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한국vs.한국: 한국사회의 흑백논리_라파엘의 한국 살이 #12

흑과 백, 모 아니면 도, 적군이냐 아군이냐, 좌파 혹은 우파. 왜 한국 사회는 덮어두고 편을 가르고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미워하나.

BY권민지2020.04.10


“좌파야? 무슬림이야?”


그래, 난 댓글을 본다. 나쁜 습관이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그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기사, 커뮤니티, 트위터에 달린 댓글 등등. 나도 안다. 댓글을 확인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주변 기자들을 포함한 친구들 역시 댓글을 무시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악플로 인해 정신 상담을 받는 친구들 또한 심심치 않게 봐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궁금함을 억지로 참아가며 스트레스받느니 확인하고 잠시 괴로운 편이 낫다는 쪽이다. 사실 부정적인 코멘트를 (비교적으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고 대부분은 존중받아 마땅하니까.
 
하지만 많은 코멘트를 통해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나’라는 개인에 대해 특정 단어나 카테고리로 정의하려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거다.
 
Cam Mor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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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인가? 영국인? 백인? 무슬림? 좌파? 우파? 종교반대자? 동성애 ‘옹호자’? 정부에서 고용한 사람?
 
흠. 그런 댓글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무조건 어떤 카테고리에 속해야만 하냐는 의문이다. 물론 누구나 각각의 의견과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분류와 분열이 너무 극단적이다. 흑백, 좌우, 모 아니면 도, 적군 아니면 아군인 식이다. 흑에 가까운 의견을 피력하는 순간 나는 백을 반대하는 입장에 놓인다. 모를 옹호하면 나는 갑자기 도를 혐오하는 인간이 된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이 생각하던 카테고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의견을 말할 경우 혼란스러워한다. 나를 웃음 짓게 했던 이 코멘트처럼 말이다. “저 기사에서는 좌파처럼 보이는데 이 기사에서는 우파의 논리를 펴네. 도대체 쟤는 어느 쪽이야?”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분류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식 패턴이다. 문제는 특정 카테고리로의 분류가 '묻지마편 가르기'와 편견, 배척, 혐오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런 대립과 갈등은 온라인에서 가장 극명하게 민낯을 드러내지만, 현실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나는 나와 관련한 분류가 불편하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Matt Brin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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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하자면, 나는 우파, 좌파로 딱 규정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정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이 슬프다는 건 안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는 선거철인 요즘은 더욱. 좌/우, 여/야로 나뉘어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자동으로 반대 정당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선거 유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정권 심판’ 같은 표현 역시 상대를 철저하게 배척하는 의미 그리고 그런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려는 노력을 내포한다. 오죽하면 가정과 회사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 자체가 금기시되겠는가. (싸움 나기 일쑤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의 대부분 나라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과거 전쟁의 아픔과 현재의 휴전 상황으로 인해 지나칠 정도로 분열돼 있지 않나 싶다. 정책에 대한 상식적인 토론과 판단보다 감정적으로 서로를 부정해야 하는 정치 현실 속에서 건강한 정치문화는 멀게만 느껴진다.
 
사실 양당 간의 정치 갈등은 지역감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역 갈등은 한국 사회 내 오랜 사회 문제다.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출신 지역을 이야기하는 순간 일종의 선입견이 깔리는 게 다반사다. (요즘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나 그런데도 여전히) 특정 지역 출신끼리는 결혼에 어려움이 있으며, 비즈니스 관계에서 역시 지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부분은 개인의 얄팍한 경험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평가와 판단에 근거한 경우다. 오래 묵은 지역감정은 이런 판단을 ‘확신’으로 고착화하는 듯 보인다.
 
Markus Spis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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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간의 갈등은 또 어떤가. 이는 너무 방대하고 첨예하며, 미시적이고 또 거시적이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책으로 다뤄야 할 만큼 크고 깊은 주제인 것 같다) 평범한 회사생활 속에서 남자들끼리만 모여있을 경우,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일상적이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능력은 폄하되기 일쑤였으며, 그 표현과 묘사는 종종 나의 귀를 의심할 정도로 험악했다. 도대체 왜? 정말 그 남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남성 집단 속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동조하는 걸까? 그놈의 ‘사회생활’이고 ‘비즈니스’ 때문에? 추측하건대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정말 그 남자들이 여성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의 아름다워 보이는) 결혼과 연애 자체가 불가능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긴, 어느 쪽이든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말이다.
 
 T. Chick McClur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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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걸 안다. 하지만 혜화역에서 열렸던 몰카 반대 시위의 취재 경험은 잊을 수 없다. 분명히 기자 명찰을 크게 달고 있었음에도 갑자기 시위대의 한 여성이 카메라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경찰이 와서 사태는 겨우 진정 되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요동쳤던 내 심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남자였기 때문일까? ‘몰카’ 반대 시위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진을 통해 많은 외신의 관심과 여성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한 시위대 한 명의 분노에 찬 답변은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았다. “전 남자를 미워합니다!”
 
어쨌거나 외부인으로서 한국사회의 많은 갈등의 근본 원인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정치 사회적 갈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 세계 공통의 문제인 것도 맞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데 외부를 특정 짓고 배척하는 것은 아주 오래되고 쉬운 방법이다. 지역 갈등과 남녀 갈등은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하며, 때때로 갈등은 어쩌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성장통일 수도 있다.
 
Roya ann mil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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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는, 어떤 종류의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그 결과가 무조건 외부 집단에 대한 편견과 배척 그리고 혐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두 개의 ‘수레바퀴’가 역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좌파’ ‘우파’ ‘경상도 출신’ ‘영국 사람’ ‘남자’ ‘여자’ 같은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인간 아니던가.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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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라파엘 라시드
  • 사진 언스플래시
  • 번역 허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