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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EY MIYAKE
LOEWE
보라색은 꽤 다양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봄날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과 라벤더 꽃밭, 해가 지기 직전의 하늘에 잠시 머무는 보랏빛 노을 혹은 잘 익은 포도와 자두의 짙은 빛깔. 생각해 보면 보라색만큼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하기 어려운 색도 드물다. 연해지면 한없이 부드럽고 낭만적이지만, 조금만 짙어지면 돌연 관능적이고 미스터리하다.
푸른 기가 더해지면 차갑고 미래적 분위기를 내다가도 붉은 기가 스며드는 순간 뜨겁고 화려하게 변한다. 빨강의 열정과 파랑의 냉정함,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뒤섞여 탄생한 색이니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당연하다. 이 변화무쌍한 보라의 존재감은 2026 봄 여름 런웨이에서 증명됐다.
MUGLER
CFCL
계절이 바뀐 지금도 보랏빛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26 가을 겨울에는 한층 깊고 다양한 컬러 팔레트를 선보였다. 화이트에 가까울 만큼 희미한 라일락부터 선명한 바이올렛과 로열 퍼플, 레드와 뒤섞인 마젠타, 블랙에 가까울 만큼 깊어진 플럼까지. 봄과 여름의 보라가 가볍고 화사했다면, 가을과 겨울의 보라는 더욱 짙고 풍부한 스펙트럼으로 확장된다.
두 시즌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만큼 퍼플을 즐기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맥퀸과 씨에프씨엘의 퍼플은 보라색에 우유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 부드러웠다. 채도를 덜어낸 라일락은 우리가 보라색에 가지고 있던 강렬한 이미지를 지우고 한층 가벼운 느낌과 섬세함을 보여주었다. 반면 로에베와 뮈글러가 선택한 보라는 훨씬 자신감이 넘친다. 한눈에 ‘로열 퍼플’이라는 이름이 떠오를 만큼 선명한 바이올렛이 테일러드 재킷과 드레스처럼 면적이 큰 옷을 과감하게 물들였다.
CHLOÉ
MIUMIU
BALENCIAGA
이번 시즌의 핵심은 보라를 포인트 컬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보라색 자체를 룩의 중심에 내세운 것이다. 스펙트럼의 반대편으로 갈수록 분위기는 다시 반전된다. 발렌시아가와 끌로에, 미우미우에서 발견한 퍼플에는 레드와 브라운의 온기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잘 익은 포도와 자두를 떠올리게 하는 플럼과 와인빛의 퍼플은 선명한 바이올렛보다 한층 묵직하고 우아하며, 관능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결국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보라색에 하나의 역할만 부여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소녀적이고 낭만적이며, 누군가에게는 관능적이고 대담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엄격하고 지적인 색으로 표현했다. 같은 퍼플이라는 이름 아래 전혀 다른 분위기가 공존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번 시즌 퍼플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MCQUEEN
옅은 라일락을 뉴트럴 컬러처럼 담백하게 입어도 좋고, 선명한 바이올렛을 블랙 대신 과감하게 선택해도 좋다. 깊은 플럼을 브라운이나 버건디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는 것도 방법이다. 하나의 정답을 찾기보다 수많은 퍼플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농도를 고르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번 시즌 퍼플을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려는 노력은 애초에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때 강한 존재감으로 어렵게 느껴졌던 보라가 디자이너들이 풀어낸 각자의 개성 덕분에 선택지가 많은 매력적인 컬러로 변모했다. 올가을 옷장을 새롭게 물들일 컬러를 찾고 있다면 보라가 정답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보라색을 입기 쉬운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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