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외국인이 한국의 인종차별을 말할 때_라파엘의 한국 살이 #21

지난 9년여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로부터 같은 코멘트를 반복해서 들었다. 바로… "한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다”. 과연 그런가?

BY권민지2020.06.19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건 2006년, 배낭여행이었다. 그때 경주 여행 중 템플 숙소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어느 미국인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그는 주변 추천으로 경주를 방문했고 마침 숙소가 같아 가는 길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별로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다. 선배 경험자인 그에게 한국 생활에 관해 물었더니 쉴새 없이 불평을 늘어놓질 않나 경주에 대해 질문해도 “아무것도 없는 이런 데를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당시 한국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경주의 역사적인 유물들과 (‘릉’을 처음 본 나로서는) 특히 거대한 묘지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지라 그에 대한 소감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가관이었다.
 
“오, 그거? 난 골프코스인 줄 알았어요.”
 
불만은 도착한 템플에서도 이어졌다. 왜 침대가 없어? 어째서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지?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저녁에 일찍 불을 끄는 이유가 뭐야? 템플의 생활 방식에 대해 참을 수 없어 했던 그는 결국 그날 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그리고 한국에 정착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9년여간 이런 무례하고 무지한 외국인들을 셀 수 없이 만났다. 결론은 엇비슷했다.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도 대개 같았다. 요약하자면,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인다운 생활 방식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낯선 문화, 한국에서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여러 종류의 ‘불편’이 ‘인종차별’로 환원되는 것. 이런 뻔뻔한 주장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부분의 온라인 포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수만 명 회원을 보유했던 페이스북 포럼 ‘Oink(Only in Korea, 한국에만 있는 것)’이 하나의 예다. 그 출발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교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공간으로 변질됐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각한지, 페이스북에서 경고도 없이 포럼을 폐쇄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말이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외국인들끼리의 이태원 모임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식당, 바, 지하철, 버스, 택시, 병원, 은행, 직장 등 모든 공간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고 토로하는데 가만히 듣다 보면 마치 그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 번은 한 외국인이 무작정 화를 내는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다. 종로의 작은 식당에서 참치회 덮밥을 주문한 그녀는 참치가 반쯤 얼어 있는 것을 확인하곤 영어로 소리를 질러댔다.
 
“나보고 언 참치를 먹으라는 거야? 내가 외국인이라서 제일 싼 참치를 내어 주는 거야?”


내 경험에 따르면, 보통 참치회 덮밥은 한국인에게나 외국인에게나, 서울 어느 식당을 가도 반 냉동 상태로 나온다. 타지 음식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음식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순서이고 상식 아닌가? 왜 화를 내기 전에, 차별을 주장하기 전에 현지 식당 사정과 문화를 좀 더 관찰할 생각을 못 하는 것일까? 아니, 모르면 그냥 정중하게 묻기만 했어도 됐을 것을. 기절할 정도로 독한 체취를 풍기는 친구는 “지하철에 탈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한국 사람들은 절대 내 옆에 앉지 않아!”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음, 사람들이 그를 슬쩍슬쩍 피한다면, 그건 인종 때문이 아니라 체취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이런 외국인들을 마주할 때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유사한 사례들의 공유와 모종의 동질감을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진짜 인종차별적인 사례들이 있겠으나 대개 그들의 불만은 차별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일화였다. 외국인으로서 익숙하지 않은 생활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짐작 못 하는 바가 아니지만, 집처럼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건 인종차별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아니, 애초에 생소한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로 타지 생활을 하는 것 아닌가? 정말이지 묻고 싶다. 그들의 말처럼 한국에서의 삶이 그만큼 괴롭고 인종차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면 왜 그런 부당한 대우를 꾸역꾸역 견뎌내면서 수년간 살고 있는 건가?
 
억지에 가까운 불평불만 너머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그들은 한국인들과 비교해도 편안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고, 비교적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한국의 탁월한 방역과 의료시스템을 생각했을 때 특히 코로나19 사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심지어 한국 여성과 결혼해서 살고 있음에도 간단한 한국어 문장조차 완성할 수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언어는 둘째로 치더라도 한국문화와 사회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전무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은 여기서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왜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기를 기대하는가? 그게 당연하기라도 하다는 듯 왜 대뜸 영어를 할 줄 아냐고(“Do you speak English?") 묻냐는 말이다. 한국 식당에서 영어 메뉴가 없는 것이 과연 차별이라는 결론의 근거가 될 수 있나? 아니, 문화 상대주의를 철저히 무시하고 서구문화 중심적인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그들의 태도가 오히려 인종차별적이지 않나?
 
사실 한국인은 외국인, 정확히 말하면 특정 나라 출신이나 특정 피부색을 지닌 외국인들에게 관대한 편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연고도, 배경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수년간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체가 그 증거다. 반대의 경우 한국인이 외국에서 똑같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라고 확신한다. 간단한 한국어 문장만 구사해도 “어머! 한국말 잘하시네요!”라는 칭찬이 자동으로 돌아온다. 식당에서 김치를 먹으면 “오! 한국음식 잘 먹네요. 젓가락질도 잘하고!”라고 반가워한다. 이는 전혀 놀라울 것도 고마워할 일도 아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한국에서 어느 정도 살아온 외국인이 한국어를 구사하고 현지 음식을 먹으면서 그에 익숙해지는 것은 필수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물론 한국에 인종차별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도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비하, 가정폭력, 성폭행, 인권침해 사례들은 셀 수 없이 많고 종종 외면받는다. 하지만 한국인의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기 전에 일부 외국인들이 누리는 특권 그리고 자신의 인종차별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는 거다. “두 유 스피크 잉글리쉬?”를 재차 묻는 당신이 느끼는 감정, 그건 차별에서 오는 불쾌함이 아니고 무식에서 비롯된 불편함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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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라파엘 라시드
  • 사진 라파엘 라시드/ JTBC 자료실
  • 번역 허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