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인 특권(White Privilege)’. 특정 피부색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동양 사회에서 사회경제적인 특권을 누린다는 뜻이다. 이 특권은 분명 존재한다. 나 역시 그동안 백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차별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목격해왔다. 그리고 왜 나만 예외인지 항상 궁금했다.
그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대학원에서 한국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여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아마 이러한 과정 자체가 나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으로 일부 이어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을 많은 부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로 ‘백인 특권’ 외에 ‘여권 특권(Passport Privilege)’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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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내가 받는 첫 질문은 대개 “어디서 왔니?”였다. 영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곧바로 의심과 미심쩍은 분위기는 사라지고 이런 호의적인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멋있다” “신사 나라에서 오셨네요” “영국 악센트가 너무 좋다” “선진국에서 왔네요” 등등. 그러니까, 내 경험상 피부색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 건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의 문제였다는 거다.
몇몇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난 시점부터 계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사람이 나의 미래 배우자일까? 부자인가? 교육 수준은? 이 사람이 나한테 이익이 될까? 이 사람과 사귀는 것이 시간 낭비 아닐까? 추측하자면, 내가 태어난 곳은 이러한 고려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내가 가진 영국과 프랑스 여권에 비하면 백인이 아닌 나의 피부는 부차적인 것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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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왜 한국에서 사니? 우리 모두가 헬조선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있는데… 굳이 영국에서 살지 않고 여기서 살고 있니? 이해가 안 돼” 대답은 간단하다. 살기 편하기 때문이다.인터넷 설치 요청 전화를 하면 1시간 만에 연결되고, 고장 난 노트북을 들고 가면 AS 접수 몇 분 만에 기사님께 전달되는 나라가 어디 흔한가? 지갑이나 가방을 커피숍에 두고 나와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몇 없다. 서울 지하철은 깨끗하고 편리하다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교통수단이고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인터넷 속도는… 말해 무엇하랴. 단연 세계 1등이다. 정말이지,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보다 살기 편한 나라도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살아가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부당함이나, 성 불평등, 약한 사법체계, 떠들썩한 인권침해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넘쳐난다. 책임 없는 특권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기에 만약 내게 모종의 특권이 있다면 기자로서,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러한 사회적인 이슈들을 인지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책임이 아닐까 싶다. 한국 사람이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