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언론과 댓글이 부추긴 ‘이태원 발 코로나19 사태’_라파엘의 한국 살이 #17

이태원 클럽에 다녀간 사람들? 물론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게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자극적 헤드라인을 쏟아낸 언론, 혐오의 댓글 역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의 책임이 있다. 누가 그들을 숨게 만들었나.

BY권민지2020.05.15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일명 ‘이태원 발 코로나19 사태’. 황금연휴 기간에 클럽을 찾은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느끼는 좌절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클럽 방문자들을 통해서 퍼져나간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많은 이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봉쇄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문제는 ‘클럽’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아, 모두가 알다시피, 하필 해당 클럽이 게이 클럽이었던 것이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2020년 5월 8일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한국 언론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K일보의 ‘단독-이태원 유명 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본래는 '이태원 게이 클럽’이라는 표현이 있었으나 현재는 '게이'가 삭제된 상태. 1. 왜? 2. 또 은근슬쩍 수정?)'를 시작으로 M신문의 ‘용인 확진자 방문 이태원 게이클럽에 500여명 있었다’ WJ의 ‘용인 확진자 다녀간 이태원 ‘킹클럽’은 어떤 곳?’ 일간지 H의 ‘용인 확진자 방문 이태원 게이 클럽…남자들, 줄 서 있었다’ 등 ‘게이’라는 단어와 불필요한 정보로 얼룩진 헤드라인이 쏟아졌다. 그간 성 소수자에 대한 적대감을 보여왔던 K일보가 선두에 서고 다른 미디어들이 그대로 복붙하는 형국이었다. 뭐, 아마 K일보가 아니었다면 다른 매체가 선수를 쳤을 것이다. 그들의 노력에 보답하듯 네이버 관심 키워드 순위에 역사상 최초로 ‘게이’와 ‘이태원 게이’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K일보의 보도가 나온 직후인 5월 7일부터 5월 11일까지 단 4일간 ‘게이 클럽’ ‘동성애’ ‘게이’ ‘블랙수면방’ ‘찜방’ 등의 키워드를 단 기사가 1천 건 넘게 집계됐다. 이 모든 과정은 미디어의 난교를 목격하는 것과 같았다. 아마 언론들은 둥근 원을 그리고 서서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서로를 축하해줬을 것이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성 정체성은 선택이 아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그렇다고 한다) 누구나 현재와 미래 삶을 계획하고 선택하면서 가능한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그룹에 소속되려고 노력한다. 애초에 차별과 따돌림이 예상되는 그룹과는 가능한 한 멀어지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 더군다나 타자와 미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가득 찬 사회에서, 누가 소수 집단에 소속되기를 자의로 선택하겠나? 성 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친한 친구로부터 거부당하고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군 생활을 제대로 마칠 수 없으며,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없고, 심지어 정신 치료 대상으로 분류될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성 정체성이 ‘보통’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자기 부정을 경험하게 되고 사회적으로 분리되는데, 누가 기꺼이 이런 삶을 ‘선택’하겠느냐는 말이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지금이 얼마나 민감하고 예민한 시기인지 물론 알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그간의 방역 노력이 누군가의 일탈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게이라니. 그들은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들은 ‘정상’으로 보이는, 또한 보이고자 하는 누군가의 형이자 동생이며 아들이고 삼촌이고 이웃이며 직장 동료이며 친구 아닌가.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몇몇은 우리는 ‘게이’라는 특정 집단을 미워 하는 게 아니라 거리 두기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 정서에 100% 동의한다. 하지만 해당 기사에 달린 수만 건의 댓글을 읽어보면 특정 소수집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혐오는 사실 특정 성 소수자 집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잡대’라는 단어로 지방대 출신 학생들을 비하하고, ‘라디언’이라는 단어로 특정 지방 사람들을 모욕하고, ‘짱개’라는 단어로 특정 국가 출신을 차별하고, ‘xxx충’이라는 단어로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우리는 그동안 ‘내’가 속하지 않은 지역, 가보지 않은 나라,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이유로 한 다양한 얼굴의 혐오를 목격해 왔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쩌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욱, 누군가의 영혼을 좀 먹고, 삶을 파괴하고, 궁극적인 불행을 안겨주는 차별, 누구나 주체 혹은 대상이 될 수 있는 혐오의 일상화, 그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 제정이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장치나 기준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사실 이번 방역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간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고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소수자들에 대해 이해하고 나아가 동등한 구성원으로 한국 사회에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 말이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이번만큼 성 소수자에 대한 뉴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외신의 시선에 민감한 정부와 미디어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현재 해외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간의 방역 성공과 높은 시민 의식으로 쌓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일부 언론사의 무책임한 기사와 일부 시민들의 노골적인 성 소수자 혐오로 인해 훼손되었다. 또한 K일보와 많은 미디어가 한국 기자협회의 보도 준칙(자세히 보기)을 무시하고 기꺼이 표적으로 삼은 ‘게이’라는 단어는 클럽방문자들을 더욱 숨어들게 했다. 그들이 거리 두기를 등한시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한국 미디어 역시 정부의 방역 활동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 도의적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오직 클릭 수를 위해 언론이 혐오와 공포를 기회로 삼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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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과 사진 라파엘 라시드
  • 번역 허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