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한국 언론의 자유란 수정과 삭제의 자유인가?_라파엘의 한국 살이 #10

습관적인 보도 실수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기사 수정과 삭제가 연이어지는 지금 한국 언론에서 언론의 자유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아니면 말고’ 라는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자유 혹은 ‘Ctrl+Z’의 자유?

BY권민지2020.03.27
*프리랜스 기자로서 사회 이슈들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다 보니, 계속해서 미디어 관련 글로 독자들을 찾아뵙게 되어 유감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중국의 한 매체에 따르면, 나는 ‘미국인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갑자기 영국인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에서 미국인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국적과 직업이 바뀌게 된 사연은 이렇다. 몇 주 전, 상하이의 한 언론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식을 주제로 인터뷰를 청했다. 한국의 상황,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니, (순진하게도) 무척 기뻤다. 하지만 기대와 즐거움도 잠시, 기사가 출고된 후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내용을 체크했을 때 난 참혹한 결과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건 내 인터뷰라고 하기 어려웠다. 애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가득했다. 하물며 내가 하지 않았던 말, “중국과는 달리 한국은 임시 병원을 짓지 않았다” 같은 문장 또한 추가돼 있었다. 그리고 내 프로필은 ‘미국인 다큐멘터리 감독’이었고 말이다.
 
KBS2 드라마 〈아이리스〉 중

KBS2 드라마 〈아이리스〉 중

이건 도대체 뭐지? 해당 중국 매체에 수정사항을 적은 리스트를 보냈다. 그들은 ‘의사소통의 오류’에 대해 사과했고 몇몇 요청을 받아들였다. (전부 수정되지는 않았다. 그 기사에서 아직 나는 ‘미국인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하긴, 기사가 완벽하게 수정되었다 한들 별 의미 없었을 것이다. 기사는 출고된 첫날 이미 50만가량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그 50만여 명의 독자들은 어쨌거나 각자의 결론을 내린 후일 테니 말이다. 내 입으로 발화된 적 없는 ‘나의 의견’을 근거로.
 
중국 매체를 처음 접한 내게 이 경험은 확실히 충격적이었지만, 완전히 낯선 것만도 아니었다. 따져보면 한국 언론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 또한 기사 내용을 입맛에 맞게 재차 수정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수정 사유가 따로 붙지도 않고, 정정보도는 당연히 없으며, 심지어 다뤘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기사 자체를 삭제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읽고 있는 이 기사가 진실인지, (추후 수정 혹은 삭제 가능성이 있는) 페이크 뉴스인지, 어찌 확신할 수 있겠나? 정말이지 위험하고 비양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정정 사유를 붙이는 것보다 은근슬쩍 내용을 바꾸거나 삭제하는 게 더욱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건가?
 
PrateekKatyal on unsplash

PrateekKatyal on unsplash

몇 달 전, 공신력 있는 국내 매체 중 하나인 S에서 한 기사를 읽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 M을 저격하며,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기사 링크와 함께 S 매체가 제기한 의혹을 영어로 번역해 트위터에 공유했다. 그리고 그 트윗은 유럽 매체를 비롯해 몇몇 외신들에 의해 인용되었다. 몇 시간 후 포스팅한 기사 링크를 다시 눌러보았을 때, 놀랍게도 기사의 내용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M 회사에 대한 모든 의혹이 삭제된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공유했던 기사와는 링크만 같지, 전혀 다른 기사나 다름없었다. 그래, M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사를 신중하게 재편집(아니, 재작성)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바보가 된 기분마저 들었으며, 어쩔 수 없이 내 트윗을 삭제해야만 했다. 짧은 삭제의 변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쾌했던 것은 S 매체가 아무런 말 없이 기사를 수정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N 매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들이 ‘숨진 대구 17세 소년 코로나 양성 판정… 국내 첫 청소년 사례’라는 기사를 내보낸 적 있었다. 이번에도 재빨리 N 매체의 기사를 영어로 번역한 후 트위터에 공유했다. 요즘 한국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외국의 관심이 크다 보니, 나의 트윗은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저널리스트들이 내 트윗을 퍼갔다. 몇 분 후 나는 같은 기사의 링크를 클릭했고 이번에도 역시, 기사의 타이틀은 ‘숨진 대구 17세 소년 소변 검사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국내 첫 청소년 사례’라는 문구는 어디 간 건가? 그냥 더욱 많은 조회 수를 위해 저토록 자극적이고 섣부른 결론을 내린 건가? 더욱 심각한 것은 한 시간 후, 아무 설명 없이 기사 자체가 삭제됐다는 거다. 젠장, 짜증이 솟구쳤다. 또 한 번 한국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14분 40초 참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련의 과정들은 대부분의 국내 언론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은 매체가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무턱대고 보도하기에 앞서 팩트 체크를 철저히 하고, 혹여 실수 시 정정 보도를 하는 등의 책임감 투철한 (유니콘 같은) 매체가 아직 남아있긴 한가?
 
인쇄 매체만이 존재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정말이지, 모든 것이 너무 많고, 너무 빠르고, 너무 쉽다. 인쇄 매체가 완벽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땐 제한의 미덕이 있었다. 지면과 분량은 한정적이었고 신문의 경우 ‘매일 아침 한 번’ 같은 식으로 출판되는 시간이나 횟수 역시 모두 정해져 있었다. 자연히 단어와 소재를 고르거나 팩트 체크를 하는 데 있어서 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오보했을 경우엔 수정은 불가능했으니 정정보도를 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온라인 미디어가 대세인 지금은 그야말로 범람의 시대다. 전통적인 언론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매체를 포함한 온라인 미디어가 모두 그렇다. 일주일 내내, 온종일, 매분, 매초 곳곳에서 기사와 자료가 쏟아진다. 팩트 체크를 요하는 정보의 양이란, 애초에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때문에 선별에서부터 더욱 철저한 자기검열을 거쳐야 하는 게 당연한 의무이고 책임 아닐까.


실시간이 최우선인 온라인 세상에서 (그들은) 수정이나 삭제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보, 그러니까 잘못된 정보의 전달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할 수 있다. 기사라는 건 일종의 영향력이고, 그건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사는 어떤 식으로든 독자에게 잔상을 남긴다. 한 번 읽은 기사가 수정되었는지, 삭제되었는지 다시 체크해보는 독자가 얼마나 있겠나? 출고된 후엔 돌이킬 수 없다.
 
이런 ‘실수’가 습관적일 정도로 흔한 상황에서, 의도나 목적이 있든 없든 간에, 한국 언론의 실태가 나의 중국 매체 경험과 무엇이 그리 다르다고 할 수 있겠나.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통제되는 중국 언론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국 언론이 비슷한 정도로 신뢰하기 어렵다면, 사실 그게 더 슬픈 일 아닌가. 아니,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 혹시 ‘아니면 말고’ 식의 자유를 뜻하는 건가? 혹은 ‘Ctrl+Z’의 자유?


JTBC Plus 자료실

JTBC Plus 자료실

〈워싱턴 포스트〉의 슬로건은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이다. 미디어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빛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언론은 민주주의를 밝히는 빛과는 정반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 언론은 오히려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고 있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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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라파엘 라시드
  • 사진 JTBC Plus 자료실/드라마 스탈/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