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처럼 자주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한국 사람들은 끊임없이 궁금해했다. 음식은 입에 맞는지, 주거환경은 어떤지, 좋아하는 점이나 싫어하는 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외국인이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말이다. 한국 사람 특유의 오지랖일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처음에는 “뭐지? 수많은 나라 중 하필 살기 어려운 나라를 선택한 건가?”라는 의심이 잠깐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산 지도 9년이 지난 지금, 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됐다. “그럼요. 살 만하죠.”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가 있고, (지난 기사들에 썼듯이) 그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삶이 불만족스럽기만 하다면 10년 가까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고향처럼 느끼게 만드는 정겨움과 한국만의 매력이 구석구석 존재한다. 사실 여기서 살면 살수록 영국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느낀다. 연휴에 영국에 잠깐씩 머물지만, 도저히 한국처럼 편하지가 않다.
나는 왜 한국을 좋아하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순위 없이 10가지만 나열하려 한다.
*맹목적인 애국심(이른바 ‘국뽕’)을 고취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나에게 한국 음식은 이미 오래전에 호기심을 넘어선 익숙한 맛이 됐다. 삼겹살, 감자탕, 만두, 칼국수, 김치찌개, 부대찌개, 순두부찌개 모두 자주 즐기며, 그중에서도 청국장처럼 묘하고 깊은 맛을 좋아한다. 완전 내 스타일이다. 다양한 반찬들과 리필 서비스에서도 한국만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어느 골목길에 숨겨져 있는 할머니 손맛이다. 식당 이름뿐인 ‘할머니’ 맛인 경우도 있지만, 세월의 경험이 녹아든 진정한 ‘손맛’을 발견할 때도 많다. (단순한 양식이 준비에 곱절의 노력이 들어가는 한식보다 가격이 비싼 점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10분 만에 중국 음식이 배달되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나? 15분 만에 피자 배달 가능? 네. 가능합니다. 제가 직접 재 봤습니다.

영화 〈버스 정류장〉 스틸
#3. 대중교통
서울의 지하철은 최고다. 청결하고, 편리하며, 서울시 구석구석까지 뻗어있는 것에 비해 가격도 착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그라피티도 없는 데다 항상 정시에 도착해서 정시에 출발한다. 특정 지하철 노선이 15분 정도 지연되는 것이 뉴스토픽으로 다뤄질 정도로 FM 적인 성격을 자랑한다. 버스와 지하철은 물론 고속버스와 기차의 가격 또한 일상의 ‘대중’ 교통수단으로 손색이 없다. 1cm 정도 의 정도의 눈에 공항과 철도 전체가 멈춰서는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런던 지하철은 수 십분 늦는 일은 다반사며 견디기 어려울 만큼 더럽고,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영화 〈터널〉 스틸
물론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 어딘가에서도 참혹한 범죄들이 벌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끔찍한 일을 뉴스에서도 종종 보고 있으며 실제로 지인의 경험을 통해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도, 한국이 비교적 안전한 나라인 것 또한 사실이다. 푼돈을 갈취하기 위해 흉기로 행인을 위협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여타의 많은 나라와 비교하면 말이다. 흉기까진 아니지만 나 역시 런던에서 몇 차례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9년간 단 한번도 위협을 느끼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한국에는 놀 거리가 참 많다. 개인적으로는 노래방을 아주 좋아한다.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시원하게 노래를 부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물론 가격 역시 저렴하고 말이다. 영화관은 또 어떤가. 깨끗하고 현대적인 데다 팝콘은 상상 이상의 맛을 자랑한다. 얼마 전 영국에 잠시 돌아갔을 때 〈기생충〉을 보기 위해 엄마와 함께 런던의 영화관을 찾았다. 동네 영화관의 일반석 티켓 2장이 6만원! 한국이라면 카드사 할인에 멤버십 포인트도 적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24시간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바, 펍, 주점, 식당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기 좋아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새벽까지 문을 여는 영업시간은 정말 특혜다.

영화 〈연애의 온도〉 스틸
#6. 공공서비스
영국에서 나는 은행이나 우체국에 갈 때마다 속 터지게 느린 시스템에 화가 목구멍까지 차오르기 일쑤였다. 은행 계좌 개설에 1개월이 걸린다면 믿을 수 있겠나?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도 제대로 되는 건 없고 심지어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신사의 나라’인 영국에서 말이다. 인터넷 설치하려고 하면 몇 주를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격 또한 사악하기 그지없다. 이렇듯 모든 행정이 느려 터졌고 지불해야 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다. 공공 서비스 면에서 영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모텔을 좋아한다. 모텔에서의 은밀한 섹스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모텔이란 공간의 편의성을 좋아한다는 거다. 국내 여행을 할 때 숙소를 예약 하지 않아도 현지에서도 얼마든지 저렴한 모텔에 숙박할 수 있다는 사실 꽤 마음 든든한 일이다. 여행 경비를 절약하거나, 극성수기에 방 예약이 어렵다면 찜질방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괜찮은 대안이다.

드라마 〈하얀거탑〉 스틸
큰 병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일반 의료서비스는 우수하고 의료비 또한 타당한 수준이다. 모든 과의 전문의가 상시 대기하고 있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가 있다. 영국의 경우 무료 의료서비스제도가 있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장기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전문 의사 진료에 몇 주, 큰 병이라면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언제가 영국에서 내가 팔목을 삐어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사립 병원을 방문했더니 X레이 검사 한 번에 40만 원 정도의 진료비가 청구됐다. 한국이라면 5분 정도 대기한 후 2만 원 정도의 금액에 X레이를 찍었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 스틸
영국에서 인터넷은 형편없이 느리고 지하철 인터넷 연결은 상상할 수 없다.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는 간혹 와이파이 연결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딱, 역에 서 있을 때 만이다. 그러니까, 역에 멈춰서는 1~2분가량 와이파이를 사용하다가 지하철이 움직이면 다시 끊기는, 그런 상황의 반복이라고 보면 된다. 작년 영국에 갔을 때 우리 집의 인터넷은 2G 혹은 3G였다. 평범한 가게나 건물 안은 4G/LTE를 지원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LTE가 디폴트 값이겠지만, 빠른 모바일 네트워크나 브로드밴드 속도를 경험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 스틸
한국에서는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살 수 있다. 구매한 상품이 국내배송이면 보통 다음날 받아 볼 수 있다. 요즘은 밤 12시 이전에 주문하면 신선 식품을 다음 날 아침 7시 전까지 받아 보는 새벽 배송까지 등장했다. 쇼핑몰에서 경쟁적으로 제공하는 이런 특급 배송 서비스는 오프라인 쇼핑과 온라인 쇼핑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아직까지 나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이는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러한 여러 장점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도 한국은 살 만한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