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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팅 앱에서 '의사'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_라파엘의 한국 살이 #22

데이팅 앱을 켰다. 느닷없이 외로워서, 번듯한 스펙의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훈남 혹은 훈녀와의 데이트를 꿈꾸며.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각자의 심리, 그리고 단 하나의 규칙.

BY권민지2020.06.26
하루는 친구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보톡스 좀 맞아!" 응? 내 이마를 희미하게(선명하게?) 가르는 주름살 얘기였다. 그날 저녁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며 깨달았다. 20대의 젊음은 어디 갔는지, 어느새 주름들이 하나둘 자리 잡아 있었다. 이미 여러 번의 보톡스 경험자인 친구의 매끈하고 팽팽한 이마와 비교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 미러: Nosedive〉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 미러: Nosedive〉 스틸

그날 밤 데이팅 앱을 열었다. 나의 현재를 확인받고 싶은 심리였을까? 특히 까다로운 얼굴 평가로 유명한 ‘아만다’를 클릭했다. ‘아만다’는 프로필 사진을 올리면 1~5점 사이의 평가를 받게 되며 평균 3점 이상이 돼야 가입이 가능하다. 키, 나이, 체형, 혈액형, 대학교, 전공, 직업 같은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사진 하나를 업로드 했다. 30명 이상의 이성으로부터 내 모습을 평가받는 절차를 거치는 데 대략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1점 주는 사람, 2점 주는 사람, 4점을 주는 인심 넉넉한 분도 있었다. 과연 나의 얼굴은 3점의 벽을 넘어 설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는데 성공했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조마조마했는데 성공했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누구나 온라인에서 (포괄적 의미의) 사랑을 꿈꾸는 시대다. 한국에서만 1백 개가 넘는 데이팅 앱이 서비스 중이며 그 타입 역시 사랑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일단 모두가 다 아는 틴더. 그곳엔 단기간 사랑을 찾는 이들로 차고 넘친다. 프로필에서 대놓고 FWB(Friends with Benefits)와ONS(One Night Stand)를 찾으며 대화 시작 2분여 만에 성적인 농담들이 오가는 세계. 너무 노골적이라고? 다양한 보기 중에서 쉽고 빠르게. 그게 데이팅 앱의 본질 아니던가. 아니, 가입 기준 차별화로 유명세를 더한 몇몇 앱들을 보면 틴더는 되려 로맨틱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정 학교 졸업자이거나 고소득이 예상되는 대기업, 전문직 종사자만 가입할 수 있는 ‘스카이피플’, 외제 차 보유, 전문직, 연 소득 7천만원 이상, 강남 3구(서초, 강남, 송파) 거주 중 한 가지를 충족해야 하는 ‘골드스푼’ 등 시작도 안 했는데 직설적인 데이팅 앱들을 보라. 법적 싱글이어야 하고 결혼 전력이 있다면, 그러니까 ‘돌싱’은 가입 금지라는 기준을 명확히 한 곳도 적지 않다.
 
글쎄? Jon Tyson on Unsplash

글쎄? Jon Tyson on Unsplash

결혼정보회사를 온라인으로 옮긴 느낌이랄까? 예전 직장 동료들은 스펙으로 회원 등급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결혼정보회사로부터 회원 가입 광고 전화를 심심치 않게 받곤 했다. 수십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가입 비용을 내고 만남을 주선 받고 일부는 시간당 참석 비용을 받아가면서 데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JTBC Plus 자료실

JTBC Plus 자료실

재미 삼아 시작했던 나의 데이팅 앱 실험은 설명할 수 없는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이곳에서 그냥 사용자가 아니다. 고객인 동시에 상품이다. 선택하는 것만큼이나 선택받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팅 앱의 ‘브랜드’ 이미지와 개인의 ‘포장’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어떤 데이팅 앱들은 멤버십 기준, 그러니까 진입 장벽을 높여서 브랜드 가치를 올린다. 구매력이 있는 고객을 끌어들이고 고객 기대치를 확보하며 특별하다는 기분을 심어주며 충성도를 높인다. 명품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우리는 특정 앱 가입에 성공했다는 그 자체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증명받고 나아가 이성에게 선택받는 횟수를 늘려가며 자존감을 확인한다.
 
영화 〈My Perfect Romance〉 스팅 중

영화 〈My Perfect Romance〉 스팅 중

애초에 원하는 바를, 그러니까 직업, 외모, 학벌, 종교 혹은 관계의 종류 등을 분명히 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건 아니다. 세상 수많은 남녀 중 나의 이상과 취향에 맞춰 분류와 등급을 제시하는 것은 나름 합리적인 서비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남성과 여성의 멤버십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데이팅 앱은 상대적으로 여성들에게 너그럽다. 가입 조건이 가장 까다로운 골드스푼에서도 여성은 단지 프로필 심사만으로도, 외모 3점 이상을 받으면 가입이 가능하다. 결국 종류와 관계없이 데이팅 앱 세계를 관통하는 기준을 요약하자면, ‘남자는 경제적 능력 여자는 외모’다. 옳다는 게 아니라 이 세계가 원하는 현실이 그렇다는 거다.
 
Alexander Sinn on Unsplash

Alexander Sinn on Unsplash

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동시에 동물적인가. 데이팅 앱으로 로맨스를 찾는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토머스 홉스가 5백여 년 전 주장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진정한 의미를 경험하게 되었다. 홉스는 세상에서 확실한 사실은 사람들이 제각각 가진 살아남으려는 절실한 욕구, 곧 ‘자기보존욕’ 뿐이며 살아남으려는 욕심 외에 나머지는 모두 허구와 거짓이라고 했는데 딱 그 모양새다. 우리는 모두 중고 외제 차와 마법 같은 필터, 거울 셀카, 그럴싸한 프로필 문구로 가상세계에서 가상의 나를 꾸며낸다. ‘슈퍼 라이크’를 받기 위해서,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 솔직하고 무책임한 하룻밤을 위해서, 아주 가끔은 진지한 관계를 그리면서. 결국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의도와는 관계 없이 거울 속에 비치는 한순간의 얼굴은 ‘나’와 관련한 어떤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누군가를 선택하고 선택받기를 기다린다. 뭐, 원래 사랑은 착각이 반이긴 하지만.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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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라파엘 라시드
  • 사진 언스플래시/ JTBC Plus 자료실/ 영화 스틸
  • 번역 허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