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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섹스의 정의?_라파엘의 한국 살이 #20

도대체 정상적인 섹스란 무엇일까? ‘남녀’가, ‘사랑’을 전제 하에, ‘정상위’로 하는 섹스가 정말 가장 '바람직'한 걸까? 아니, 다들 정말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BY권민지2020.06.12
섹스가 뭐라고 생각하나?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섹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뭔가?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와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초를 잔뜩 켜놓고 커다란 침대에서 보내는 로맨틱한 시간이 연상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후엔, 결국 사랑에 빠져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해피엔딩 같은 것 말이다.
 
벌써부터 하품이 나온다. 그래, 세상 모든 섹스가 이와 같다면 그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거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당신은 이런 종류의 교과서적인 섹스만 하나? 정말?
 
Dainis Graver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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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존재한다. 영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정말이지 여러 종류의 성적 취향과 섹슈얼리티를 목격하고 경험했다. 중고등학교가 친구들끼리 각자의 성적 판타지를 털어놓는 곳이었다면 대학교는 본격적으로 그 판타지를 실현시키는 공간이었다.
 
영국의 대학교 기숙사는 건물 자체가 남녀 혼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 이성애자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 다양한 성적 지향을 지닌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지낸다. 다양한 성적 취향과 지향은 감춰야만 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저녁 자리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와 더불어 다양한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편견 없이 대화를 나누곤 했다. 뭐, 그때의 농도 깊은 이야기들은 물론 말로만 끝나진 않았고 말이다.
 
Dainis Graver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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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국에 왔을 때 놀랐던 것도 그래서다. 이제껏 경험했던 다채로운 섹스가 한 가지 종류로 축약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마치 모범적인 섹스라는 게 따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섹스에 있어서 다양성은 저질스럽거나 비도덕적이거나 이상하거나 부정적인 행동으로 비난받았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섹스는 사랑을 전제로 한 커플, 남녀의 섹스가 대부분이었다. 하룻밤 해프닝이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결국은 사랑으로 귀결됐다. 어쩌다 하룻밤을 보낸 남녀는 운명인지 우연인지 모를 사건사고로 커플이 되는 아름다운 결말을 맞곤 했다. (반면 현실에서 원나잇 스탠드가 진짜 관계로 발전할 확률은… 지난날을 돌아보자)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깨닫게 됐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성생활, 성적 취향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척’하는 것뿐이라는 걸. 아닌 척, 모르는 척, 무심한 척.
 
Kristina Flou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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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 살수록 한국 친구들과도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빈도가 점점 늘어났다. 수위는 꽤 높았다. 영국 대학기숙사의 저녁 테이블과 같이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대화까지는 아니었지만, 끈적하고 사적이었으며, 결코 ‘바람직한 섹스’의 표본 같은 건 아니었다. 짐작하건대, 내가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편안하게 내밀한 사생활을 털어놓지 않았을까 싶다.
 
한 친구는 술자리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끌린다고 말했다. 이성애자인 그는 여성의 굴곡진 몸과 남성의 성기가 공존하는 것에 성적매력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내겐 그의 특별한 성적 취향 자체보다 그 사실을 털어놓을 때 그의 어조나 표정 같은 것이 더욱 흥미로웠다. 그는 (마침내!) 타인과 남다른 취향에 대해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Dainis Graver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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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성실한 이성애자처럼 보였던 다른 친구가 조심스럽게 동성애자라고 고백한 적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완벽하게 평범한 이성애자였다. 항상 커플링을 끼고 있었고 여자친구처럼 보이는 여성과 찍은 다정한 사진이 휴대폰에 늘 저장돼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말했고, 근육질에 훈남을 선호한다고 밝혔으며, 섹스에 대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애널섹스 말이다.
 
애널섹스'도' 좋아하는 헤테로 섹슈얼 여성, BDSM(구속 bondage, 훈육 discipline, 지배 dominance, 굴복 submission의 약자)를 즐기는, 그중에서도 통제권이 없는 상태를 선호하는 페미니스트(가학적 섹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은 아니다.), 섹스토이를 사용한다는 커플, 섹스 파트너가 있는 직장인 남성, 폴리아모리 관계에 동의한 커플, 쓰리썸 경험이 있는 친구…. 내가 한국에서 들었던 섹스라이프는 영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 당신 주변의 누군가, 어쩌면 당신의 성생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Bianca Ber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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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묻고 싶은 건, 도대체 ‘정상적인’ 섹스란 무엇이냐는 거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촛농 떨어트리면서 쾌감을 느끼는 저런 건 아니라고? 원래 남의 취향 앞에서는 존중만이 정답이다. 그런 의미에서 섹스에서 터부시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합의되지 않은 무엇. 서로 동의한 상태라면 어떤 종류든, 섹스는 섹스다. 그뿐이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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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라파엘 라시드
  • 사진 언스플래시
  • 번역 허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