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요. 제가 초면이라 실례일까 봐 말을 못 했는데 계속 거슬리는 거예요. 여성스럽다는 말을 왜 이렇게 많이 해. 요즘에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 이런 말 하면 안 돼요. 편견을 만들고…”
'Long hair... Don't Care'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포스팅된 마돈나의 사진. 매번 성별의 경계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빌리 포터. 인스타그램 @madonna @theebillyporter
아나운서 임현주가 지난 29일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한 이야기다. MC 김국진이 박해미와 이야기를 나누다 “박해미 씨는 정말 여성스러운 분이세요”라고 한 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럼 뭐라고 표현해야 돼?”라는 박해미의 질문에 임현주는 “그냥 너답다, 매력 있네, 박해미답네!”라고 답했다. 그리고 방송 후 이 발언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라디오 스타〉 게시판엔 임현주에 대한 비난 글이 게시됐고, 유튜브 〈임아나 채널〉 몇몇 영상의 댓글 창을 닫아야 할 정도로 악플 테러가 이어졌다. 현재 그녀는 악플러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여기서 내가 묻고 싶은 건 ‘정말 그 정도인가?’다.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는 말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 만든 편견이니 각자의 매력을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발언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이슈인가? 그 단어의 발화자 앞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 (많은 악플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종’적 행동이며 오지랖인가? 오히려 타당한 문제 제기 아닌가?
사실 임현주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한국 방송 역사상 안경을 쓰고 뉴스 진행을 한 최초의 아나운서로 여러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레…알?). 또한 노브라 챌린지 TV 프로그램을 참가한 경험을 트위터에 공유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그리고 그녀의 ‘튀는’ 행동엔 주로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다. 슬프게도.
남성스럽다, 여성스럽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한번은 대기업에 다는 한국인 친구(참고로 이성애자 남성) 중 한 명이 내게 “오늘 여성용 언더웨어를 입고 왔다”고 슬그머니 털어놓은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들었을 땐 좀 놀랐고 흠, ‘주요 부위’로 인해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행동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멀리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건 없는 거니까. 노브라와 마찬가지로 그의 바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도, 당신도, 그 누구도 상관할 바가 아니니까.
젠더리스 패션니스타 배우 이즈라 밀러. 인스타그램 @imezramiller
하루는 또 다른 친구가 어린 아들의 취향에 대해 지나가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의 아들이 분홍색을 유난히 좋아해서 옷이나 장난감이 온통 핑크라는 거였다. 친구는 그런 아들의 선택 자체를 말리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혹시 누군가 남자애가 핑크를 좋아한다고 꼬투리를 잡고 주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나의 한국 친구 중 한 명은 아무리 더워도 긴 바지만을 고집한다. 찜통더위를 자랑하던 작년 어느 여름날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반바지를 입지 않느냐고 물으니 정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세상에, “다리털이 적어서. 좀 창피해”라는 이유였다. 다리에 털이 수북하지 않으면 남성스럽지 않다는 거였다. 반대로 누군가는 털이 너무 많아서 반바지를 못 입는다고 했다. 적당한 다리털의 양이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걸까? 어린 소년이 핑크를 좋아하는 게 여성스럽다는 뜻인가? 도대체 그건 누가 정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그게 문제가 되는 현실이 이상하다.
한국의 성 역할 고정관념은 항상 나를 놀라게 한다. 여자는 ‘여성스러워’야 하고 남자는 ‘남성스러워’야 한다. 심지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각자의 ‘스러움’은 칭찬으로 소비된다. 성별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사람의 모든 역할에 관해 규정하고 강조하기 바쁘다. 어린이들은 어린이다워야 하고 어른들은 어른다워야 하며, 어머니는 어머니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한다.
바비 인형 제작사 마텔이 지난달 출시한 젠더 뉴트럴 바비. 성별에 관계 없이 취향에 따라 꾸밀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런 역할과 고정관념은 모든 나라와 모든 사회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역할론은 너무 극단적이며 무의미하지 않나 싶다. 나는 회사에서 여자를 위해 문을 잡지 않고 가벼운 짐을 먼저 나서서 나르지 않았다고 눈총을 받곤 했다. 쉽고 어려움을 떠나 육체적인 노동은 무조건 남자 직원의 의무였다. 왜지? “우리는 여자고, 너는 남자잖아!” 내가 그 의미를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바라보면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리액션이 돌아왔다. “영국인인데 신사가 아니네?” 상대방을 성별로 규정해서 미미한 신체 노동도 못 할 것이라 판단하는 게 신사라면, 그래, 나는 신사가 아니다. 아니, 도대체 신사의 정의가 뭐지? 무조건 여자를 지켜주는 남자? 우리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보호받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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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사회학자인 어빙고프만(Erving Goffman)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연기자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연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아를 연출하는 공연과 같다는 거다. 우리는 자아 연출의 삶에 순응해서 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다수가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자기 본연의 모습이 아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괴로운 일이다. 누군가 이러한 연기에 불편을 느끼고 타당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발전의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는 말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 만든 편견’이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질타를 던질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는 게 성숙한 자세라는 얘기다. 또한 이건 성별 갈등일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남성들 역시 ‘남성스러움’이라는 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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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역할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아웃사이더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아웃사이더나 다름없다. 그동안 학습 받아온 이상적인 인간형이 도대체 현실 어디에 존재하기나 하나? 결국 ‘너답다’는 말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인간임을 인정하자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 역시 특정 역할에 맞는 특정 연기를 하는 삶이 무척 피곤하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냥 모두 본연의 모습대로 살자는 소리인데, 흠, 이게 그렇게 이상적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건 서로 비난할 일이 아니라 같이 슬퍼할 문제가 아닐까.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