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번 설에도 이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을 거다. 그리고 이 질문은 매 명절을 1년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일 테고. 뭐, 이제 설 연휴가 막 끝났으니 얼마 동안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겠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인 나 역시 이 질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에 살게 된 이후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일 지경이다. 지금은 프리랜서지만 과거 회사에서 일하면서 정말이지, 지겹도록 같은 질문을 받았다. 상사, 동료들, 심지어 클라이언트들까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친구의 부모님들이,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같은 얘기를 물었다. 언제 결혼 할 거야? 글쎄, 그걸 내가 어찌 아나.

JTBC 플러스 자료실
한국에 오기 전 나는 평생 고작 3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모, 사촌 그리고 대학에서 만난 베스트 프렌드. 모두 나와 매우 가까운 사람들의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2011년 한국에 도착한 지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결혼식에 초대받은 것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누군가의 결혼식에 초대된다는 건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한국 사회에 받아들여진 기분이랄까,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느낌이었다. 결혼식에 입고 갈 만큼 좋은 옷이 없었지만, 흔쾌히 한 벌 구입했다. 당시 학생이었기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결혼식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특별한 행사이니 말이다.
결혼식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이미 수백명의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하나의 룸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맞은 편 룸에서도 또 다른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난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긴 결혼식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인가? 축의금을 넣은 봉투를 신랑 측에 냈다. 신랑 측 가까운 지인들이 누가, 얼마나 축의금을 냈는지 열심히 체크 중이었다. 그날 하루 동안 결혼식을 즐기고 축하를 나눌 줄 알았지만, 그것 또한 착각이었다. 본격적인 식은 시작하자마자 30분 만에 끝나버렸다. 이건 뭐 퍼포먼스인가? 결혼식이 끝나기 무섭게 같은 방에서 다음 커플의 결혼식이 시작됐다. 이게 공장이라면, 정말 효율성 하나만큼은 정말 끝내줬다.

JTBC 플러스 자료실
몇 달 후 비슷한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결혼식들이 계속 이어졌다. 2011년 이후 매년 봄마다 거의 매주 결혼식에 가야 했다. 나의 소중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투자’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ATM 기계 혹은 일종의 데코레이션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랑과 신부는 내가 거기 있든 말든 별 상관하지 않는 듯 보였다. 참석보다는 축의금의 여부가 중요했다. 축의금을 내지 않는다는 건 그 친구와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느꼈던 불편한 (어쩌면 불쾌한) 감정, 그 이유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여기에 진정성이라는 게 있을까? 이건 마치 결코 구입하고 싶지 않은 대량생산된 상품 쪽에 가까웠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였다. 더 이상 결혼식에 가지 않는 것. 나는 한국의 결혼식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이제껏 “빨리 결혼해야 돼” 혹은 “올해 꼭 결혼할 거야” 같은 주문 같은 말을 심심찮게 들어왔다. 서로 안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결혼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게 보았고, 극단적으로 2~3개월 사귄 후 바로 결혼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물론 사귄 기간이 사랑의 무조건적인 척도라는 얘기는 아니다. 세상 어딘가엔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참석했던 대부분의 결혼식이 이런 의문을 남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는 걸까? 혹시 결혼을 위한 결혼은 아니었을까?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이젠 결혼할 때’라는 가족의 기대, 나아가 압박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 한국의 부모님들이 그동안 수많은 결혼식에서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결혼식이라는 건 진정한 축하를 나누는 게 중심이지, 투자 수익률 따지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당연한 소리라고? 나는 그동안 꽤 자주 한국의 결혼식이 체크리스트 중 하나의 항목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아마 당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십년 만에 카톡 청첩장을 보내온 동창과 여전히 서먹서먹한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서.
나는 더 이상 이런 사회적인 악순환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 언제 할 거야?”라는 질문 역시 문제적이다. 이 말은 언젠가는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지 않나.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결혼과 결혼식의 본질을 불신하게 만든다. 결혼은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지, 사회적 요구일 수 없다.
나는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를 지지하는 것보다 기꺼이 결혼식장 밖에서 정말 가까운 친구들과 진정한 축하를 즐기는 쪽을 택하겠다. 그게 내가 한국의 결혼식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