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의 탄생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엘르>가 들여다본 21세기 엄마들의 이야기::엄마,마더,엄마되기,출산,결혼, 컨택트, arrival, 모성,모성애,육아,페미니즘, 여성, 삶, 엘르, elle.co.kr :: | 엄마,마더,엄마되기,모성,모성애

Birth of a Mother김아름  <엘르> 피처 디렉터“어머, 애가 있는 줄 몰랐어요.” “엄마처럼 안 보여요.” 현재 19개월 된 아기가 있는 워킹 맘.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나 오랜만에 본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듣노라면 기쁨과 안도가 스친다. 내가 ‘애 엄마’처럼 보이진 않는구나. 그러나 곧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죄책감이 피어난다. “엄마가 엄마처럼 보이지 않는 게 옳은 걸까?” “이런 말을 듣고 좋아하다니, 나는 나쁜 엄마인가?” 그러다가 다시 불쑥 치미는 분노 섞인 외침. “애 엄마는 어때야 하는 건데?”     엄마의 삶이란 끝없는 독백이 이어지는 모노드라마와 같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주인공이 됐다가 분노조절 장애자, 지독한 염세주의자나 비관론자가 되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이 되기까지는 세상을 향한 화가 극에 달했던 시기. 말 그대로 ‘찢어지는’ 고통이 아물지 않은 상태로 하루 24시간 풀 가동되는 육아 노동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인류가 이런 고통스러운 출산과 육아 과정을 통해 존속돼 왔다니, 놀라 까무러칠 정도였다.  직장에 복귀하면서 목말랐던 자유감을 맛본 것도 잠시, 또 다른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10년 넘게 잡지 일을 하면서 ‘멀티 태스커’로 훈련돼 왔지만, 워킹 맘이 시간을 쪼개 챙기고 신경 써야 할 일은 너무도 많았다. 몸보다 더 괴로운 건 마음이었다.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을 포기할 수 없는 마음과 아이 곁을 지키지 못하는 죄책감이 끊임없이 부딪혔다. ‘도대체 우선순위는 뭘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시공간을 비트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없는 법. 아무리 유연하게 대처하려 해도 풀리지 않는 난제 속에서 육체 이탈, 자아분열을 겪지 않으려면 방도는 오직 마인드 컨트롤뿐이었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엄마도 태어나는 것 같아요.” 모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로 주목 받은 tvN 드라마 <마더> 마지막 회에서 수진 역의 이보영이 읊조리는 대사에 ‘아’ 하고 공감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누구나 저절로 엄마가 되진 않는다. 나를 비롯해 주변의 여러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느낀 첫 감정은 ‘당혹감’이다. 아이가 마냥 예뻐 보이지 않아서, 철철 샘솟는 모성애를 느낄 수 없어서, 그럼에도 세상은 내게(나한테만) 덥석 ‘엄마’란 의무를 강요해서. 시대가 이렇게나 흘렀는데, 정부나 기관에서 제공하는 실질적인 육아 매뉴얼 하나 없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낡은 편견과 무례한 훈수만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수년 전부터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부풀어진 ‘모성 신화’에 반기를 제기해 왔다. 모성애는 여성의 선천적 특징이 아니라는 것. 과거와 달리 다양한 욕구를 추구해 온 현대 여성들이 엄마가 되어 겪는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널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때마침 불어온 페미니즘 열풍을 통한 자각도 한몫했다. 내가 느끼는 혼란과 괴로움은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 엄마들을 죄책감에 몰아넣는 한국의 가부장제와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읽을수록 스트레스만 쌓이는 각종 육아 서적도 치워버렸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어서 자기계발서는 손도 대지 않았던 내가 ‘우리 아이 ○○○하게 키우는 법’ 같은 제목의 책을 사는 것 자체가 나답지 않았다.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 어른이 된 나는 이미 본능적으로 ‘부모 노릇’의 기초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 안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을 뿐.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육아 사춘기의 한 챕터가 지났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회사나 주변에서 ‘쿨한 엄마’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선배는 아이를 난 뒤에도 쿨해 보여요.” 나는 정말 쿨한 엄마인가? 생각해 보면 결혼 전에도 비슷한 소리를 들어왔다. “아름이는 연애할 때 참 쿨해.” “어떻게 하면 선배처럼 쿨할 수 있어요?” 같은 얘기들. 나는 언제나 ‘내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이것이 남들이 쿨하다고 표현하는 내 평정심의 비결이라 생각한다. 상대를 소유하려 들거나 불안한 자아의 버팀목으로 삼는 이들의 연애는 결국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엄마가 자신감 있고 편안할 때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이 단지 이 시대의 이기적인 엄마들을 위한 변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새롭게 인식한 또 다른 한 가지는 여자들 간의 유대감이다. 배가 부풀어 오를수록 다정한 눈빛으로 ‘출산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는 여자들이 많아졌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기꺼이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도 모두 여자들이었다. 나보다 먼저 애를 낳아 키우는 선배나 친구들은 가장 유익한 정보원이자 든든한 멘토였다. 괜한 참견이나 소문 같은 게 싫어서 이웃 엄마들과의 교제를 멀리하려 했던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 이 역시 여자를 향한 부당한 편견이란 걸 알았다. 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동네 카페에서 만난 20~30대 엄마들은 모두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 어색한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 내게 눈빛을 전하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 긴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고충과 고민을 알 것 같은 자연스러운 교감이 느껴졌다. 이들을 ‘맘충’이라 부르며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에게 천벌이 내릴지니! 이제 나는 다른 엄마의 눈물, 다른 아이의 고통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아이를 낳은 후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였다.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애덤스)가 지구에 상륙한 외계 생물체를 만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소통하는 이 공상과학영화가 내게는 출산과 모성에 관한 비유로 가득해 보였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는 미지의 생명체를 대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갓 태어난 아기의 외모를 외계인에 빗대는 건 너무 할까). 루이스는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비선형적인 언어를 배움으로써 시간 또한 그들의 방식대로 인식하게 된다. 나 역시 아이가 생기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새롭게 감각하는 경험을 한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에서 수십 년 전 나의 성장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먼 훗날 가족의 그림자가 될 내 미래를 본 기분이 들기도 한다. 더 이상 별다른 설렘을 느낄 수 없었던 봄날의 꽃망울, 밤하늘의 별, 크리스마스 같은 것들이 아이의 존재로 인해 다시금 새로운 의미를 얻고 있다. 나는 비로소 엄마로 태어나는 중이다.Dressing Like A Mum소지현  <엘르> 디지털 에디터무릎 위로 깡총 올라오는 미니스커트, 또각또각 소리나는 스틸레토 하이힐, 몽글몽글한 모헤어 니트, 주얼 장식의 블라우스, 스크래치에 약해 조심조심 들어야 하는 수납력 제로의 미니 백. 이는 옷장과 신발장을 한가득 차지하고 있지만 엄마가 된 내게 무용지물이 된, 출산 전의 내 소중한 ‘아기들’이었다.임신을 하고 체중이 17kg까지 불어나면서 막달엔 입을 수 있는 게 오직 원피스 두 벌밖에 없었다. 임산부 동기(?)가 없었던 나는 SNS 피드에 의존했고, 그 세상에서 엿본 엄마들은 하나같이 젊고 예쁘고 심지어 패셔너블했다. ‘그래, 나도 곧 저렇게 될 수 있겠지?’ 꿈에 부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겨울에 아기를 낳고, 체중 관리를 하면 원래 입던 옷을 다시 입을 수 있을 줄 알았다.이는 나의 큰 착각이었다. 겨우내 즐겨 입던 니트는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버건디 앙고라가 믹스된 캐멀색 셀린 니트야, 안녕. 깔끄럽지만 실루엣이 예뻐 아꼈던 이자벨 마랑 니트도 안녕…. 이제 내겐 아기 피부에 닿거나 침이나 콧물 같은 아기의 흔적이 묻어도 괜찮은 순면 티셔츠만 허락됐다. 왜 아이 엄마들이 짠 듯이 고야드 쇼퍼백이나 이세이 미야케의 바오바오 백을 들고 다니는지도 알게 됐다. 벽돌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온갖 아기용품을 넣고 다니려면 필히 가볍고 수납력이 좋아야 하니까. 패션 브랜드의 시그너처 스웨트셔츠, 골든구스나 커먼 프로젝트의 스니커즈, 화려한 색상의 저지 롱 원피스…. 이는 육아 활동에 적합한 동시에 멋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 절충하고 타협한 결과였다. 2년을 아이 엄마로 지내다 회사에 복귀했을 때,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만큼 기뻤던 건 옷을 ‘예쁘게’ 차려입을 수 있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엔 멋스럽고 마음에 쏙 들지만 아이 엄마 옷으로는 탈락인 아이템을 발견했을 땐 속상했다. 지금은? 당당히 ‘회사에 출근할 때 입어야지’ 생각하며 카드를 긁는다. 무엇보다 가장 달라진 건 반지와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를 맘껏 즐길 수 있다는 점! 엄마가 되고 옷을 입을 때 달라진 점 또 하나. 아이와 커플 룩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딸이어서 좋은 이유를 백만 가지 정도 꼽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옷 입히는 재미다. 컬러와 소재를 맞춰서 입는 재미가 쏠쏠하다. 블루 스트라이프 포인트의 화이트 드레스를 입은 날엔 아이에게도 역시 블랙 스트라이프 드레스를 입힌다. 슈즈는 둘 다 에스파드리유! 참, 패션 롤모델도 변했다. 스티치 픽스(Stitch Fix)의 디렉터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슈퍼 워킹 맘’ 마리아 두에나스 제이콥스(Maria Duenas Jacobs)가 그 주인공. 전 미국 <엘르>의 액세서리 디렉터 출신답게 과감하고 다양한 액세서리를 즐기는 동시에 옷차림은 더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내가 볼드한 이어링에 빠진 것도 그녀의 영향이다. ‘엄마가 어떻게 그런 옷을 입어?’라는 편견 속에 스타일을 가두지만 않는다면 엄마로서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패션 세계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길! ‘수유 좀비’ 시절만 꿋꿋하게 버틴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