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한국식 ‘비즈니스’?_라파엘의 한국 살이 #13

은밀한 치부를 공유하며 팀워크를 다지고 새로운 계약을 도모하는 한국식 비즈니스. (남성 위주 문화의) 기업에 다니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고 어쩌면 경험해본 바로 그것. 5년 전, 한국 회사에 갓 입사했던 외국인인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BY권민지2020.04.17
솔직하게 말해보자.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남성 위주 문화의 기업에 다니는 남자라면, 어떤 종류든 간에, 성매매 업소를 경험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2차가 있는 룸살롱, 도우미가 ‘항시 대기하는’ 노래방,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사지 같은 곳에 한 번쯤은 다녀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문자 그대로, 땅에 떨어진 여성 인권. 사진/ 라파엘 라시드

문자 그대로, 땅에 떨어진 여성 인권. 사진/ 라파엘 라시드

그래, 성매매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성매매는 전 세계 어디에나,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섹스하기 위해 남성이 여성에게, 남성이 남성에게, 여성이 남성에게, 여성이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 개인적으로 ‘성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만약 양쪽 모두 성인이고 서로 100% 합의된 상황, 성 노동자의 권리가 100% 존중된다면, 내가 어찌 타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겠나? (물론 성매매가 한국에서 불법이라는 건 알고 있다.)
 
성 노동자의 선택과 권리와 보장되는 사회라니,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전제 조건일지도 모른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내가 한국 성 산업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 역시 여성의 성적 대상화, 나아가 성적 도구화가 문화이자 사회 분위기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나는 성매매 업소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한국 친구들을 꽤 많이 알고 있는데 대부분은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물론 그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거짓 핑계를 둘러대는 것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던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비겁한 변명인가? 아니면 용기 있는 목소리인가? 섹스 노동자 인권 운동가이자 캐나다의 만화가체스터 브라운의 〈유료 서비스〉

비겁한 변명인가? 아니면 용기 있는 목소리인가? 섹스 노동자 인권 운동가이자 캐나다의 만화가체스터 브라운의 〈유료 서비스〉

왜냐하면,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사회초년생이었다. 상사 A가 저녁 겸 비즈니스 미팅을 제안했고, 우리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다들 나보다 훨씬 직급이 높았고 그만큼 나이도 많은 남자들이었다. 배를 채우는 것보다는 취하는 게 목적인 것 마냥 소주를 들이켰고 특히 난 만취했다(신입사원이 그런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술을 받아 마셔야 하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걱정하지 마. 이제 일어날 거야.” A의 말에 안도하던 찰나 검정 세단 한 대가 와서 우리 일행 앞에 섰다. 어라? 이건 택시가 아닌데?
 
그렇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선릉역 주변의 골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떤 여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고 노래방과 비슷한 구조의 ‘룸’으로 안내했다. 이미 테이블 위엔 위스키와 과일이 준비돼 있었다. 그때서야 여기가 말로만 듣던 룸살롱인 것을 알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어리석다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정말 그 방에 들어서기 전에는 내가 룸살롱에 왔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화 〈내부자들〉 스틸 중. 영화 속 많은 비즈니스들은 주로 룸살롱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내부자들〉 스틸 중. 영화 속 많은 비즈니스들은 주로 룸살롱을 배경으로 한다

그다음의 이야기들은… 영화에서 봤던 건 결코 허구가 아니었다. 그룹으로 들어온 여성 중 한 명씩을 고르는 시스템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셋 다 유부남이었지만 다들 굉장히 익숙하고 흥겨워 보였다. 특히 A는 외국인인 내게 한국 회사 속 남성들의 문화를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분위기를 깨서는 안 될까? 도망쳐야 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상황을 몹시 당연하게 즐기고 있는 상사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함께 있는 신입사원으로서,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용기가 없었다.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순간 클라이언트를 잃고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게 더 두려웠다. 젠장.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지만, 더 당황스러웠던 건 그 이후 상사 A가 내게 무척 친절하게 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난 그 일을 계기로 ‘남자 무리’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남성 친구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됐다. 이건 단순히 몇몇 기업 혹은 몇몇 남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이야기였다. 나의 여성 친구들 역시 남편들이 성매매 업소에 다녀온 걸 알게 됐을 때 어쩔 수 없이 눈감아줘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예상하는 대로다.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영화 〈강남 1970〉 스틸

영화 〈강남 1970〉 스틸

다행히 난 끔찍한 기업문화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내 친구들은 지금도 그곳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상사와 함께 룸살롱이나 가라오케(섹스 클럽이라고 불러야 할까?)에 가야만 하는 ‘사회생활’ 이야기를 전해 온다. 누군가는 “만약 그 자리에 불참한다면 승진 대상에서 제외될 거야” 같은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했다. 무언의 압박과 강요로 시작해 암묵적 합의로 끝나는 ‘비즈니스의 일환’…. 이건 도대체 뭘까? 일종의 현대판 ‘집단 유죄(collective guilt)’ 심리인가? 모두가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우리 모두 똑같이 잘못하고 있다면, 사실 정말 잘못된 건 없는 것이다 같은?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생각하기로는 재수 없을 정도로 도덕적인) 누군가가 그 은밀한 치부를 공유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는 사회생활 부적응자처럼 취급받을 뿐만 아니라 해고의 위험을 당할지도 모른다. 관행이라는 핑계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모두 모른 체하고 괜찮은 척한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중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중

사실 법보다 더 중요한 건 인식과 문화의 변화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저서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서 영화 산업에서 룸살롱 비즈니스가 없어지면서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사회가 달라졌다고 적었다. 그리고 한겨레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 영화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이 등장하면서 영화계에 많은 변화가 일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러한 감독들이 우연히 룸살롱을 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사실 이전까지 영화 계약의 대부분은 룸살롱에서 이뤄졌거든요. 그런데 동시대에 마침 같은 성향의 감독들이 등장하고 게다가 내놓는 결과물들도 우수하다 보니 그 위주로 영화판이 개편됐어요.” 영화계가 움직였고 시대가 달라졌듯 기업 문화도 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리다. 도대체 왜 대기업 건물 주변에 수많은 가라오케가 이렇게나 성행하고 있는 건가.
 
불행하게도, 여전히, 진정 원해서 성 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이 없어서, 속아서,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는다. 그리고 ‘거래’를 성사하는 동안 여성을 데코레이션처럼 앉혀 놓는 동시에 그들을 성적 도구화 하는 것은 여전히 한국 회사 생활의 한 부분이다. 평범한 기업에서조차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이 나라에서 역겨운 성범죄가 빈번한 것도 그리 놀라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회식 자리에서 팀워크를 돈독히 다지기 위해 혹은 새로운 계약 성사를 위해 성매매를 해야 한다니,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끔찍한 세상에서 사는 건가. '접대'가 문화인 회사라면 망하는 게 맞지 않나. 아, 그럼 남을 회사가 몇 개 안 되려나.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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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라파엘 라시드
  • 사진 라파엘 라시드/ 각 영화 스틸/ JTBC Plus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