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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을 가르는 남자들, 백인철 김건우

한국 수영 최고 전성기라 불리는 지금. 그 물살을 가장 날렵하게 가르는 두 남자를 만났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백인철과 김건우가 전한 승전보.

프로필 by 전혜진 2023.10.27
김건우가 입은 니트 비니는 Moncler Collection.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백인철이 입은 재킷은 Steven Meisel for Zara. 네크리스는 Tom Wood. 티셔츠와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건우가 입은 니트 비니는 Moncler Collection.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백인철이 입은 재킷은 Steven Meisel for Zara. 네크리스는 Tom Wood. 티셔츠와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백인철

코트는 Loewe. 링은 Stephen Webster. 네크리스와 스윔 팬츠, 언더웨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는 Loewe. 링은 Stephen Webster. 네크리스와 스윔 팬츠, 언더웨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확신이 있었습니다. 
 
물속에서는 주로 어떤 생각을 하나요
동작에 신경 써요. ‘마인드 머슬 커넥션’이라고 근육과 정신을 연결시키는 원리를 수영에 적용해 훈련합니다. 특정 근육을 신경 쓰면 그 근육이 더 잘 활성화되는 원리죠. 정신이 몸을 지배할 수 있게요.
 
잡념이 생길 때도 있나요
배고프면 집중이 깨집니다. 유독 연습하기 싫은 날도 가끔 있고요(웃음).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접영 50m 부문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물에 있는데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승리를 만끽 중인가요
쉴 시간 없이 바로 전국체육대회 준비했어요. 귀국하자마자 하루 쉬고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항저우에서 동료들과 충분히 기쁨을 만끽했죠.
 
생애 첫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하루 만에 대회신기록이자 한국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하다니, 어떤 기분일까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어요. 선수들 대부분 오전 경기에는 기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최상의 컨디션이기 어렵거든요. 예선 경기에서 신기록을 달성했으니 오후 결승 경기에서는 무조건 다시 경신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기록도 더 줄이고 싶었는데, 그건 아쉬웠죠.
 
양팔을 활짝 벌리고 눈을 감고 레일 옆으로 쓰러지는 세레모니가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금메달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라 어떤 세레모니를 할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설레발치기보다 수영에 집중하자 싶어 내버려뒀죠. 결승 경기에서 터치판을 찍고, 전광판을 보고, 제가 일등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 관중석에 있을 동료들을 마주 보고 싶더군요. 코치석도, 관중들도 이어 말이죠. 그 기쁨을 함께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동작이었나 봐요.
 
오늘 함께한 같은 2000년생 동갑내기인 김건우 선수는 어떤 동료인가요
고등학교 때 같은 클럽에서 훈련했어요. 제가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주 못 보다가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 팀에서 다시 만나게 됐죠. 같이 동고동락하며 더 돈독해졌고요. 대표 팀 선발 때 건우가 발탁된 걸 확인하고서 엉엉 울면서 안아줬어요. 건우는 늘 겉으로 티 내지 않지만, 자기만의 힘을 내면에 숨겨두고 있는 친구예요. 라이벌이면 진짜 무서울 것 같은데.
 
베스트는 Gucci.

베스트는 Gucci.

 
백인철 선수만의 무기는
순간 집중력이 좋은 편이에요. 그래서 스프린터에 강하기도 하고요.
 
이번 아시안게임 경기가 국가대표로 처음 뛴 경기였어요. 이름의 무게가 느껴지던가요
대표 팀 선발은 예상했던 터라 담담했습니다. 자만하는 것도, 결과가 당연하다는 뜻도 아니에요. 아시안게임 실전 운영을 잘하겠다는 더 큰 목표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나라를 대표해 출전하는 일은 임하는 자세부터 달라요. 책임감도, 부담감도 두 배로 커지죠.
 
6개월간의 대표 팀 훈련 기간 동안 느낀 점은
꾸준함이 답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환경에 따라 나태해지기 쉬운데, 선수촌에서는 훈련에만 집중하니까 이런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평소 경기에 나서기 전 꼭 챙기는 것이 있나요. 일종의 ‘부적’이랄지
일급 비밀입니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지키던 루틴인데요. 박카스를 꼭 마십니다. 편의점 말고 약국에서 파는 박카스! 항저우에 갈 때도 종목 예선과 결선 각 두 병씩 총 네 병을 인천공항 약국에서 챙겼습니다.
 
첫 수영의 기억을 떠올려볼까요
일곱 살 무렵, 팔 골절 때문에 재활 겸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진학한 초등학교에 수영 선수반이 있어서 친구들을 따라 운 좋게 들어가게 됐죠.
 
수영이 꿈이자 직업이 되겠단 걸 확신한 순간은요
초등학교 때는 너무 힘들어서 수영선수가 될 거라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당장 그만두고 싶었죠.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수영의 맛을 알게 됐던 것 같아요. 그간 시키는 대로 수영해 왔다면 그때부터는 내가 물을 주도해서 수영하는 법을 터득했달까요. 주체성이 생긴 거죠.
 
대학시절까지 태극 마크를 달지 못했지만 지난해부터 급속도로 성장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며 ‘대기만성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터닝 포인트가 있었나요
대학교 마지막 학년이 되니 수영선수 생활이 이대로 막을 내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10년 동안 해왔는데 딱히 이뤄낸 성과가 없었으니까요. 다른 진로를 고민하던 찰나, 그만두기 전 최대한 후회 없이 해보자는 마음으로 마지막 일 년을 죽어라 했던 것 같아요. 그게 터닝 포인트였죠.
 
아시안게임 믹스트 존 인터뷰에서 ‘한(국)신(기록) 브레이커’로 불리고 싶다 했죠. 지난 14일 전국체육대회 접영 50m 경기에서 또 한 번 한국신기록을 깼습니다. 또 듣고 싶은 수식어가 있나요
수식어가 너무 많으면 곤란할 것 같아요(웃음). ‘한신 브레이커’ 타이틀을 계속 지켜가는 걸로 할게요. 올해만 네 번의 신기록을 깼는데, 계속해서 제 기록을 부숴가고 싶습니다.
 
물 밖에서 백인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인스타그램에 ‘휴가엔 수영 금지’라는 재치 있는 멘트가 담긴 글을 올리기도 했죠
주변에서 저더러 사차원이래요. 오래된 친구든, 최근에 사귄 친구든 모두 같은 말을 하던데 잘 모르겠어요. 제 행동이 독특하대요.
 
지금 백인철이 가장 열망하는 것은
단거리 종목을 더 잘하고 싶습니다. 한국 수영이 단거리에 약하다는 인식을 깨고 싶어요. 또 내년 2월 도하 수영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아시아신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만족하지 않고 헤엄칠 수 있을 때까지 해보려고요.
 
김건우가 입은 셔츠와 타이, 부츠는 모두 Bottega Veneta. 백인철이 입은 베스트는 Gucci. 팬츠는 Steven Meisel for Zara. 체인은 Stephen Webster. 슈즈는 Dolce & Gabbana.

김건우가 입은 셔츠와 타이, 부츠는 모두 Bottega Veneta. 백인철이 입은 베스트는 Gucci. 팬츠는 Steven Meisel for Zara. 체인은 Stephen Webster. 슈즈는 Dolce & Gabbana.

 
한국 수영의 황금기라는 지금, 이 흐름을 어떻게 느끼나요
결과 면에서도 좋고 쟁쟁한 선수가 많습니다. 훈련하고 경쟁하며 서로 실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고요.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한국 수영의 기세가 내년 파리올림픽까지 쭉 이어질 거라고 확신해요.
 
다시 태어나도 수영을 할 건가요
저는 축구 해볼래요(웃음). 수영은 이번 생에서 원 없이 하고요. 제가 수영선수라 그런지 축구선수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요.
 
 
 

김건우

코트는 Loewe. 링은 Stephen Webster. 네크리스와 스윔 팬츠, 언더웨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는 Loewe. 링은 Stephen Webster. 네크리스와 스윔 팬츠, 언더웨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다시 태어나도 할 겁니다. 
 
수영선수들은 경기장이 아닌 수영장이나 바다에서 무슨 생각하며 수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놉니다. ‘신난다’ 하면서(웃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계영 팀이 800m 금메달과 아시아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팀을 결승으로 이끈 예선전의 주역으로서 뿌듯했을 것 같아요
계영 팀 여섯 멤버가 6개월 동안 단체전 금메달을 목표로 정말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막상 금메달을 목에 거니 그간 동고동락하며 고생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 눈물이 났어요. 행복했습니다.
 
단체전 승리는 두 배로 기쁜가요
고생이 두 배니 기쁨도 두 배죠. 경기 후 다 같이 마주치자마자 포옹하며 서로 고맙다고 얘기했어요. 예선 경기 뛸 때도 국제대회가 처음이라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떨렸는데 김우민 선수가 할 수 있다고, 최선만 다하라고 격려해 줘서 힘낼 수 있었어요.
 
국가대표라는 이름은 처음 달았죠. 대표 팀에 발탁되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처음에는 실감 나지 않았어요. 선수촌에 들어가서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과 훈련하다 보니 그때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행동에 겸손함도 생기고요. 수영장 레일 앞에 태극기가 보이고, 선수촌 식당에 유명 국가대표 선수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비로소 ‘아, 내가 국대구나!’ 실감했습니다.
 
아시안게임에 챙겨 간 아이템이 있나요
시합할 때 헤드셋을 꼭 챙겨요. 쉬거나 불안할 때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크게 듣는 편이에요. 잔나비 음악을 좋아합니다.
 
티셔츠와 스윔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티셔츠와 스윔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항저우에서 또 다른 추억을 꺼내보자면
선수촌 식당에 e스포츠 국가대표 페이커 선수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든 수영 선수가 식당 앞에서 쭈뼛쭈뼛 사진 촬영을 요청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웃음).
 
인스타그램에 김지훈 선수와 함께 ‘항저우 기념 샷’을 올리기도 했어요. 승부사들의 냉철한 모습과는 달리 귀엽던데요
선수촌이 예뻐서 혼자 사진 찍고 싶었는데 김지훈 선수가 방해 공작을 폈어요. 김영범 선수가 앞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었죠. 재밌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요.
 
선수촌 훈련 기간 동안 크게 성장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그 전까지 제가 꽤 노력하는 선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그곳 선수들을 보며 지금껏 제가 해온 노력은 제대로 된 노력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음가짐이 성장했습니다. 수영에 한층 더 진지해졌달까요.
선수촌 룸메이트는 누구였나요
김영범 선수. 저를 자주 괴롭힙니다. 애교쟁이라 서로 잘 맞고, 한참 동생이라 뭘 해도 귀여워요(웃음).
 
오늘 함께한 백인철 선수는 어떤 동료인가요
고등학교 때 백인철 선수와 같은 클럽에서 훈련했는데요. 그때도 참 잘생겨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또 자기 훈련을 묵묵히 하는 선수였고요. 이번 대회에서도 자신만의 경기를 펼치는 걸 보고 눈물이 핑 돌았어요. 잘하려 노력하고 그만큼 고생한 걸 아니까…. 압박감과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경기를 즐기는 대단한 선수이자 친구죠.
 
재킷과 팬츠는 모두 Versace. 네크리스는 Stephen Webster. 슈즈는 Dolce & Gabbana.

재킷과 팬츠는 모두 Versace. 네크리스는 Stephen Webster. 슈즈는 Dolce & Gabbana.

 
동료들을 보며 눈물을 자주 흘리는 것 같은데, 원래 눈물이 많나요
눈물이 이렇게 많은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곁에서 고생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으니 절로 나더군요(웃음). 제가 체육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단체전은 이번 경기에서 처음 준비해 봤는데, 한마음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어요. 책임감과 동시에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중요한 경기를 앞둔 밤에는 무얼 하나요
가만히 있으면 다음 날 시합이 생각나서 긴장돼요. 그래서 재미난 콘텐츠를 보며 걱정을 덥니다. <무한도전> 팬이라 봤던 것도 계속 봐요.
 
수영이 꿈이자 직업이 되리란 걸 확신한 순간은
형 따라 수영장에 갔다가 물속에 있는 게 좋아서 자연스레 시작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그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어요. 성인이 되면서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막상 여기서 멈추기에는 아쉽고, 아직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때 제대로 직업 선수를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스무 살 때 전국체육대회 1등을 하고부터 탄력을 받았어요.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수영이 좋아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거죠. 늘 국가대표가 꿈이었는데, 막상 되고 보니 국제대회에서 개인 메달도 따보고 싶어요.
 
수영의 어떤 면을 사랑하나요
스트레스받을 때 물속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 몸이 편안해져요. 수영이 잘되지 않을 때 받는 스트레스도 수영이 잘 풀리는 순간 한 방에 사라지죠.
 
물 밖에서 김건우는 어떤 사람인가요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놀아요.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편인데, 시즌이 시작되면 모든 만남을 끊어버리거든요. 경계를 확실히 구분하는 편이라서요. 물 밖에서는 ‘순둥순둥’하지만 물 안에서는 한없이 예민해져요.
 
빈티지 티셔츠와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빈티지 티셔츠와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몇 개 없더군요
비공개 계정이었는데 예선전 끝나자마자 팔로 요청을 엄청 해주셨더라고요. 다 받기가 어려워서 그냥 공개로 해둔 겁니다(웃음).
 
수영 이외에 ‘덕질’하는 것이 있다면
옷에 관심이 많아요. 운동할 때 매번 트레이닝복만 입으니까 친구들 만날 때나 학교 갈 때 좀 멋있게 차려입고 나가는 편입니다.
 
가족에게는 어떤 아들인가요
저흰 아들만 두 명인데, 제가 막내라 부모님께 애교도 부리고 말도 많이 걸죠.
 
지금 김건우가 열망하는 눈앞의 목표는
내년 파리올림픽에 주종목인 접영으로 출전하고 싶습니다. 소소한 목표는 키가 좀 더 컸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뤄질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웃음). 혹시나 해서 일찍 자고 스트레칭도 열심히 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수영을 할 건가요
저는 무조건 합니다. 좋아서 하는 거니까 다시 태어나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면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인스타그램 DM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수영선수들 덕분에 1주일 동안 삶이 행복했다고, 큰 감동을 주어 감사하다는 메시지였어요. 더 열심히 수영하겠습니다.
 
 
 

Credit

  • 피쳐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장기평
  • 스타일 디렉터 Bebe Kim
  • 헤어 스타일리스트 윤성호
  •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봄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