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마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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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다 유료 가입자를 보유한 OTT 서비스는 넷플릭스입니다. 한국에서도 예외 없이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 국내에선 넷플릭스에 대한 반감이 일었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에 등극했지만, 정작 이 시리즈를 만든 한국 제작사 등에 돌아오는 추가 수익이 딱히 없었다는 이유입니다. 넷플릭스 관련 기사에 뜬금없이 "망 사용료나 내라"라는 댓글이 달리는 배경이기도 해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라는 겁니다.
아쉽기는 해요. 하지만 이 문제는 넷플릭스 탓도, 〈오징어게임〉 탓도 아닙니다.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게임〉의 시나리오를 여러 제작사에 가져갔지만 투자를 거절 당했다고 밝혔는데요. 넷플릭스는 이 시나리오에 돈을 쓴 거예요. 〈오징어게임〉이 흥했으니 다행이지, 망했다고 넷플릭스가 투자금을 회수하진 않아요. 다만 〈오징어게임〉 덕에 K-콘텐츠의 위상이 올라갔으니, 〈오징어게임 2〉는 더 나은 조건의 계약을 할 가능성이 있겠죠?

사실 넷플릭스에 '미운 털'이 박힌 건 '망 사용료 논란' 탓이었습니다. 망 사용료가 뭐냐고요? 콘텐츠 제공자(CP)가 인터넷서비스업체(ISP)의 인터넷 망을 이용하기 위해 내는 사용료입니다. 국내에서는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의 ISP가 CP인 넷플릭스를 이용자와 이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ISP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CP의 대용량 콘텐츠 탓에 트래픽 과부하가 걸렸으니, 이용자들이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개선 비용을 '망 사용료'의 형태로 지불하라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네이버, 아프리카TV, 엔씨소프트 등 국내 IT 기업들은 ISP 3사에 망 사용료를 내고 있기도 해요. 해당 기업들은 한국 통신사와 접속 계약을 맺고 한국에 서비스 관련 서버를 설치했으니까요.
반면 해외 CP들은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해외 CP들은 이미 자신들의 서버가 위치한 국가 ISP와 접속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논리인데요. 현재 넷플릭스 등 주요 해외 CP의 서버는 일본에 있거든요. 한국 ISP에는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에요.

한국의 사례로 바꿔 설명해 볼게요. 네이버는 국내 통신사와 접속 계약을 맺었으니 그리로 돈을 지불하겠죠? 하지만 한국이 아닌 특정 국가에서 네이버의 트래픽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해서 네이버가 해당 국가의 ISP에 접속료를 내지는 않는다는 게 CP들의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NO 계약, NO 지불’이죠. 비슷한 맥락에서 이미 국내 통신사 가입자들, 즉 CP가 제공하는 콘텐츠 이용자들이 양질의 접속 환경을 위해 통신료를 지불하고 있는데 이 같은 성격의 사용료를 해외 CP에게 또 받겠다는 건 이중 과금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사실 국내 통신사들이 해외 CP에게 받겠다는 '망 사용료'로 논란이 벌어진 건 익숙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서버 위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국가와 국가 사이 데이터를 주고 받을 때는 고객이 아닌 통신사끼리 정산을 하는 게 원칙입니다. 즉 일본에 있는 넷플릭스 서버의 데이터가 한국으로 이동하는 비용은 일본 통신사와 국내 통신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게 국제 표준이죠.

그래서 국내 통신 3사와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법정 공방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 통신사가 이긴다면 CP의 망 사용 대가를 국가별 ISP에 지급해야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세계 각국도 현재 기업에 망 사용 대가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로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이 적지 않습니다.
자, 그래서 넷플릭스가 국내 통신사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국내 통신사 네트워크 안에 캐시 서버를 설치하겠다는 거죠. 캐시 서버를 세우면 굳이 해외망을 거쳐 일본에 있는 넷플릭스 서버까지 접속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같은 넷플릭스의 액션에는 '국내 통신사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망 사용료 같이 유례 없는 형식의 통행료는 내지 않겠다'라는 선언 같은 게 담겨 있는 셈입니다.

통신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LG유플러스는 벌써 넷플릭스의 캐시 서버를 도입했고, 국가 기간망인 KT는 강한 해외 네트워크가 셀링 포인트입니다. 개인 인터넷 이용자들의 통신사 선택 기준이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서비스를 끊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인 상황에선, ISP가 굳이 넷플릭스와 척을 질 이유도 없죠. 그런데 SK브로드밴드는 여전히 망 사용료를 받겠다고 버티는 중입니다. 이제 상황은 자연스럽게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양자 구도로 전환됐습니다.
2. 쟁점은 '망 중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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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인터넷이 보급화한 지가 언제인데 왜 이제 와서 망 사용료를 받고 말고가 논란이 되는 걸까요? 이미 전 세계 인터넷 상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국내 일 평균 인터넷 트래픽의 대부분을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의 해외 CP에서 나오는 상황은 통신사에게 달가울 리 없어요. 5G 시대가 본격화되면 트래픽 발생량은 더 늘어날 겁니다. 이들은 통신사가 여태까지 국내 IT 기업들에게 걷었던 '망 사용료'를 내지 않으니까요. 이용자들 역시 현금 선물 같은 구시대적 유인책 보다는 쾌적한 접속 환경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인 터라, 지금껏 독과점 구조를 유지하던 통신사들이 서비스 품질을 강제로(?) 높여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망 사용료가 논쟁적인 건 이처럼 여러 현실적 입장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 쟁점은 앞으로의 인터넷 시장에서 '망 중립성'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망 중립성'은 모든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모든 콘텐츠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인데요. 그러니까 ISP가 트래픽을 대량으로 유발하는 CP한테 돈을 더 받거나 속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언급했듯 트래픽의 총량이 늘어난 데다가 이 트래픽이 특정 CP에 몰리는 상황이 지속되며 결국 통신사들은 망 사용료 개념을 꺼내 들었어요. 즉, 망 사용료 논란은 망 중립성 원칙 존폐 논란과 궤를 같이 합니다.
물론 더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CP에게 돈을 더 걷고 싶다는 ISP의 입장도 이해는 가죠. 그러나 망 중립성이 깨졌을 때의 부작용도 무시할 순 없어요. 이미 비싼 망 사용료 탓에 국내 소규모 CP들은 문을 닫았고, 쉽사리 시장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어요. 국내 OTT 중 왓챠를 제외하고는 자본을 대 줄 모기업 없는 순수 CP 벤처가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망 중립성이 깨지고 전 세계 ISP들이 CP에게 돈을 추가로 수수하기 시작하면, 돈을 안 낸 CP들은 이용자와의 연결 측면에서 불이익을 당할 건 자명합니다.
3. 어차피 피해는 이용자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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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싸움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콘텐츠 이용자들의 피해입니다. SK브로드밴드가 이길 경우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 부담을 이용자들에게 전가할 테고, 넷플릭스가 이기면 SK브로드밴드가 이용자들의 서비스 요금을 올릴 거예요.
실제로 넷플릭스는 18일부터 한국 서비스 구독료를 인상했습니다. 프리미엄의 경우 거의 20%가 올랐어요. 물론 약 6년 만에 처음으로 구독료를 올리는 것이긴 해요. 하지만 〈오징어게임〉 등 국내 콘텐츠의 대박과 이에 따른 이용자 증가로 쏠쏠한 이익을 챙겼고, 망 사용료 논란 등 여러 잡음이 있기 때문에 여론이 곱지 않은 상황입니다. 오얏나무 아래선 갓을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이 국면에서 넷플릭스의 구독료 인상은 악수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결국엔 CP 공룡과 ISP 공룡의 싸움 탓에 이용자가 새우 등 터질 수도 있는 노릇임을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