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수지가 나를 찾아가는 방식 "예전에는 왜 제 얼굴에서 첫사랑을 떠올리는지 몰랐어요"

지나온 인물과 다음의 끌림이 공존하는 수지만의 방.그 방을 채우는 것들에 관하여.

프로필 by 김유진 2026.09.28

수지의 방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봤어요. 지금 당신 방에서 가장 나다운 물건 하나를 고른다면

음, 체크리스트를 적는 다이어리요. 민트색이고 <다 이루어질지니> 굿즈 펜과 늘 함께죠(웃음). 보통 부엌에 놓여 있고, 하루를 시작하면서 해야 할 일을 적어요. 활동 스케줄부터 반려견 밥 먹이고 약 먹이기, 씻기, 청소포 사기, 식기세척기 돌리기 같은 사소한 것까지 다 적혀 있어요. 하나씩 완료하고 나면 ‘지익’ 선을 그어서 체크하고요.


미니드레스와 새틴 오버 니 부츠, 레더 글러브는 모두 Celine.

미니드레스와 새틴 오버 니 부츠, 레더 글러브는 모두 Celine.

일과 일상을 잇는 좋은 습관이네요

맞아요. 잘 까먹어서 처음에는 메모용으로 적기 시작했어요. 찢고 버리고, 찢고 버리다가 어느 순간 이것도 모아두면 기록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기를 따로 쓰지 않으니까, 나중에 메모를 보면 ‘이때 이런 걸 하면서 살았구나, 이런 것에 빠져 있었구나’를 알 것 같아서요.


침대에 누우면 솔직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잖아요.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은

자기 전에 알람 확인을 해요. 아침에 일어나 촬영 가기 전에 사부작거릴 시간까지 계산해서 알람을 여러 개 맞추는 편이에요. 한번은 너무 피곤해서 오전, 오후를 잘못 맞춰놓은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잘 체크해요(웃음).


드레스와 레이어드한 터틀넥 스웨터는 모두 Celine.

드레스와 레이어드한 터틀넥 스웨터는 모두 Celine.

새틴 셔츠와 레이어드한 셔츠, 팬츠, 미니 메종 셀린느 버클 벨트는 모두 Celine.

새틴 셔츠와 레이어드한 셔츠, 팬츠, 미니 메종 셀린느 버클 벨트는 모두 Celine.

미니드레스와 새틴 오버 니 부츠, 레더 글러브는 모두 Celine.

미니드레스와 새틴 오버 니 부츠, 레더 글러브는 모두 Celine.

지난 3월, 파리에서 셀린느 2026 겨울 컬렉션 쇼를 지켜봤어요. 오늘은 화보 촬영하면서 그 컬렉션의 룩을 입었고요. 쇼장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와 직접 입어본 느낌은 어떤가요

거대한 스피커가 설치된 쇼장에서 처음 컬렉션을 봤을 때는 전체 룩의 색감과 실루엣이 인상 깊었는데요. 실제로 입어보니 믹스매치에 따라 룩의 인상이 달라지는 게 흥미로웠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이클 라이더는 셀린느가 지나온 여러 시대를 위에 컬러와 유머, 새로운 비율을 더했어요. 수지 씨도 오랫동안 쌓아온 이미지 위에서 계속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고요. 이전의 ‘나’를 품은 채 새로워진다는 건 어떤 건가요

셀린느는 파리지앵의 우아함을 바탕으로 계속 진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셀린느가 지나온 여러 시대의 미학이 하나의 줄기를 이루면서 새로운 가지로 계속 뻗어 나가는 것처럼요. 저도 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은 새로워지기 위해 이전의 모습을 지우거나 의식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시간이 흐르며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얼굴이 새로운 얼굴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미니드레스와 스몰 플레어 백, 새틴 오버 니 부츠, 레더 글러브는 모두 Celine.

미니드레스와 스몰 플레어 백, 새틴 오버 니 부츠, 레더 글러브는 모두 Celine.

솔직하고 당돌한 <건축학개론>의 양서연부터 감정이 결여된 <다 이루어질지니>의 기가영까지, 연기해 온 인물의 결도 많이 다릅니다.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을까요

근본적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인물을 좀 확대해서 보려고요. 해당 캐릭터만 들여다보기보다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를 더 많이 생각해요. 대본에 나오지 않아도 이 인물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나름대로 상상해 보고요. 나만의 이유와 사연을 많이 만들어두는 편이에요.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인물을 깊이 이해하는 때가 오는 것 같아요.


한동안 많은 사람이 수지 씨의 얼굴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렸어요. 하나의 이미지로 강하게 기억되던 얼굴에 여러 인물을 담아오면서 자신의 얼굴을 새롭게 보게 된 순간도 있었나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제 얼굴에서 첫사랑을 떠올리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어리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제 얼굴이 평범하고 수수해서 영화 속 감정을 대입하기 좋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그렇다면 ‘내 얼굴에 여러 인물을 담을 수 있겠구나’ 싶었죠.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몰랐던 표정이나 얼굴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참 기쁘고, 아직 내가 모르는 얼굴이 내 안에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벨티드 디테일의 코트와 터틀넥 톱, 플레어 팬츠, XL 플레어 백, 부츠, 실크 스카프는 모두 Celine. 벨티드 디테일의 코트와 터틀넥 톱, 팬츠, 부츠, 실크 스카프는 모두 Celine.
롱 코트와 터틀넥 스웨터, 플레어 팬츠, 피티드 부츠, 햇은 모두 Celine.

롱 코트와 터틀넥 스웨터, 플레어 팬츠, 피티드 부츠, 햇은 모두 Celine.

<안나>의 이유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고, 이 작품은 수지 씨에게도 전환점이 됐어요. 이유미를 연기하며 이전보다 자신의 욕심이나 감정에 솔직해진 부분도 있었을까요

저는 현장 분위기나 사람들의 미묘한 공기를 잘 느끼는 편이에요. 좋게 말해 눈치가 빠른 편인데,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직업은 그런 감각이 때로는 힘들게 작용하기도 해요. 유미를 연기할 때는 그런 감각을 조금 내려놓고,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온전히 집중했어요. 그 과정에서 제 욕심이나 감정을 들여다보는 태도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재미있는 건 그렇게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 것과는 별개로 시간이 흐를수록 욕심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순간이 오면 오히려 반갑더라고요.


<이두나!>의 이두나는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온 뒤 방 안으로 숨은 사람이었죠. 무대 위와 무대 밖을 경험한 수지 씨가 이해할 수 있었던 마음은

저는 두나의 공허함보다 심심함이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졌어요. 두나가 은퇴한 뒤 (이)원준이를 쫓아다니면서 계속 “노잼”이라고 놀리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그건 애드리브였어요. 저는 그 말이 두나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늘 바쁘게 살고,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던 사람에게 갑자기 아무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길 한가운데 멀뚱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그 ‘심심함’을 수지 씨도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

예전에 발 수술을 하고 한 달 정도 누워서 지낸 적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강제로 한 달을 쉬어보니 선명하게 알겠더라고요.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살아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두나의 심심함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코트와 터틀넥 스웨터, 햇은 모두 Celine.

코트와 터틀넥 스웨터, 햇은 모두 Celine.

코트와 터틀넥 스웨터, 리틀 하프 문 소프트 트리옹프 백, 햇은 모두 Celine.

코트와 터틀넥 스웨터, 리틀 하프 문 소프트 트리옹프 백, 햇은 모두 Celine.

레오퍼드 시어링 블루종 재킷과 터틀넥 톱, 팬츠는 모두 Celine.

레오퍼드 시어링 블루종 재킷과 터틀넥 톱, 팬츠는 모두 Celine.

이렇게 서로 다른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배우의 마음에 여러 개의 방이 생길 것 같아요. 수지 씨에게도 그런 방이 있나요

저도 늘 제 마음속에 여러 개의 방이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하는 편이고, 또 그것들을 나눠서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직업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질문을 듣고 보니 배우에게도 잘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네요.


여러 방 가운데에서도 쉽게 닫히지 않는 방이 있겠죠

네. 그 인물에게 깊은 애정이 남았을 수도 있고, 아쉬워서 그럴 수도 있어요. 제가 연기했던 모든 인물에게 애정과 아쉬움이 공존해요. 그래도 저는 현재가 중요한 사람이라서 모든 방을 잘 닫아둔 것 같아요. 심지어 <현혹>의 (송)정화 방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의 (윤)사강 방도 아직 닫혀 있으니까요. 지금은 촬영하고 있는 <하렘의 남자들> 방만 활짝 열려 있어요(웃음). 곧 작품이 공개되면 정화 방과 사강 방을 슬슬 열어봐야겠죠.


새틴 셔츠와 이너 셔츠, 팬츠, 부츠, 벨트는 모두 Celine.

새틴 셔츠와 이너 셔츠, 팬츠, 부츠, 벨트는 모두 Celine.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공개된 뒤 개봉을 앞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어떻게 만났나요

먼저 소설로 작품을 접했죠. 당시 백영옥 작가님의 작품을 하나씩 도장 깨기 하고 있었는데,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같은 모임이 실제로 이뤄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마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파는 수면 캔디나 숙면 쿠키를 보고 ‘저런 게 있다면 사보고 싶긴 하네’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 작품도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상실의 아픔을 달래주는 정성스러운 아침밥을 만들어준다는 설정, ‘실연 기념품’을 교환한다는 설정 모두 흥미롭고 따뜻했어요. 비슷한 슬픔을 가진 타인과 오히려 더 솔직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끌렸어요.


또 다른 차기작 <현혹>은 분위기도, 시대도 전혀 다른 작품이죠. 무엇이 수지 씨를 끌어당겼나요

웹툰을 먼저 보지 않았지만 한재림 감독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그 안에 담긴 여자의 사연이 깊게 와닿았어요. 오랜 세월과 마음이 담긴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준다는 설정도 흥미로웠고요. 송정화를 연기하면서 정말 다양한 모습이 화면에 담긴 것 같은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즐거웠고, 많이 배웠어요. 모든 시간이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아요.


드레스와 터틀넥 스웨터, 팬츠, 부츠, 벨트는 모두 Celine.

드레스와 터틀넥 스웨터, 팬츠, 부츠, 벨트는 모두 Celine.

어느덧 데뷔 후 배우로서 열여섯 번째 가을을 지나고 있어요. 예전에는 “안 해본 역할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자주 말했는데, 이제는 ‘새로움’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는지

솔직히 말해 여전히 그 기준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 작품에 끌리면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기준을 정해두고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작품과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요. 결국 저는 그 다음 ‘끌림’을 많이 믿는 것 같아요.

관련기사

Credit

  • 패션 에디터 김유진
  • 피처 에디터 박찬
  • 사진가 김희준
  • 패션 스타일리스트 박세준
  • 헤어 아티스트 손혜진
  • 메이크업 아티스트 원정요
  • 세트 스타일리스트 권도형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어시스턴트 임주원 / 심지원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