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라파엘 라시드
언젠가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제품 론칭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파티 당일에 초대를 받아 왜 이렇게 급하게 연락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상사가 파티를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려면 외국인을 초대해야 할 것 같다고 했거든”. 친구가 해고당하게 둘 순 없으니 참석하긴 했지만 그렇게 어색한 자리는 난생처음이었다.
외국인 우상화는 TV 프로그램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특히 더 하다. 나 역시 이런 프로그램에 섭외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너는 외국인이니까. ‘외국인 어드밴티지’라는 게 있잖아?” 물론 ‘외국인’으로 텔레비전에 출연하면 수십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순간 혹하긴 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건 아니라고 느꼈다. 당시 학생이었던 내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내가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지? 내가 웃기고 똑똑한 사람인가?

JTBC Plus 자료실
얼마 전 새로운 TV 프로그램이 나왔다. ‘한국을 사랑하는 각 나라 대표 미녀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한국말 배우기 프로젝트’라는 콘셉트다. 프로그램명을 검색하면 ‘미녀 4총사, 낙지-호떡-한복, 한국 홀릭’ 같은 홍보 기사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뭐, 아무 생각 없이 낄낄거리며 보기엔 좋고,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출연자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이게 왠 시대착오적인 기획인가? 〈미녀들의 수다〉가 방영된 지 1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미녀 외국인’을 앞세우는 프로그램이 과연 적절하냐는 얘기다. 출연자가 반드시 ‘미녀’ 여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혹은 그 단어를 사용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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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TV에 출연하는 외국인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우린 모두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무작정 외국인을 찾는 시스템 그 자체다.
왜 한국인은 외국인을 이용하려 할까? (혹은 왜 외국인은 한국인을 이용할까?!) 사실 앞서 말한 모든 예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인정 욕구를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만 한국인의 경우 외부의 인정에 특히 목말라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아리랑, 독도, 김치 혹은 한복이나 탈 같은 한국 전통에 호감을 보이는 것에 환호한다. (대부분 준수한 외모의 외국인!)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전통문화에 별 관심이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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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나는 위선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엔 나도 외국인이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은 혜택을 부인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내게 이 글을 청탁한 에디터 역시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색다른 시선’이 필요했음을 인정했다. 젠장)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무조건 한국에 대해 좋게 말하거나, 내 감정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또한 청탁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며칠 전, 법무부는 한국 거주 외국인 수가 250만명을 넘어서며 ‘다문화’ 시대로 들어섰다고 발표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외국인은 더는 희귀한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외국인이라는 게 어떤 자격이 될 수는 없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