어난 새끼 염소. 몸에는 마른 탯줄이 남아 있었다. 약 48km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꽃으로 둘러싸고 기록했다.

추모를 마치고 사진을 찍은 뒤, 결국 그 동물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나야 해요.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마음속으로 늘 “미안해”라고 속삭입니다. 저나 그 동물을 친 운전자를 대신해서 하는 사과가 아니에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른 생명에게 잔인함과 피해를 주고, 무관심하고, 보지 않으려 했던 우리 모두를 대신해 사과합니다.


내일 누군가 도로에서 죽은 동물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요

도로에서 죽은 동물을 발견하고도 차를 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무엇보다 위험할 수 있고, 때로는 동물의 몸이 심하게 훼손돼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모두에게 저처럼 차를 세우고 동물을 옮길 것을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라도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한 번 바라보고, 무언가를 느껴주었으면 합니다. 그곳에 놓인 것이 얼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하나의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는 거죠. 한때 그곳에 살아 있던 생명을 기억하고, 그 죽음 앞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쓰는 것. 저는 그 작은 관심에서부터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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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찬
  • 사진가 AMANDA STRONZA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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