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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 대학까지 마쳤다. 좋든 싫든 영국은 나의 고향이다. 런던은 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이며, 나는 프랑스인 어머니와 방글라데시인 아버지를 둔 다문화가정에 속해있다. 많은 사람이 로망의 도시로 꼽는 런던은 볼거리도 많고 놀 거리도 많다. 그런데 나는 여기 한국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나의 자유 의지로 말이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 친구들은 나의 이런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국 친구들 역시 의아해한다. “굳이?”
한국에서 처음 만나면 사람들이 인사처럼 묻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살만해요?”, “한국 좋아요?”, “영국에 언제 돌아가요?”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듣다 보면 마치 한국은 계속해서 살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든 도시고, 이방인인 나는 언젠가 한국 땅을 떠날 거라는 확신이 느껴진다. 여기에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확정한 게 없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는 영국 정부의 무능력함을 신물 날 정도로 경험했다. 우체국, 은행 서비스, 병원, 고객서비스, 통신사, 구청(타운홀), 교통, 공공안전 등 생활 전반에서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다. 덕분에 매일매일 불편함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처 역시 이들의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시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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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로나 사태처럼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급 상황에선 확실히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느림, 태평, 여유, 낭비, 무능, 비효율은 너무도 쉽게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는 순서와 절차를 넘어서는 유연한 방식의 사고, 발 빠른 결정과 실행력,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만 대처할 수 있다. 어쩌면 영국인들은 대응 과정에서 그들이 굳게 믿어왔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느끼는 거 같다. 그래서 유럽을 유럽답게 만드는 가치와 발 빠른 재난 대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확실한 건 재난 상황이 통제될 때까지는 멈춰야 한다는 거다. 본인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아끼는 주변 사람들의 생존을 최우선에 두어야만 한다. 오롯하게 지켜온 가치를 잠시 내려놓을 줄 아는 게 이를 지속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코로나 사태는 영국에 대한 나의 관점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왜 영국에서 살기 어려웠는지와 동시에 한국을 왜 살만한 나라라고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한국이 완벽한 나라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나라는 애초에 없으니까.
*한국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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