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앱만 열면 헤일리 비버가 오늘은 어떤 선글라스를 썼고 벨라 하디드는 어떤 수영복을 입고 태닝했으며 켄달 제너가 방금 어떤 샐러드를 먹었는지 구경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그 한 컷의 사진 뒤에 어마어마한 금액의 광고비가 깔려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15년 전의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파라치 사진은 어떤 면에서 조금 더 순수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전혀 다른, 완벽하게 차려입지 않은 모습을 보는 즐거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템은 흔히 ‘조리’라고도 부르는 플립플랍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치고 플립플롭을 끌고 나와 커피 한 잔을 들고 걸어 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해변에서나 신을 것 같은 고무 신발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1990년대와 2000년대 특유의 ‘드레스-다운’ 코드를 관통하는 키 아이템이기도 했다.

@havaianas-store.com
만들기 쉽고 제작비가 적게 들고, 무엇보다 신고 벗기 쉬운 신발. 플립플롭은 일본의 볏짚 샌들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간 군인이 가져간 조리(‘쪼리’라는 말이 일본 말 ‘조리’에서 왔다)가 지금의 플립플롭으로 변형되었다는 설. 하지만 발가락 사이에 신발을 꿴다는 공통점 외에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여전히 논란이 많다. 지금 우리가 신는 것과 같이 고무로 만든 플립플롭은 1950년대에 뉴질랜드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브랜드 하바이아나스(포르투갈어로 ‘바다를 사랑하는 하와이 사람들’이라는 뜻)는 1960년대 초, 브라질에서 탄생했다.



호주 사람들은 ‘Thongs’이라고 부르고 하와이에서는 ‘Slippers’라고 부르고 미국에서는 ‘Flip-Flops’라고 부르고 뉴질랜드에서는 ‘Jandals’라고 부르는 신발. 완벽한 휴가를 위한 컬러풀한 비치웨어였던 하바이아나스는 이제 일상을 위한 아이템이 되었다. 레깅스가 더 이상 짐에서만 입는 옷이 아닌 것처럼.



플립플롭은 스웨트 셔츠와 레깅스, 크롭트 톱, 후드 집업 등 스포티한 아이템과 함께 에슬레저 룩으로 스타일링했을 때 가장 빛난다. 하지만 플립플롭을 그런 식으로만 신는 건 아무래도 좀 억울하다.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에만 신을 수 있는 신발인데! 그럴 땐 다시 우리의 옛 언니들에게서 힌트를 좀 얻어 볼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스타들이 그랬듯 플립플롭을 ‘드레스-다운’ 하기 위한 힘 빼기용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번 시즌에 하바이아나스와 같은 고무 소재가 아닌 가죽 소재의 플립플롭이 대거 쏟아져 나온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