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엄마들_요주의여성 #67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도망친 엄마들_요주의여성 #67

<로스트 도터>가 전하는 ‘엄마’에 관한 진실.

김초혜 BY 김초혜 2022.07.22
영화 〈로스트 도터〉

영화 〈로스트 도터〉

매기 질렌할 감독과 〈로스트 도터〉 배우들 @GettyImages

매기 질렌할 감독과 〈로스트 도터〉 배우들 @GettyImages

그리스 외딴 섬으로 혼자 휴가를 온 중년의 대학교수 ‘레다’.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의 눈에 어린 딸을 가진 젊은 엄마 ‘니나’가 들어옵니다. 보채는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니나를 보면서 레다의 심연은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니나의 딸이 아끼는 인형을 숨기고 돌려주지 않는 이상한 행동도 합니다. 20년 전 레다의 과거가 차차 드러나며 관객은 알게 됩니다. 그는 두 딸을 버리고 ‘도망친’ 엄마라는 것을.
 
매기 질렌할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 〈로스트 도터〉가 국내 개봉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아이〉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작가가 영화 제작을 허락하며 내건 조건이 바로 “매기 질렌할이 직접 연출할 것”이었다고 하죠. 그렇게 메가폰을 잡게 된 매기 질렌할을 필두로 탁월한 여성 배우들이 합을 맞춘 영화는 묵직하다 못해 얼얼한 감동을 전합니다.
 
‘눈빛’만으로 흔들리고 무너지는 마음을 표현하는 올리비아 콜맨의 연기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니나’로 분한 다코타 존슨도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을 비치며 그를 새로 보게 합니다. 올리비아 콜맨이 직접 추천했다는, 젊은 시절의 레다를 연기한 제시 버클리는 그야말로 이 영화의 ‘보석 같은 발견’. 아이들을 응시하다 천천히 재킷을 입고 문을 열고 나서던 그의 얼굴이 잊히지 않아요.
〈로스트 도터〉의 다코타 존슨

〈로스트 도터〉의 다코타 존슨

 〈로스트 도터〉의 제시 버클리

〈로스트 도터〉의 제시 버클리

〈로스트 도터〉는 그동안 큰 목소리로 말해지지 않았던 ‘진실’을 말하는 영화입니다. 실은, 엄마들은, 도망치고 싶어한다는 걸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알 겁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하루 24시간 관심과 보살핌을 요구하는 작은 생명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된 일인지. 내 목표, 내 꿈과 미래가 멀어지고 내 존재가 흐릿해지는 것 같은 느낌. 숨막히고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시간들. 영화 속 니나가 “지나가긴 하나요?(Is this going to pass?)”라고 묻는 질문의 뜻을.
 
영화 속에서 레다(올리비아 콜맨)는 말합니다. “나는 이상한 엄마예요(I’m an unnatural mother).” 이상한 엄마들의 고백은 예전에도 존재했습니다. 100여년 전 나혜석은 〈모된 감상기〉에서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했지요. 〈로스트 도터〉를 보면서 줌파 라히리의 책 〈저지대〉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저지대〉에도 ‘도망친 엄마’가 나오지요.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짧은 외출을 시도하며 해방감을 느끼는 ‘가우리’의 이야기. 두 작품 모두 엄마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변명하지 않습니다.
〈로스트 도터〉의 올리비아 콜맨

〈로스트 도터〉의 올리비아 콜맨

여성들은 긴 시간 동안 가부장 사회의 모성 신화에 짓눌려 살아왔습니다. ‘엄마’란 이름으로 출산과 육아의 굴레에 갇혀 영혼을 잃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속박을 거부하고 자신을 찾아 나선 여성들은 ‘이기적’이고 ‘비정상’이라 비난 받았지요. 도망친 엄마들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레다는 “너무 좋았어요(It felt amazing)”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란 걸 압니다. 20년이 지나고도 검은 바다 앞에서 휘청거릴 만큼 지독한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남은 엄마도, 떠나간 엄마도, 완전한 해방은 없습니다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로스트 도터〉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낍니다(매기 질렌할 감독 만세!). 제시 버클리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 “여성으로서 성장한 느낌”이라 말했지요. 저 역시 〈로스트 도터〉를 통해 딸이자 엄마, 여성으로서 내 안의 ‘일부’를 이해 받은 기분입니다. 아마 당신도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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