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 아마 다들 아는 단어일 것이다. 한국인을 뜻하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핀인을 뜻하는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로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2세. 글로벌 사회에서 국제 커플이나 혼혈아가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코피노는 그 이상의, 훨씬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남성이 비겁하게 아이와 아이 엄마를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쳤을 때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최근 다녀온 라오스에서 촬영한 사진. 한국어로 된 성 관련 광고를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었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출장이 아닌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황제 관광’, 남성을 위한 ‘골프 투어’ 등을 홍보하는 웹사이트가 얼마나 많은지 보라. 심지어는 이런 남성들을 일컫는 단어가 따로 존재할 정도다. 바로 ‘섹스팻(sexpat)’. 섹스팻은 ‘섹스(sex)’와 국외 거주자를 뜻하는 ‘엑스팻(expat)’의 합성어로 섹스를 목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남성을 의미한다. 필리핀의 한국인 섹스팻 문제가 어찌나 심각한지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필리핀 내 성매매에 따른 법적 책임 및 귀국 후에도 처벌이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웹사이트 링크).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웹사이트
여기서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사건이 한국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한국에서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한국으로 와서 성매매하게 된 외국 여성들의 수가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나? 코피노 기사를 쓰던 당시 취재를 위해 만난 한 여성(그녀는 제주도의 한 고급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다)은 “제가 임신 소식을 알렸더니 본인은 항상 내 편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내와 이혼하겠다고 했어요. 출산은 필리핀에서 하라고 해놓고, 제가 돌아온 후에는 연락이 끊겼어요.”라고 털어놨다.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 온 '코피노' 아이. 한국 땅에서 새롭게 찾은 가족은 아빠가 아니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중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듯 개인적으로 100% 상호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의 성매매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만약 양쪽 모두 성인이고 서로 100% 합의된 상황, 성 노동자의 권리가 100% 존중된다면, 내가 어찌 타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겠나?) 하지만 코피노는 성매매일 뿐만 아니라 극악무도한 사기다. 사랑을 속삭이다가 상대 여성이 임신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모른 척하는 남성들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JTBC 〈비정상회담〉 중
현지 여성에 대한 성 착취가 비단 한국 남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코피노’ 문제는 빈곤국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대개 이와 같은 성 착취 문제는 성적 제국주의(sexual imperialism)라고 불리며 ‘서구’ 혹은 ‘선진국’의 문제라고 여겨져 왔으니까 말이다. 국가가 발전하면 무책임하게 해외 여성을 착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 마냥 이젠 한국이 그 전철을 밟고 있다. 하지만 외국 정부에 전시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는 대한민국이 자국민이 타지에서 자행하는 무책임한 성범죄에 눈감아 준다는 건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JTBC 〈비정상회담〉 중

코피노 아이들의 잃어버린 아빠를 찾는 웹사이트 kopinofather.wordpres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