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한국 사회가 꾸는 꿈_라파엘의 한국 살이 #8

힌국 사회에서 ‘꿈’이란 무엇인가? 공무원이고 대기업 회사원이며 안정적인 직장, 단란한 가족, 윤택한 노후, 브랜드 아파트와 외제차? 꿈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 그리고 꿈의 부재에 죄책감을 느끼는 우리들에 대하여.

BY권민지2020.03.13
“나 공무원 준비할 거야!”  
어느 날 갑자기 한 친구가 선포했다.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했다. 지난 몇 년간 그는 공무원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공무원이라니, (특정 직업에 대한 내 개인적 편견이겠지만) 노는 것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그의 성격과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신림동 고시촌에 ‘입소’했고 우리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년 만에 신림동에 그 친구를 ‘면회’ 갔을 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 그 후로 그 친구를 다시 볼 수 없었지만, 다년간의 고시원 생활 이후 ‘꿈’을 접었다고 전해 들었다. 사실 그는 국내 유명대학교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정도로 똑똑한 친구였다. 그 친구의 능력과 노력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 적합한 능력, 피나는 노력 외에 뭐가 더 필요할까? 아마도…운?
 
생각해 보면 공무원이 된다는 건 정말 꿈 같은 얘기긴 하다. 인사혁신처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9급 공무원 합격률은 대략 3%, 대기업 취업률도 약 3% 정도다. 판타지에 가까운 수치라는 거다. 이런 냉혹한 현실에서 희망은 악몽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꿈’을 이루는데 드는 비용, 시간, 심리적/육체적 건강관리, 사회관계 단절 등과 같은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알바로 번 돈으로 로또를 사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느껴질 정도다. 한국에서 살면서 나의 친구와 비슷한 사례를 수없이 들었다. 그들 중에는 꿈을 이룬 친구들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 ‘노오오력’ 중이다.


JTBC Plus 자료실

JTBC Plus 자료실

“꿈이 뭐예요?”
한국에 온 이후 “결혼 언제 할 거야?”와 거의 비슷한 빈도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처음 들었을 때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한국어가 서툴러서도 아니고 대답하기가 부끄러워서도 아니었다.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이었고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자연히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야망이 없는 사람인가? (야망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나도 욕심이 있는 사람인데…?) 내가 이상한가? (루저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꿈이 없다는 건 사회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그건 삶에 성실하지 않거나 나태하다는 의미이고, 어딘가 부족하며, 시간과 공간에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집착하는 꿈이란 결국 안정적인 삶과 성공을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예술가’ ‘소설가’ 등 다소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은 허황된 꿈 혹은 철없는 소리쯤으로 치부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꿈은 결국 이름 있는 학교 졸업장, 높은 연봉, 자랑할 만한 배우자와의 아름다운 결혼식, 학군 좋은 동네의 브랜드 아파트와 외제차, 명품 등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을지 몰라도 우리 세대에서는 한강은 고사하고 집 한 채를 장만하는 것도 기적이다.
 
JTBC Plus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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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꿈을 선포하기 이전에 정말 생각해 봐야 할 건 그 꿈이 본인의 꿈인지, 부모의 꿈인지(드라마 〈스카이캐슬〉 기억하지?) 혹은 사회가 심어준 꿈인지 되짚어 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그 거창한 꿈이 정말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종로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일어난 참극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수백 명의 회사원이 점심시간에 건물 밖을 나서던 찰나, 청계천 근처 도로에서 정장 차림의 젊은 여성이 지게차에 깔린 것을 목격했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당시 상황이 떠올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고가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졌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피해 당사자가 나였다면 나의 ‘아름다운 꿈’은 그날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주변에서 내 또래의 지인 3명이 세상을 떠났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스틸

드라마 〈스카이캐슬〉 스틸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아직까지 큰 꿈이 없다. 먼 미래는 물론 가까운 미래를 위한 뚜렷한 계획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살고 있다.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별 볼 일 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에 감사하며 만족한다. 그러니까, 거창한 꿈이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안정적인 삶을 소유하는 것(적어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고 가치로 인정되면서도 정작 이룰 수는 없는 시대와 사회에서 그냥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은 우리 세대의 현실적인 생존 대안이 아닐까. 때로는 “알게 뭐냐” 혹은 “될 대로 되라”라고 읊조리면서. 이 비관적인 말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상태를 수긍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억지로 노력하고 싶지도 않으며 쓸데없는 일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 그저 바로 지금에 충실하는 것. 나는 그쪽이 더 행복할 것 같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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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라파엘 라시드
  • 번역 허원민
  • 사진 JTBC Plus 자료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