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낳았다. 엄마로서 나도 태어났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첫째를 낳았다. 엄마로서 나도 태어났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세상이 말하지 않은 것들

이마루 BY 이마루 2022.07.11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얼마 전 아이에게 재미있어 보이는 동화책을 한 권 선물했다. 책 제목은 〈엄마도감〉. 그림책의 예상 독자를 아이라고 생각하는 여느 어른처럼 나 또한 당연히 딸 나은이가 이 동화책을 읽고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주문한 책이었다. 그러나 정작 책을 받고 펼치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은 것은 나였다. 막 태어난 갓난아기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한 여성의 그림 아래 쓰인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나와 함께’라는 문장. 그 문장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가 ‘태어났다’는 표현은 ‘되었다’는 말보다 훨씬 더 공감 가는 구석이 있었다.
 
출산 직후부터 생후 100일까지 그려진 ‘인간 엄마’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너무 사실적이라 웃음이 났다. 엄마의 먹이 활동, 기분 변화, 수면 활동, 아이를 향한 반응속도, 관절염의 발달, 엄마의 정체까지. 아기의 시선에서 바라본 엄마는 정말 이런 모습일까? 함께 책을 읽는 동안 딸과 함께 웃었지만 웃음 포인트는 조금씩 달랐다. ‘엄마가 내 밥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난 언제나 필요한 만큼 먹고 있으니까요. 엄마도 그랬으면 해요.’ 첫째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 문장이다. ‘엄마의 밤을 가끔 지켜본다’는 주인공 아기의 고백에 가슴이 찌릿해졌다. 엄마라는 여성으로서의 삶.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이 책을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나는 첫아이를 낳고 5년 만에 둘째를 출산했다. 서른쯤 첫째를 낳았을 때와 다르게 둘째를 낳은 이후 내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비록 입덧은 심하게 했을지언정 나름 건강하게 출산을 잘 마쳤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함을 자부하는 나였기에 둘째가 배 속에서 사산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을 때도 굳은 믿음으로 임신 기간을 버텨냈다. 산후 우울증이나 산후풍의 전조 또한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통으로 상반신부터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더니 이내 통증이 몸 여기저기로 번지기 시작했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불안과 공포에 떠는 나날이 시작됐다. 중추신경에 직접 작용하는 신경통약은 부작용이 심해 극심한 불면증으로 반년을 잠들지 못했고, 나중에는 공황장애마저 찾아왔다. 시리다가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쾅대고 식은땀이 흐르다가 오한이 드는 등 알 수 없는 증상으로 대학병원을 전전했지만 검사만 반복될 뿐 확실한 병명을 알 수 없자 결국 전국의 맘 카페를 뒤져가며 나와 같은 증상의 산모들을 찾기 시작했다. 자율신경 실조형 산후풍, 섬유근육통, 출산으로 인한 뇌병변. 예쁜 아기를 만난 기쁨도 잠시, 모두가 ‘출산’ 이후 하루아침에 이런 귀신 같은 병에 걸린 것을 믿을 수 없어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보다 충격인 건 생각보다 많은 산모가 이런 증세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었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혹시 예방할 수도 있었을까?
 
‘왜 하필 나일까?’라는 원망으로 1년을 버티고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사이, 드디어 둘째 아이가 17개월이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게 안부를 묻는다. 이제는 좀 괜찮냐고. 그러나 나는 여전히 치료 중이다. 오늘 하루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원망도, 기대도 없이 현존하려고 노력한다. 치료가 언제 종결될지 알 수 없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둘째 아이 엄마로서의 몸과 삶은 여전히 처음이므로 닥쳐오는 내 삶의 과제를 그때그때 풀어내고 있다. 극심한 통증과 불안장애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종일 울거나 불안에 떨며 응급실에 실려가는 엄마를 바라봐야 했던 첫째 아이는 지난해 자신만의 ‘엄마도감’에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태어나 처음 본 엄마의 나약한 모습에 자신의 우주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엄습할 때면 다니던 병원의 선생님이 해준 조언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부모가 힘들어하는 것을 마냥 숨기는 것보다 포기하지 않고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소중한 성장의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아이들 또한 미래의 고난을 잘 헤쳐 나가리라는 확신의 말이었다.
 
섬유근육통, 뇌병변, 산후풍, 불안장애, 우울증…. 나를 둘러싼 병명은 모두 뇌의 호르몬 변화가 선사한 것이다. 신경과와 신경정신과 의사들의 조언에 따르면 생리, 임신, 출산 그리고 완경의 과정에서 비롯한 호르몬 변화를 완전히 피해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성이라면 조금씩 자신도 알게 모르게 병을 앓고 또 극복하며 삶을 이어가는 셈이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여성 혹은 남성은 안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 여성의 몸에서 태어난 이상, 여성의 몸과 마음의 변화로 겪는 고통이 출산한 여성만의 난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동생 혹은 내 친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런 변화에 모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도움의 손길도 기꺼이 내밀어주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종내 ‘노화’라는 수순을 통해 이런 육체의 통증을 경험하게 될 것이므로.
 
〈엄마도감〉의 작가는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태어나는 신생 인류입니다. 아기 성장에 관한 보고서는 쌓여가지만 신생 엄마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요. 왜 누구도 갓 태어난 엄마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요. 모든 것이 처음인 세상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갓난 엄마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따뜻한 말인지! 나는 여전히 산후 통증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고 있다. 상담을 받고, 운동을 하고, 또 내 상태에 대해 아이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펼쳐진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 속에서 통증이 불쑥 솟구쳐 오르기도 하지만 아픔과 불안함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으며, 나는 내 하루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으려 한다. 아프고 불안한 내 몸을 거부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본 내 아이들이, 나를 ‘슈퍼우먼’이라고 엄마도감에 남겨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가족과 함께 서울을 벗어난 삶을 살며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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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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