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suals on Unsplash(뉴욕타임스 프레임) , 라파엘 라시드
통화의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그 임원은 “위에서 내려온 요청입니다”라는 말로 다시금 이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위’는 청와대를 뜻했다) 위에서 왔건 아래서 왔건, 실현 불가능한 요구였다. 그들의 출장은 〈뉴욕타임스〉가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당연히 〈뉴욕타임스〉에 실리지 못했고 해당 기업의 임원은 유감을 표했다.

영화 〈베테랑〉 스틸
내 기준엔 비상식적인 요구였지만 기업의 홍보를 대행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 기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부디 나의 고객인 해당 기업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말이다.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내가 쓴 건 공적인 정보야. 거짓말이 아니라고. 지금 이 통화조차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거 알지? 그 기업이 그들에 대한 어떤 부분, 그것도 팩트를 삭제해 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는 사실 말이야.” 백번 맞는 말이었다. 난 친구에게 제발 우리의 대화에 대한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또) 빌었다. 그렇지 않으면, 해고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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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내가 한국에서 몇 년 동안 접했던 수많은 에피소드 중 고작 몇 가지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과 정부가 국제적인 매체에서 주목받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보통 (그리고 특히)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BBC〉 〈CNN〉을 원했다. 이 매체 중 하나에서 언급되는 것은 일종의 성배와도 같다.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매체’에서 언급된다는 것은 자기 검증의 과정이고, 정당성과 일종의 권한을 부여받는 한 형태나 다름없다. 외신의 말엔 절대적인 힘이 있다. 한국의 무언가가 외신에서 언급된다는 건 경사거나 진실이거나, 둘 중 하나로 여겨진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언론플레이다. 해외의 유명한 매체에서 다룬 정부나 특정 기업에 대한 기사는 국내 언론에 의해 역수입된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식이다.
1. 정부 혹은 기업이 ‘무언가’를 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인지, 뉴스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는 상관없다.)
2. 그 ‘무언가’를 글로벌 매체에서 다루게끔 최선을 다한다.
3. 2가 성공한다면, 국내 언론에서 해외 매체가 한국의 ‘무언가’에 주목했다는 종류의 기사를 내보낸다. 여기엔 ‘외신에 따르면’ 같은 문장이 붙는다.
4. 정부 혹은 해당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이용한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외신의 평은 꽤 중요한 게 확실했다. 외신기자만을 대상으로 한 정부 브리핑을 연 것은 물론 며칠 후 외신기자들의 질문과 반응을 모아 특별 영상을 제작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이 영상은 현재 150만 뷰를 훌쩍 넘어섰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칭찬하는 외신의 헤드라인만을 추린 게시물을 트윗하기도 했다. 오해하지는 말자. 나 역시 수십만 번의 검사가 신속히 진행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들에게는 찬사와 감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외신)통신원들! 부디 인터뷰를 부탁 드립니다!"라고 적힌 피켓. 사진/ 라파엘 라시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합법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이번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전 정부 그리고 그 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신에 따르면’이란 말에 대한 집착은 (그래, 보통은 서양권) ‘선진국’으로부터 인정 욕구, 어찌 보면 열등감에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외신의 말은 100% 진실이거나 타당한 것이라 덮어 두고 믿지 않나. 이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음. 아마도, 사대주의?

라파엘 라시드
요지는, 각계의 의사결정자들은 그토록 많은 시간을 외신에 집착하는 데 할애하는 것 보다는 외신의 도움 없이도 실제 그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거다. 이건 국내 언론 환경을 바꾸는 실질적인 변화가 절실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모든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을 선진국이라 알고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오직 한국인들만 그 사실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외신의 평가에 연연한다는 게 그 증거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럴 때는 이미 지났고, 지나야만 한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