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TV+에서 만날 수 있는 〈파친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세계적인 플랫폼에서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연기하는, 한국 역사에 대한 시리즈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지요.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제작자부터 연출가까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창작자들이 주축이 된 프로젝트. 예술가가 된 이민 3세대의 손에서 부모와 조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했다는 게, 그 자체로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장대한 스케일,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형식, 수려한 영상미와 배우들의 앙상블 등 〈파친코〉의 만듦새에 대해 말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무엇보다 얘기하고 싶은 건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영웅 ‘선자’입니다.
MBC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민진 작가는 본래 소설 초고에서 ‘솔로몬’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나 일본에서 자이니치들의 삶을 접하며 이를 바꾸게 됐다고 말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건너온 한국 여성들은 집에서 돼지를 길렀고 몰래 술을 담그다 잡혀가기도 했고 자녀들에게 길거리에 나가 폐품을 주워오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맞아, 선자야. 주인공은 선자가 돼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친코〉의 히어로, 선자의 순간들

〈파친코〉의 히어로, 선자의 순간들
돌아보면 우리의 엄마, 할머니들은 언제나 쉼 없이 일했지요. 지금도 여자들은 일터와 가정에서 많은 노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면서 청소 노동, 돌봄 노동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 이 기울어진 세계가 유지되도록 만들고 있는 진짜 영웅들.
원작에는 없지만 일본계 뉴질랜드 배우 안나 사웨이가 연기하는 ‘나오미’ 역할도 인상적입니다. 넥타이를 맨 남자들 사이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그는 왜 더 나은 회사를 선택하지 않았냐는 솔로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죠. “알다시피 여자는 덜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도움이 되거든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 선자와 나오미,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파친코〉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입니다. 보통 ‘건너뛰고’ 마는 부분이지만 〈파친코〉의 오프닝은 매회 볼 때마다 시선을 놓을 수 없어요. 알록달록한 파친코 기계 사이에서 펄쩍펄쩍 뛰며 신나게 춤추는 배우들. 각본가이자 총괄제작자인 수 휴는 “이 작품에는 무거운 순간이 많기 때문에 오프닝 타이틀은 ‘축제’가 되길 바랐다”고 했지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이민진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의 첫 문장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영상.
삶은 축복이며 우리는 어떤 비극도 망가뜨릴 수 없는 귀하고 강한 존재들입니다. 〈파친코〉를 보면서 더 잘 살아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