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공무원이 된다는 건 정말 꿈 같은 얘기긴 하다. 인사혁신처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9급 공무원 합격률은 대략 3%, 대기업 취업률도 약 3% 정도다. 판타지에 가까운 수치라는 거다. 이런 냉혹한 현실에서 희망은 악몽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꿈’을 이루는데 드는 비용, 시간, 심리적/육체적 건강관리, 사회관계 단절 등과 같은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알바로 번 돈으로 로또를 사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느껴질 정도다. 한국에서 살면서 나의 친구와 비슷한 사례를 수없이 들었다. 그들 중에는 꿈을 이룬 친구들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 ‘노오오력’ 중이다.

JTBC Plus 자료실
한국에서 꿈이 없다는 건 사회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그건 삶에 성실하지 않거나 나태하다는 의미이고, 어딘가 부족하며, 시간과 공간에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집착하는 꿈이란 결국 안정적인 삶과 성공을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예술가’ ‘소설가’ 등 다소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은 허황된 꿈 혹은 철없는 소리쯤으로 치부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꿈은 결국 이름 있는 학교 졸업장, 높은 연봉, 자랑할 만한 배우자와의 아름다운 결혼식, 학군 좋은 동네의 브랜드 아파트와 외제차, 명품 등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을지 몰라도 우리 세대에서는 한강은 고사하고 집 한 채를 장만하는 것도 기적이다.

JTBC Plus 자료실
종로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일어난 참극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수백 명의 회사원이 점심시간에 건물 밖을 나서던 찰나, 청계천 근처 도로에서 정장 차림의 젊은 여성이 지게차에 깔린 것을 목격했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당시 상황이 떠올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고가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졌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피해 당사자가 나였다면 나의 ‘아름다운 꿈’은 그날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주변에서 내 또래의 지인 3명이 세상을 떠났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스틸
안정적인 삶을 소유하는 것(적어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고 가치로 인정되면서도 정작 이룰 수는 없는 시대와 사회에서 그냥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은 우리 세대의 현실적인 생존 대안이 아닐까. 때로는 “알게 뭐냐” 혹은 “될 대로 되라”라고 읊조리면서. 이 비관적인 말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상태를 수긍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억지로 노력하고 싶지도 않으며 쓸데없는 일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 그저 바로 지금에 충실하는 것. 나는 그쪽이 더 행복할 것 같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