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그패커(Begpacker)가 돌아왔다! 배낭여행객을 뜻하는 백패커(Backpacker)와 비슷해 보이지만 구걸인 ‘Beg’와 여행자인 ‘Backpacker’의 합친 신조어(?)로 구걸 배낭여행객, 세계 여행 중 돈을 구걸하는 외국인들을 의미한다. 여권이나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등 딱한 처지를 내세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식이다.
베그패커는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서서히 자리 잡고 있는 사회 문제다. 그동안 나는 베그패커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도 꾸준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지역 경찰서에 베그패커를 신고한 적도 많다. 국내와 외신 언론에서 해당 주제가 다뤄지면서 미디어에서 나는 ‘베그패커 신고자’로 알려졌다. 몇몇 경찰관들에게 내 얼굴이 친숙할 정도다.
사실상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니만큼 베그패커를 발견하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전과 마찬가지로 행인들은 관대했다. 여전히 그들에게 ‘기부’를 서슴지 않았다. 그 베그패커의 간판에는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갇혀 있고, 러시아로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가 없으며,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 상황을 설명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가 휴대폰을 켜고 취재를 시작하자 한국에 도착한 지 2달 정도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곤 “촬영 하지 마! 죽여 버릴 거야. 농담하는 거 아냐!”라는 위협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에 온 지 2달 됐다고? 거짓말. 1년 전, 나는 같은 베그패커를 같은 장소에서 목격했었다. 그때도 경찰에 신고했었는데, 경찰이 오기 전 허겁지겁 도망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베그페커가 합법적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불법체류자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라고 해도 문제다. 합법적 체류자라고 할지라도 ‘구걸 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합법적 체류자라면 노동을 통해 세금을 내면서 사는 게 맞다. 만약 여행 비자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행위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특정 노동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바 없이 순전히 구걸로 돈을 벌겠다니, 이 얼마나 나태하고 무례한 생각인가. 매해 수백만 원의 세금을 내면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측은지심보다는 분노가 치민다.
법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구걸을 하게 된 배경 또한 굉장히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조직적’이라는 건 각자의 영역과 역할이 구분돼 있다는 뜻이다.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적힌 간판을 공유하면서 한 곳에 모였다가 구걸에 필요한 소품(?)을 챙겨 흩어지는 식이다.
그리고… 그들 중 99%가 백인이다. 왜? 백인만 한국에 여행을 오는 것도 아니고, 백인만 지갑이나 여권을 분실하는 것도 아닐 텐데.
베그패커가 대부분 백인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경제의 원리다. 백인 베그패커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끈다. 작년 7월 한국의 한 방송국에서는 백인과 흑인 연기자에게 베그패커처럼 구걸을 연출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결과는 예상 그대로다. 1시간 동안 백인은 13,000원을 모은 반면 흑인은 총 3,000원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백인 베그패커가 돈을 쉽게 번다’ 보다 더 많은 불편한 지점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여권
(링크)에 따라서, 성별에 따라서, 생김새에 따라서, 교육수준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직업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외국인’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피부색은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며 백인은 그간 피부색에 따른 특권(이른바 ‘백인 특권(White privilege)’)을 누려왔다.
미디어에서 외국인의 코멘트가 필요할 때 ‘백인 외국인’(즉, 아시아 사람이 아닌!)을 선호하는 걸 보라. 그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아는지, 영어가 얼마나 능숙한지 보다 피부 색깔이 우선시 되는 게 현실이다. 수많은 한국 영어학원에서도 ‘외국인’ 얼굴을 가진 선생을 원하는 건 마찬가지다. 많은 광고 모델이 유색인종이 아닌 백인 중심이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광고의 경우 백인의 얼굴은 거의 자동으로 미(美)와 성공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걸’을 함에서도 백인특권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그들도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서양 사대주의가 심한 아시아 국가에서 특히 더욱 많은 백인 베그패커들을 찾아볼 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언젠가 취재 중 베그패커에게 5천원 한장을 쥐여준 한 행인에게 돈을 주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 행인의 대답은 “불쌍해서”였다. 그리고 그곳은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종로의 쪽방촌 앞이었다. 그 베그패커는 약 5분여 만에 1만5천원을 벌었다. 도대체 왜 우리는 그들을 유독 ‘불쌍하게’ 생각하는 걸까? 구걸이 백인의 ‘성공’ 이미지와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공고하게 쌓인 제 1세계의 이미지가 아마 그들에겐 지갑 분실이나 도난과 같은 안타까운 불상사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더해주고(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측은지심을 극대화시키는 게 아닐까 싶다. 백인의 불행은 그 피부색으로 인해 더욱 분명하게 다가오고 사람들은 관대하게 기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백인 베그패커들은 행인들의 관심과 동정심을 이용해서 특별한 노력 없이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강남에서, 이태원에서, 그리고 종로의 쪽방촌 앞에서. 같은 ‘외국인’으로서, 아니, 같은 인간으로서, 이 사실은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든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