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이거 오늘 밤까지 마무리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잠깐만, 이거 농담이지? 나 지금 막 사무실에서 나가려던 참인데? 오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더니, 왜 지금? 미리미리 알려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건가? 친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뭐 어쩌라는 거지?

영화 〈오피스〉 스틸
당신도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야근이 직장인의 의무이며 회사의 권리라도 되는 것처럼 금요일 밤 당연히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 물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도, 야근 수당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보통 상사는 퇴근하면서 이 말을 남긴다. “왜 집에 안 가니?” 장난하나? 이 모든 건 내가(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했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
주변에서 회사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몇 명이나 봤는지? 충격적이겠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즉 ‘즐거운 직장 생활’이라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일을 끔찍하게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 각종 쓸모없는 업무들만 줄어들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 “퇴사하고 싶다”를 중얼거리지는 않을 거다. 쓸모없는 이메일, 쓸모없는 보고서 작성, 쓸모없는 회의들만 없다면 말이다. 이 모든 쓸모없는 일들의 결과는? 당연히 야근이다. 정말이지,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다.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언젠가 휴가를 보내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경악했다. 런던의 친구들이 ‘칼퇴’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들은 거의 매일을 5시나 6시에 집에 갈 수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5시까지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는 거지? 뭐야, 사람들이 제때 퇴근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건 아니잖아? 정말 그랬다.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5시나 6시에 집에 가지만 영국의 경제는 괜찮아 보였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
휴가를 신청할 때도 눈치 게임은 계속된다. 휴가에 갈 수 있을까? 동료들이나 상사는 뭐라고 할까? 1주 이상 휴가를 내도 괜찮을까? 나 역시 그렇게 고심하다가 휴가를 신청한 적이 있었다. 노르웨이와 북극의 중간에 자리하는 스발바르 제도를 보기 위해서 여행 몇 달 전에 휴가계를 제출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발바르 제도로 떠나기 딱 하루 전에 또 급한 일이 생겼다. 그리고 난 이 상황에 휴가를 가는 이기적인 팀원이 되었고 말이다.
어쨌거나 이기적이게도, 난 휴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빙하와 황야로 둘러싸인 스발바르 제도,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추위였지만 직장 생활로 방전되어 버린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문명과 몇 시간이나 떨어진 외딴곳에서 대자연과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주는 경이로움을 만끽하던 바로 그 순간,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휴가 중인 건 알지만, 혹시 이런 것과 저런 것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 순간 정말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이토록 광활한 스발바르 제도 한복판에서, 업무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 법안이 통과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신처럼(?) 나도 무척 반가웠다.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좀 지났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퇴근 10분 전 밀려오는 ‘급한 일’들과, 야근과, 주말 근무는 여전하고 휴가 중인 누군가는 지금도 업무 부탁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으며 노트북 앞에서 "퇴사하고 싶다"를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법의 보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워라밸’을 위해서는 직장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들, 각종 쓸모없는 일들과 눈치 게임, 모든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부터 없애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 먼저 ‘워크 라이프 밸런스’라니, 그게 무슨 뜻인데? 아마도, 워크=라이프?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