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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아펠 발 데 자모르 오토메이트 워치.
시간을 보는 데 꼭 시침과 분침이 필요한 건 아니다. 반클리프 아펠은 일찍이 그렇게 생각했다. 연인이 다리 위에서 만나고, 꽃이 피어나고, 태양과 달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으로도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있다고.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은 이 낭만적인 발상을 진지하게 실현해 온 결과다.
2006년, 반클리프 아펠은 복잡한 기계 장치를 과시하는 대신 이야기를 선택했다. 레이디 아펠 상트네르를 시작으로 레트로그레이드 핸드는 연인이 되고, 회전하는 디스크는 밤하늘이 됐다. 오토마통을 작동시키면 멈춰 있던 인물과 자연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이 탄생한 지도 20년, 그 사이 이야기도 제법 길어졌다. 20년 동안 기술은 복잡해졌지만 반클리프 아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결같다. 시간은 숫자로만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
하루 중 달빛이 비추는 시간에서 영감을 얻은 레이디 아펠 퐁 데 자모르 끌레 드 륀 워치.
Lady Arpels Pont Des Amoureux & Lady Arpels Bal Des Amoureux Automate
」2010년 퐁 데 자모르에서 처음 만난 연인은 파리의 다리 양쪽 끝에서 하루에 두 번 서로에게 다가갔다. 여인은 시간을, 반대편의 남자는 분을 가리킨다. 두 개의 레트로그레이드 디스플레이가 움직일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좁아지고, 정오와 자정이 되면 마침내 다리 한가운데서 입을 맞춘다. 시간이 흐른다는 지극히 기계적인 사실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꿔 놓은 셈이다.
15년 뒤인 2025년, 이야기는 레이디 아펠 발 데 자모르 오토메이트로 이어졌다. 무대는 다리에서 19세기 파리 근교의 야외 댄스 카페인 ‘기게트’로 옮겨졌고, 기계적 구성도 훨씬 복잡해졌다. 셀프와인딩 기계식 무브먼트에 더블 레트로그레이드 디스플레이와 오토마통, 온디맨드 애니메이션을 결합했다. 정오와 자정이면 두 연인이 다시 만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좌우로 이동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에게 몸을 기울이고 팔을 내리며 부드럽게 움직인다.
자연스러운 몇 초를 만드는 데 4년의 연구개발이 필요했다. 두 인물에는 세 개의 관절이 적용돼 각각의 몸짓을 연속적으로 연결한다. 여러 개의 동작이 정확한 타이밍에 맞물려야 비로소 자연스러운 키스 장면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케이스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순간, 애니메이션을 작동시킬 수 있는 온디맨드 기능까지 더했다. 퐁 데 자모르와 발 데 자모르 사이의 15년을 나란히 놓으면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의 기술적 진화가 선명하게 보인다. 처음에는 레트로그레이드라는 전통적인 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두 사람의 거리를 표현했다면, 이제는 레트로그레이드와 오토마통을 결합해 몸짓과 감정까지 표현한다. 다리 위에서 서로를 향해 움직이던 두 사람에게 그 다음 서사가 생긴 것이다.
그리자유 에나멜 기법으로 완성한 다이얼 위에 연인 모티프를 얹는 과정.
Lady ARPELS HEURES FLORALES
」2022년에는 사람이 아닌, 꽃이 시간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레이디 아펠 에르 플로럴의 출발점은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1751년에 출판한 <필로소피아 보타니카 Philosophia Botanica>에서 등장한 ‘플로럴 클락’이다. 서로 다른 시간에 꽃잎을 열고 닫는 식물을 한 정원에 모으면 꽃의 상태로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반클리프 아펠은 270여 년 전의 상상을 기계식 무브먼트로 구현했다. 시간을 읽는 법부터 낯설다. 다이얼에는 열두 송이의 입체적인 꽃이 자리하고, 그 순간 피어 있는 꽃의 수가 현재 시간을 나타낸다. 4시라면 네 송이, 8시라면 여덟 송이가 열린다. 60분이 지나면 피어 있던 꽃들이 닫히고 새로운 꽃이 다시 열린다. 이때 매번 같은 꽃이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메종은 꽃들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시퀀스에 따라 개화하도록 메커니즘을 설계했다. 같은 숫자의 꽃이 피더라도 정원의 풍경은 계속 달라진다.
문제는 열두 송이의 꽃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것. 반클리프 아펠은 시계 모듈을 자체 개발했다. 최대 166개의 요소가 동시에 작동하며, 꽃잎 하나하나가 시계 메커니즘과 연결된다. 각각의 꽃잎을 제어해 개화와 폐화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많은 부품을 다이얼 아래에 배치하는 동시에 세 가지 개화 시퀀스까지 구현한 것이 기술적 핵심. 그 위를 메티에 다르가 덮는다. 페인티드 마더 오브 펄 꽃잎과 미니어처 페인팅, 젬 세팅 등을 거치고 나면 복잡한 기계 장치는 정원 뒤편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에르 플로럴의 재미는 바로 이 간극에 있다. 166개의 요소와 복잡한 시퀀스가 수반되지만 우리 눈엔 그저 ‘꽃이 피는 아름다운 모습’뿐이라는 것.
실제 달의 위상 변화를 적용한 미드나잇 데이 앤 나잇 페이즈 드 룬 워치.
Midnight Jour Nuit Phase de Lune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이 탄생한 지 20년이 된 2026년, 그 계보에 새로운 시계가 이름을 올렸다. 미드나잇 데이 앤 나잇 페이즈 드 룬. 연인을 만나게 하고 꽃을 피우며 행성을 움직여온 반클리프 아펠은 이번에는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는 두 개의 시간을 한 하늘에 겹쳤다.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시간, 다른 하나는 달의 시간이다.
출발점은 2008년 처음 선보인 주르 뉘 컴플리케이션. 태양과 달의 움직임으로 하루의 흐름을 그려냈다면, 신작은 실제 달의 위상 변화를 더했다. 낮과 밤, 달의 주기를 한 풍경에서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다이얼 아래에는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개의 디스크가 자리한다. 하나는 24시간에 한 바퀴를 돌며 태양과 달이 차례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주르 뉘의 풍경을 만든다. 그 뒤에서 움직이는 또 다른 디스크는 24시간 16분 27초를 주기로 회전한다. 매일 16분 27초씩 벌어지는 두 디스크의 위치 차이가 축적되면서 달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진다. 즉 별도의 문페이즈 창을 통해 월령을 표시하는 대신, 서로 다른 주기를 지닌 두 디스크의 상대적인 움직임으로 달의 변화를 재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달이 언제나 눈앞에 있지 않다는 것. 반클리프 아펠은 이를 온디맨드로 해결했다. 8시 방향의 온디맨드 버튼을 누르면 천체의 움직임이 가속되며 현재의 달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정확한 시간으로 돌아온다. 이 순간, 달의 위상에 오차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이 작동하는 동안 디스크가 추가로 회전하며 발생하는 변화를 모두 반영한다. 이런 기능을 포함한 무브먼트는 제네바의 메종 워치메이킹 워크숍에서 자체 설계했으며, 4년의 개발 기간이 필요했다.
그 위로 펼쳐지는 풍경도 기능과 분리되지 않는다. 어벤추린 글라스와 마더 오브 펄로 만든 하늘을 따라 태양과 달이 움직이고, 별똥별 형태의 레트로그레이드 핸드가 분을 가리킨다. 이야기는 케이스 뒷면에도 이어진다. 화이트골드 케이스백에도 달의 표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보이는 오실레이팅 웨이트(로터) 위에 에나멜 트레이싱과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지구와 행성, 별을 그려 달에서 본 풍경을 재현해 우주 서사의 마침표를 찍는다.
천체의 아름다움이 담긴 케이스백 조립 작업.
워치메이킹 & 아트 메커닉 개발 디렉터 윌리엄 파우라(William Faura)는 시계 위에 펼쳐지는 반클리프 아펠의 낭만적인 서사를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구현한다. ‘포에트리 오브 타임(Poetry of Time)’ 탄생 20주년을 맞아 그와 나눈 이야기.
반클리프 아펠은 아름다운 이야기와 시적 서정성을 기술력으로 구현하는 메종이다. 서사와 메커닉이 어떻게 조율되는지 궁금하다
정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 다리 위에서 입맞춤을 나누는 연인 등 모든 건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와 주얼리, 하이 주얼리 장인, 예술적 기교를 구현하는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팀, 워치메이커와 테크니컬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여러 전문가들과 협업한다. 프로젝트 시작부터 긴밀하게 논의하며, 저마다 기술과 노하우를 결합해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레이디 아펠 에르 플로럴 워치.
2006년 포에틱 컴플리케이션(Poetic Complication) 탄생 이후 올해로 20년이 됐다
‘포에트리 오브 타임’은 시간 측정을 넘어 낭만적 감정과 서정적 순간을 표현하는 반클리프 아펠의 고유한 워치메이킹 비전이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시간의 흐름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보여준다는 의미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표현하거나, 두 연인의 입맞춤으로 자정을 알리고, 정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로 시간과 분을 보여주는 식이다. 20년 전만 해도 시계 업계는 투르비용과 크로노그래프가 중심이었고, 속도와 정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반면 최초의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다.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건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천천히 변하는 시계였다. 당장 움직임을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봄에 바라본 시계와 겨울에 바라본 시계의 모습은 분명 다르다. 계절이 변하는 속도에 맞춰 시계 역시 조금씩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다.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컬렉션은 이런 생각을 시계에 구현했다. 기술적 복잡성을 바탕으로 시간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중요한 건 움직임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다이얼 꽃잎의 미니어처 페인팅.
퐁 데 자모르부터 발 데 자모르까지 레트로그레이드 디스플레이는 연인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중요한 언어다. 움직임이 훨씬 복잡해진 발 데 자모르에서도 레트로그레이드를 유지한 이유는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는 반클리프 아펠 워치메이킹에서 시간을 표시하는 기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요정의 지팡이, 두 마리의 나비처럼 메종의 다양한 모티프에 움직임을 부여하며 작품의 서사와 시간 흐름을 표현한다. ‘레이디 아펠 발 데 자모르 오토메이트’는 2010년에 선보인 ‘레이디 아펠 퐁 데 자모르’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품이다. ‘퐁 데 자모르’에서는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를 통해 연인의 이야기를 표현했는데, ‘발 데 자모르’에서도 이를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확장했다. 연인은 다이얼 위에서 춤추고, 정오와 자정이 되면 입맞춤을 하기 위해 서로에게 다가간다. 여기에 오토마통 무브먼트를 더해 착용자가 원하는 순간에 연인의 만남을 재현할 수 있도록 했다.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의 역사는 1927년에 제작된 ‘차이니스 매지션 포켓 워치(Chinese Magician Pocket Watch)’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반클리프 아펠의 워치메이킹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 타임피스에는 당시 ‘Arms in the Air’라는 메커니즘이 적용됐다. 인물의 두 팔을 움직이는데 한쪽 팔은 ‘시’를, 다른 팔은 ‘분’을 표시한다. 현재는 이를 ‘더블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라고 부른다.
미드나잇 데이 앤 나잇 페이즈 드 룬 워치는 태양과 달이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움직인다.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기술적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 시계에서는 특히 문페이즈를 새롭게 해석하려 했다. 보름달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천체 주기에 따라 달이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다. 낮 동안 달이 지구 뒤로 모습을 감추듯, 시계에서도 달은 얇은 막 뒤로 사라지는데 여기에 오토마통 기능을 더해 낮에도 달을 다시 등장시켜 문페이즈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풍경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두 개의 회전 디스크다. 태양과 달이 배치된 낮과 밤의 디스크는 24시간 동안 한 바퀴를 회전하고, 그 아래의 두 번째 디스크는 24시간 16분 27초에 한 바퀴를 돈다. 디스크의 움직임은 미세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쌓이면서 달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실제 달의 위상을 보여준다.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부분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을 작동시킨 뒤에도 문페이즈의 정확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4년에 걸친 연구개발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디스크의 무게를 제어해야 했고, 이를 위해 특수 기술 소재를 사용하면서 형태도 그에 맞게 설계했다. 또 중요한 과제는 온디맨드 애니메이션을 작동시켜도 문페이즈에 오차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무브먼트 내부에 자리한 두 개의 디퍼렌셜, 즉 차동장치를 정교하게 제어해야 했다.
이처럼 복잡한 메커니즘을 어렵게 개발해도 우리에게 보이는 건 몇 초의 순간이다
그렇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완성한다. 반클리프 아펠의 타임피스가 품은 시적 감성은 복잡함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펼쳐지는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기계적 복잡성 대신 시계를 착용하는 이가 움직임이 지닌 시적 감성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움직임,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의 섬세함, 오토마통의 정밀함 등은 궁극적으로 전해지는 감성에 기여해야 한다. 온디맨드 역시 작품에 매혹을 더한다는 측면에서 같은 의미를 지닌다. 기술은 언제나 시적 풍경 뒤에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에도 목적은 이야기의 구현이다. 모든 엔지니어링의 필요성은 감정과 서사, 이야기에 기반한다. 우리 과제는 기계 부품과 장인 정신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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