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한국의 무책임한 섹스팻(sexpat)을 아시나요?_라파엘의 한국 살이 #15

‘섹스(sex)’와 국외 거주자를 뜻하는 ‘엑스팻(expat)’의 합성어로 섹스를 목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남성을 뜻하는 섹스팻(sexpat). 그리고 그들이 버리고 도망친 아이들 ‘코피노’. 무엇이 섹스팻과 코피노라는 비극을 만들었나?

BY권민지2020.05.01
“코피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한국인 친구에게 이렇게 물으면 창피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코피노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을 넘어 경악스럽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코피노’. 아마 다들 아는 단어일 것이다. 한국인을 뜻하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핀인을 뜻하는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로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2세. 글로벌 사회에서 국제 커플이나 혼혈아가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코피노는 그 이상의, 훨씬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남성이 비겁하게 아이와 아이 엄마를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쳤을 때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최근 다녀온 라오스에서 촬영한 사진. 한국어로 된 성 관련 광고를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었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최근 다녀온 라오스에서 촬영한 사진. 한국어로 된 성 관련 광고를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었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몇 년 전, 코피노에 대한 기사(기사 링크)를 쓰면서 참담한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당시 여러 ‘코피노’와 그 엄마와의 인터뷰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하나같이 충격적이고, 하나같이 슬프고, 하나같이 비슷했다. 거기엔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1. 한국 남성이 출장 등의 이유로 필리핀에서 몇 달, 길게는 몇 년간 지내게 된다. 2. 그는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여자친구’를 만든다. 3. 콘돔 없이 성관계를 갖고 “사랑해”라고 말한다. 4. 하지만 여성이 임신하는 순간, 겁에 질린 남자는 새로운 가족은 나 몰라라 하고 한국으로 도망가 버린다. 5. 양육비 또한 지급하지 않는다.

 
출장이 아닌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황제 관광’, 남성을 위한 ‘골프 투어’ 등을 홍보하는 웹사이트가 얼마나 많은지 보라. 심지어는 이런 남성들을 일컫는 단어가 따로 존재할 정도다. 바로 ‘섹스팻(sexpat)’. 섹스팻은 ‘섹스(sex)’와 국외 거주자를 뜻하는 ‘엑스팻(expat)’의 합성어로 섹스를 목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남성을 의미한다. 필리핀의 한국인 섹스팻 문제가 어찌나 심각한지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필리핀 내 성매매에 따른 법적 책임 및 귀국 후에도 처벌이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웹사이트 링크).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웹사이트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웹사이트

비단 필리핀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7년 파타야에서 한 태국 여성이 아파트 17층에서 신생아를 떨어뜨려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기사 링크). 그 당시 사건 자체는 수없이 보도 되었지만 사건의 전말을 다룬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그 여성은 한국에 가정을 둔 한국인 유부남과 만나고 있었고, 여성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한국 남성이 곧바로 한국으로 도망쳤다는 앞뒤 사정 말이다.

 
여기서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사건이 한국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한국에서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한국으로 와서 성매매하게 된 외국 여성들의 수가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나? 코피노 기사를 쓰던 당시 취재를 위해 만난 한 여성(그녀는 제주도의 한 고급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다)은 “제가 임신 소식을 알렸더니 본인은 항상 내 편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내와 이혼하겠다고 했어요. 출산은 필리핀에서 하라고 해놓고, 제가 돌아온 후에는 연락이 끊겼어요.”라고 털어놨다.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 온 '코피노' 아이. 한국 땅에서 새롭게 찾은 가족은 아빠가 아니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중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 온 '코피노' 아이. 한국 땅에서 새롭게 찾은 가족은 아빠가 아니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중

외국 여성(그래, 동남아 여성)을 착취해도 괜찮다는 한국 남성의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나라의 여성은 그들에게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성적인 도구인 것인가?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듯 개인적으로 100% 상호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의 성매매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만약 양쪽 모두 성인이고 서로 100% 합의된 상황, 성 노동자의 권리가 100% 존중된다면, 내가 어찌 타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겠나?) 하지만 코피노는 성매매일 뿐만 아니라 극악무도한 사기다. 사랑을 속삭이다가 상대 여성이 임신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모른 척하는 남성들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JTBC 〈비정상회담〉 중

JTBC 〈비정상회담〉 중

아주 가끔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귀국하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는 게 아닐까? 한국에 사는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도 똑같이 쉽게 행동할 수 있을까? 성범죄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사법 체계에서, 한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가난한 외국인 엄마들이 법적 보호와 양육비를 받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과연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현지 여성에 대한 성 착취가 비단 한국 남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코피노’ 문제는 빈곤국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대개 이와 같은 성 착취 문제는 성적 제국주의(sexual imperialism)라고 불리며 ‘서구’ 혹은 ‘선진국’의 문제라고 여겨져 왔으니까 말이다. 국가가 발전하면 무책임하게 해외 여성을 착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 마냥 이젠 한국이 그 전철을 밟고 있다. 하지만 외국 정부에 전시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는 대한민국이 자국민이 타지에서 자행하는 무책임한 성범죄에 눈감아 준다는 건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JTBC 〈비정상회담〉 중

JTBC 〈비정상회담〉 중

우리는 성적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해외 여성과 아이들의 고통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지금처럼 가해자들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무책임한 행동을 계속해 나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하고, 말하고, 움직여야 한다.
 
 코피노 아이들의 잃어버린 아빠를 찾는 웹사이트 kopinofather.wordpress.com

코피노 아이들의 잃어버린 아빠를 찾는 웹사이트 kopinofather.wordpress.com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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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라파엘 라시드
  • 사진 라파엘 라시드/ 각 영화 방송 스틸
  • 번역 서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