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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보이스] 침대라는 작은 섬이 필요해

당신은 당신만의 작은 섬이 있나요?

프로필 by 전혜진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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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아이 손을 잡고 5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간다. 가족들은 순식간에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오직 자신의 두 발로 몸을 깨우며 아침을 맞고 있다. 50년된 관사, 5층의 5층. 아담한 집에 거주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당시 우리 가족에겐 1층과 5층,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기롭게 5층을 선택했다. 이사를 결심한 순간부터 5층의 불편함을 뛰어넘을 이 집의 강점을 찾아보겠다고 선포했다.


다섯 층의 계단을 가뿐하게 오르내릴 때, 나의 몸 상태로 그날의 기분과 체력을 점치기도 했다. 거뜬하게 숨차지 않고 계단을 다 오른 날엔 자신감이 넘쳤다. 첫째를 보낼 때 한 번, 둘째를 보낼 때 또 한 번, 운동을 다녀올 때, 장 보고 올 때, 일을 다녀올 때 등 하루에 오르내린 계단의 수를 합하면 못해도 매일 63빌딩의 절반은 거뜬히 오르내린 것이다. ‘스테퍼로 운동도 하는데, 등산도 하는데, 계단 운동이 경제적이지. 택배를 덜 시키게 되니 생활비도 절약할 수 있겠네. 아이들의 인내와 끈기도 기대되네’라고 생각하며 정신 승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나자 몸과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차량에서 잠이 든 둘째 아이를 5층까지 업고 오르는 남편을 볼 때도 미안했고, 마트에서 장을 너무 많이 본 날에도, 어린이집 차량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서둘러 뛰어 내려가다 발목을 접질린 날에도, 아이들의 부상이 속출할 때도 이런 선택을 한 나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여느 날처럼 하루에 네댓 번 집을 오르내리고, 평소 해오던 운동을 마친 오후.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아이들이 버거웠다. 내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사 와 첫 몸살이 시작된 것이다. 작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 많은 것을 정리했다. 10여 년 동안 갖고 다니던 세간살이도 많이 버렸지만 우울과 불안도 같이 버리고 온 듯했다. 명랑하게, 씩씩하게 버티면 또 살아지겠지! 그러나 간만에 찾아온 극한의 통증과 무기력을 직면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쉼을 할 줄 모르는구나. 이 피로한 몸을 누일 공간이 우리 집에는 없구나. 집을 예쁘게 꾸밀 줄만 알았지, 편안한 집은 고민해 보지 못했구나!’


잦은 이사와 육아 입문을 기념하며 우리 부부가 제일 먼저 처분한 건 침대였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20대 후반의 몸이라 지금보다 가벼웠으며, 내 몸 하나 정도는 아무 데나 누워 자도 개운했고, 머리만 닿으면 잠이 쏟아지던 나이였다. 하지만 39세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어깨도, 목도, 허리도 무거웠다. 쥐도 쉽게 나고 허리도 일어나 한참을 서성여야 기름칠이 되는 듯했다. 제일 짐스럽다고 생각한 가구가 침대였는데, 이젠 이 몸뚱어리가 제일 짐스럽게 느껴지다니! 이제는 안다.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마음, 나부터 살려야겠다는 마음은 이기심이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한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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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자취방을 가득 채웠던 침대를 기억한다. 좁은 싱글 침대에 지금의 남편과 꽉 껴안고 누워 잤던 시절! 방 한 칸이 청춘의 불안과 우울로 가득 차오를 때 내가 우울 속으로 조난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침대라는 보트 덕분이란 걸. 마흔을 앞둔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애쓰는 ‘노력’보다 내가 가진 힘과 능력의 크기를 빨리 인정하는 것, 그리고 ‘돌봄’과 ‘격려’가 충분히 그때처럼 선행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작은 집에 살더라도, 다시 침대 위에서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 아침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얄궂은 토퍼 말고 그날의 수고와 생의 무게를 나눠 들어줄 묵직한 침대와 매트리스가 필요했다. 5층집을 집답게 편안하게 꾸리는 것(내 갱년기 시절의 보약까지 미리 걱정하는)이 친정엄마의 소원이기도 했다. “니들이 언제까지 청춘일 것 같니? 내 몸을 빨리 인정하고 보살피는 것이 남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게 지혜로운 청춘이지. 우린 어리석게도 너무 자신을 뒷전으로 하고 살았어.” 내 몸의 충전과 쉼을 위해 누운 그 자리만이 진짜 내 집이고, 아지트이고, 나만의 섬이란 생각이 든다.


침대가 들어오던 날, 기사님들이 사다리차를 신청했지만 5층까지 매트리스를 직접 들고 올라왔다. 너무 감사해서 몇 번을 고개 숙여 인사했다. 기사님들은 “전혀 미안해하실 거 없어요. 고객님은 매일 올라오시잖아요”라며 오히려 내 걸음을 응원해 줬다. 아이들이 덩달아 신이 나 분주하게 움직이자 나는 외쳤다. 기사님들이 설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소파 배에 탑승하는 거야! 물에 빠지면 안 돼. 얼른 서로를 구해줘!”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소파 배에 승선했다. “엄마도 얼른 침대 섬에 올라가! 태풍이 오고 있어!”


우리만의 섬으로 입도하기 위해 오늘도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는 가족. 작고 귀여운 엉덩이를 흔들며 단숨에 3층까지 오르는 유치원생 아들과 있는 대로 다리를 찢어가며 세 칸씩 단박에 오르는 3학년 딸의 성장을 지켜본다.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즐겁지 않을 이가 있을까. 우리 가족의 여름은 5층 위에서 안녕했다.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가족과 함께 여성,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전지민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