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실의 사계절'에 활짝 핀 엄마의 인생, 엄마의 이야기
물길을 가로지르며 서로를 알아간 모녀 오춘실과 김효선이 <오춘실의 사계절>에 담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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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이 입은 드레이프 재킷과 화이트 셔츠는 모두 Gaze de lin. 오춘실이 입은 드레이프 슬리브리스 톱은 Gaze de in.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엄마 오춘실과 함께 4년간 수영장에서 헤엄치며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오춘실의 사계절>을 써냈습니다. 엄마의 일대기를 기록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효선 엄마가 일을 오래하셨어요. 그러다 허리가 안 좋아 은퇴했고, 저는 ‘이렇게 엄마가 돌아가시면 엄마가 지나온 40년간의 노동 역사는 모두 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엄마의 이야기를 남겨야 했죠. 그럴 가치가 충분했거든요. 15년간 책을 팔며 살아온 제게 책은 가장 익숙하고 훌륭한 기록 수단이기 때문에 <오춘실의 사계절>을 펴냈습니다.
열네 살 때부터 염전에 나가 일했던 오춘실은 이후 40년간 소주 공장, 과수원, 식당, 병원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마지막 일터인 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다 허리 부상과 함께 정년 퇴임했고요
춘실 허리 수술 후에 집에서 치료받고 있는데 전화가 울리더라고. 허리 부상은 산재 처리됐고, 동시에 정년 퇴임이 완료됐다고요. ‘아, 나도 벌써 정년이냐’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요. 솔직히 너무 서운했어. 한 군데서 오래 일하다 한순간에 끝나버리는 게. 효선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하는 건 아닌가 봐요. 엄마는 마음의 많은 부분을 직업에 바쳤던 것 같아요. 책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엄마가 학교 청소를 힘든 일로 치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당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고, 인생 계획도 나름 세웠죠. 사람의 일을 함부로 생각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어요. 남이 보기에 어려워 보이는 일도 실은 그렇지 않구나. 제 생각보다 엄마는 행복하고 성실하게 살았고,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생계 수단을 넘어 당신의 세계를 만들어준 일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춘실 어떤 의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건 없어요, 그냥 하는 거지. 삶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힘들어요. 한 번은 내가 너무 답답해서 젊을 때 집주인 아줌마에게 물었어요. “아줌마,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들어. 너무 힘들어요”라고. “누구 집이든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애로사항이 있단다. 그냥 살아라.” 아줌마의 대답이 삶의 교훈이 됐어요. 효선 책을 쓰기 위해 엄마를 취재하며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엄마는 스스로 돈을 벌면서 독립적인 인간이 됐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죠. 경제력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래도 곧게 서기 힘든 것 같거든요. 아무리 힘들어도 직접 번 돈으로 자기 삶을 꾸려 나가는 방식이 한 사람을 바로 설 수 있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아요.
일을 떠나 보낸 지금의 삶은 어떤 풍경인가요
춘실 일을 포기하고 지금처럼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요. 그래서 깡통을 줍고 다녀요. 소일거리로 재미삼아(웃음). 효선 훌륭한 여성이죠.
엄마의 개인 삶을 글로 기록하면서, 세상에 드러내기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을 텐데
효선 처음에는 변명하고 싶은 저를 발견했어요. 일터에서 엄마가 사람들과 잘 못 지내고 부당한 상황과 맞닥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이고 우리 엄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저 자신을요. 근데 이 마음은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에 대해 좋은 말만 하기를 바라는 제 내면에서 만들어진 것 같아요. 누구의 편에 서지 않고 각자의 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내면을 다듬는 데 시간이 좀 걸렸죠.

“자주 엎어지던 엄마는 넘어져서 된통 깨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했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 같은 행운이 엄마에게 허락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비바람이 불어도 엄마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 복스러운 얼굴이 기록된 <오춘실의 사계절>.
이야기 초반에 김효선이 직장에서 겪은 부당한 갈등이 솔직하게 쓰여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와 엄마의 퇴직이 맞물렸죠
효선 그때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같이 붙어 살면서, 당신의 강인한 면을 발견했고 이게 큰 힘이 됐어요. 엄마의 말버릇이 “오늘은 시원해서 살겠다” “깨끗해서 살겠다” 항상 말 끝에 ‘살겠다’를 붙여요. 그 말을 자꾸 들으니 나도 ‘아, 살겠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힘들면 “아, 죽겠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죠
효선 그러니까요. 춘실 씨는 샤워하다가 물이 따뜻해도 “따뜻해서 살겠다”고 말해요. 엄마가 배영에 처음 성공했을 때. 그리고 엄마가 혼자 수영장에서 사이드 킥을 연습하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요. 그런 순간들이 되게 좋아요. 물속을 들여다보며 연구하는 모습이 참 예쁘고 수영하는 사람들을 골똘히 쳐다보면서 자신이 못하는 이유를 찾을 때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 같죠. 제가 엄마에게 놀라는 부분은 겉과 속이 똑같은 순수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에요. 어릴 때는 그걸 몰랐어요. 살기 힘드니까 웃지도 않고 제게 엄하게 했거든요. 그 엄한 모습이 어떻게든 역경을 헤쳐 나가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거였어요. 엄마가 일할 때 “돈이 적어서 못 다닌다” “누명 쓰고는 일 못한다”면서 그만뒀던 상황에 대해 대화했을 때 당시 사정을 내밀하게 알게 됐어요. 우리는 살아가며 엄마를 엄마로서만 보잖아요. 엄마가 인간으로서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존재인지 간과하죠.
번아웃과 사내의 부당한 대우에 맞설 수 있었던 데는 강인한 엄마의 역할이 컸군요
효선 그렇죠. 14년 동안 쌓아온 게 몸에 축적됐나 봐요. 일 때문에 힘들었지만 엄마처럼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하면서 나아갔고 결국 극복했어요. 엄마가 제가 겪은 일을 미리 겪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가 사회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나름의 노하우에 따라 번아웃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운동과 체중 감량을 권한 의사의 말에 오춘실은 정년 퇴임 후 김효선을 따라 수영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첫 수영 경험은 어땠나요
춘실 열다섯 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 있어서 둥둥 뜨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물속에 얼굴을 담그면 무서워서 배영만 할 줄 알아요. 수영하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수면에 둥둥 떠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뿌듯하고요. 효선 요즘은 코를 막고 물속에서 숨 참기를 연습하고 있어요. 자유형에 도전하기 위해서죠. 춘실 처음에 수영장에 갔을 때 사람들이 막 수근거리더라고. 난 그게 싫어요. 우리는 모두 공평하고 똑같은 사람인데 왜 차별해. 효선 아,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저 보고 뚱뚱하다고 욕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도 사람 쳐다볼 때 조심하란 말이야. 남 욕하지 마란 말이야(웃음).
엄마의 어린 시절과 성격, 일상을 사계절에 비유했습니다. 왜 오춘실의 우여곡절을 계절에 비유했나요
효선 처음에는 엄마의 이름이 ‘춘실’이라서 엄마의 봄, 여름을 떠올렸어요. 4년의 집필 세월을 보내며, 문득 1년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이 계절에 생겨나는 우여곡절도 그리 특별한 건 아니고 모두 지나가더라고요. 계절은 순환하고 사람의 일생도 순환합니다. 엄마가 겪은 많은 계절은 여전히 반복되고 순환하는 리듬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춘실 다들 똑같이 사는 인생인데 뭐 특별한 게 있다고 글로 쓰냐 그랬더니 효선이가 “아니야 엄마. 엄마의 일생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될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효선이가 세 살 때 책을 쥐어 줬더니 두 달 만에 읽더라니까요. 글도 또래 친구보다 일찍 깨우쳤어요. 내 새끼지만 기특했어요. 효선 이렇게 말하는 엄마도 막상 책이 출간되니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어린 아가처럼 설렜는데 말을 못했어. 나 정말 두근두근해.”
책에서 어떤 시절의 이야기를 가장 애정합니까
춘실 효선이가 커서 대학교 갔던 때지. 우리 엄마가 살아 계실 때라 입학식에 왔었어요. 나도 효선이를 키우느라 고생했지만, 자기가 직접 벌어서 대학교에 다니는 걸 보니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하는 걸 보고 남편을 엄청 타박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효선 재미있는 사람이에요(웃음). 엄마랑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상대방을 밝게 만드는 에너지가 느껴져요. 오춘실의 에너지는 어디서 비롯될까요
효선 그게 엄마가 갖고 있는 회복 탄력성인 것 같아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갈 길 가는 성격이거든요. 40년간 일하며 자연스럽게 자라난 성향이겠죠. 이 책에도 그 힘이 많이 담겼는지, 많은 사람들이 춘실의 이야기에 공감하더라고요. 특히 별로 웃고 싶지 않은데 웃었던 경험처럼, 여자가 일터에서 겪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대한 것들이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겪는 것 같아요.
독자의 반응 중 기억에 깊이 새겨진 것은
효선 <여성신문>에 문학 편집자인 최지인 선생님이 쓴 리뷰가 기억에 남아요. ‘책을 홍보하기 위해 이 책이 얼마나 훌륭한지 글로 써온 사람이 엄마의 인생 전체를 리뷰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다.’ 이 문장이 정말 와닿았고, 이 리뷰를 읽고 책임감을 더 느꼈어요.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분들에게 너무 큰 감사를 느끼는데요. 제가 ‘알라딘’에서 책을 리뷰하는 MD라서 그런지 책의 리뷰를 정확하게 쓰는 게 참 힘들다는 걸 잘 알거든요. 그리고 작가 입장에서 그 리뷰가 얼마나 소중한지 체감할 수 없었어요. 물론 지금은 공감하죠.

김효선이 입은 드레이프 재킷과 화이트 셔츠는 모두 Gaze de Lin. 분홍색 수영모는 본인 소장품. 오춘실이 입은 드레이프 슬리브리스 톱은 Gaze de Lin.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노란색 수영모와 골드 네크리스는 본인 소장품.
기록이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효선 저는 할 줄 아는 게 기록밖에 없어서 제게는 너무 소중한 일입니다. 하루하루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1년 지나고 보면 상당히 많이 축적돼 있어요. 마치 조약돌을 쌓아올려 탑을 만든 것처럼요.
수영장에서 함께 헤엄친 지 벌써 4년째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체감할 때는 언제인가요
춘실 수영하고 걸어 나오면 보이는 큰 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알려줘요. 열매가 열린 것도 보이지, 그러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효선 앵두나무 말하는 거지? 엄마는 키가 작아 만날 저 보고 앵두 따 달라고 졸라요.
둘도 없는 친구인 서로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나요
춘실 내 자식이지만 묻고 싶은 게 없어요. 말대꾸도 안 하고, 어떤 말에든 바로 ‘깨갱’하니까. 참 착한 딸이야. 효선 엄마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제 환갑 잔치 꼭 열어달라고요(웃음). 지금부터 20년, 딱 20년만 더 버텨줄 거지?
나를 엄하게 키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면
효선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인정했을 때예요. 제가 어릴 때 엄마가 엄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서 사과했어요. 악착같이 살아내기 위해 아등바등 일하느라, 조금이라도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거였어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오춘실은 정말 보통 사람이자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이 책의 독자들에게,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춘실 착실하게, 진실되게 살아라. 다른 건 없어요. 겉과 속을 똑같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잘 사는 거예요. 효선 수영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벌거벗고 샤워하고, 수영복만 입고 있어요. 현실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처지인지 전혀 알 수 없죠. 모두 공평합니다. 이처럼, 생각보다 많은 일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저 수영장에서 서로 섞이면 중요한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요. 그러니 솔직하고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너무 닦달하면, 크게 한 번 넘어질 수 있으니까 본인을 챙기는 게 우선입니다. 아프지 않도록 속 편하게 살아요, 우리. 이번 계절이 지나면 다음 계절이 또 오니까요.
두 사람은 지금 어떤 세상으로 나아가는 중입니까
효선 꿈꾸는 세상으로. 최종 목표는 오전에 폐지 줍다가 수영장에 가서 수영하고 오후에 도서관에서 추리 소설 세 편 읽고, 집에 가서 쿨쿨 자는 그런 삶이거든요. 춘실 나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서로 베푸는 유연한 세상. 나만 안고 있으면 병 나요. 그리고 내 최종 목표는 자유형이에요. 효선 하다 보면 하겠지. 배영도 금방 배웠으니까!
Profile
오춘실 열네 살 때 소금 밭에서 심부름으로 급료를 번 후, 식당과 공장, 과수원, 병원, 목욕탕, 아파트, 학교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40년간 일했다. 165개월 동안 근속한 직장을 그만두고 43개월째 허리 재활을 위해 수영을 배우고 있다. 김효선 15년간 온라인 서점의 소설책 판매직으로 일했다. 엄마 오춘실의 허리 회복을 위해 직접 수영을 가르치기로 결심. 같이 물속을 휘젓고 다니며 나눈 대화를 <오춘실의 사계절>로 펴냈다.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사진가 김민석
- 패션 스타일리스트 이진혁
-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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