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엘르보이스] 그날이 오면

유튜버 구르님이 말하는 그날. 나의 반려가족을 떠나보낼 그날.

프로필 by 전혜진 2025.09.29
© unsplash reba-sp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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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늘 닥치고 나서야 준비되지 않았음을 깨달을까? 13년을 함께한 나의 개, 쮸의 배에 커다란 종양이 있다는 걸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내가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늙은 개와 함께 산다는 것도 그리고 이별하는 것도 말이다. 이렇게까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늘 뭔가를 맞닥뜨리고 나서야 부족함을 깨닫는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우리 개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선명한 갈색 털에 머리 가운데 주둥이까지 이어지는 귀여운 하얀 무늬가 돋보이는 쮸의 얼굴에 새하얗게 바란 털이 자라기 시작했다. 목 뒤도 희끗희끗한 털이 많이 생겨 선명했던 하얀 줄이 흐려진 지 오래였다. 어느 순간부터 거실 의자나 소파에 뛰어오르지 않은 쮸. 잠은 오래, 깊게 잤다. 간식의 ‘간’ 자만 꺼내도 귀를 쫑긋 세우며 번개처럼 달려오던 쮸는 간식 봉투의 부스럭 소리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할머니 개가 됐다.


그래도 이별은 영영 먼 일로 알았다. 소화 불량인 줄 알고 “사료 좀 천천히 먹지~” 같은 타박을 하며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쮸의 뱃속에 지금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커다란 종양이 있다는 진단이 폭우처럼 우리 가족을 덮쳤다. 악성 종양일 가능성이 90%, 그렇다면 제거해도 2개월 정도 살 것이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그마저도 종양이 파열되면 지금 당장 쇼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오래 다닌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냉정하지만 명료하게 쮸가 평균 수명을 산 개라는 말을 덧붙였다. 가족들의 의견은 반으로 갈렸다. 짧은 삶이 남았다면 병원에서 괴롭게 하지 말고 시간을 함께 더 보내자는 의견과 그래도 하는 데까지 치료를 시도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 조언을 구한 지인들의 의견도 갈렸다. 병원에서 고양이를 보낸 언니는 수술을 후회한다고 했고, 수술하지 않고 개를 보낸 친구는 힘 닿는 데까지 해보지 않은 것에 후회한다고 했다. 어떻게 해도 후회스러운 일이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보내는 일은.


온 세상이 뿌리부터 뒤집히는 감정으로 하룻밤을 새웠다.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진 쮸는 자꾸 구석으로 숨었다.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걷거나 앉지도 못했다. 나는 그를 시선에서 놓친 잠깐의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날까 봐 두려웠다. 동시에 괴로워하는 쮸를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 방 밖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식구들의 반대에도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을 생각이었다. 어두운 거실 한가운데 쪼그려 앉아 진료에서 물어볼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밥을 거부하고 있는데 강급해야 할지, 종양이 터지면 고통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설령 안락사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지표로 알아챌 수 있는지까지.



 © unsplash jason-haw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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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일어난 일들은 요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휘몰아쳤지만, 장시간의 해피엔딩이 있었기에 독자들에게 미리 밝힌다. 파열이 미세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CT 소견에 고민할 새도 없이 개를 수술대에 올렸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천운으로 종양은 양성이었다. 배에 있던 커다란 장기가 사라졌지만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장기는 아니다. 쮸는 기운을 차렸고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캉캉 짖으며 밥을 내놓으라며 거실을 활개친다.


오랜 투병을 이어가고 있는 반려동물의 가족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짧은 간호 생활 동안 많은 걸 느꼈다. 종교도 없는 내가 전능한 누군가에게 이렇게 절박하게 한 생명의 건강을 빌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타인의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시도를 쉽게 비웃고 폄하해서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구성원 중 누군가가 아플 땐, 남은 가족의 적극적인 지지가 중요한 것도 알았다. 쮸를 수술대에 올린 건 순전히 내 욕심이었고, 수술 다음날 새벽에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 당장 오라는 병원의 전화에 온 가족을 깨웠다. 벌벌 떨고 있는 나에게, 수술을 반대했던 아빠는 급히 차를 몰면서 “몸에 불편한 걸 떼어주고 보낼 수 있으니 혹시 가더라도 좋게 생각하자”고 했다. 그 말이 참 고마워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오면, 다시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맨 몸으로 갈가리 찢어진 마음을 붙잡고 엉엉 울겠지. 하지만 적어도 그순간을 미리 상상하게 해준 나의 쮸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이별을 세밀히 그리고 촘촘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도 조금은 알겠다. 아니다, 그래도 언니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그러니 천천히 이별하자, 내 강아지 쮸야.


김지우

‘구르님’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뇌병변 장애인의 삶을 담은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등을 펴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김지우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