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놀랍게도 이 두 시계가 탄생한 날은 반세기 가까이 차이 난다. 왼쪽 시계는 1973년 버전의 피아제 라임라이트 갈라 와치. 그리고 오른쪽 시계는 2020년 버전이다. 이 시계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건 다이아몬드와 블루 사파이어 세팅이다. 특히 2020년 버전의 갈라 와치는 22개의 블루 사파이어가 푸른빛의 그라데이션 효과를 이루고 있어 신비롭다. 똑같은 컬러의 젬스톤을 구별하고 조금씩 어두워지게 혹은 밝아지게 배열한 솜씨가 탁월하다. 마치 깊은 바다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브레이슬릿에 눈을 빼앗기게 된다. 피아제는 골드 브레이슬릿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노하우를 가진 소수의 워치 메이커 중 하나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이 기술은 수백 개의 골드 링크를 제작하고 촘촘히 직조한 다음 초소형 링크를 하나하나 접합하는 식으로 만든다. 완성된 브레이슬릿은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든 오트 쿠튀르 드레스처럼 보인다.


피아제의 15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지닌 브랜드다. 설립자 조르주 에드와르 피아제가 라 코토페(La Côte-aux-Fées)에 최초의 공방을 설립한 것이 1874년의 일이다. 이후 피아제는 초정밀 무브먼트 제작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된 울트라 씬 무브먼트를 출시한 것이 1950년대 후반의 일이다. 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피아제의 시계와 주얼리는 재클린 케네디, 지나 롤로브리지다, 앤디 워홀 등의 유명 인사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 무렵 처음 보석이 들어 있는 시계를 선보였다. 1988년에는 리치몬트 그룹에 합류했는데, 한층 다양해진 컬렉션을 선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탁월한 기술력과 장인 정신, 그리고 진귀한 보석을 결합시킨 아름다운 예술성으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피아제 알티플라노, 피아제 폴로, 라임라이트 갈라, 포제션, 선라이트, 피아제 로즈 및 익스트림리 레이디 등이 피아제의 상징적인 컬렉션이다.

ⓒ피아제
다시 처음의 시계로 돌아가 보자. 내가 이 시계를 아름답다고 느낀 건 다만 그 겉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피아제는 라임라이트 갈라 워치와 함께 여성의 몸으로 태어나 생을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난 5월에 공개한 〈피아제의 특별한 여성들 – Extraordinary Women〉이 그것. 중국 출신의 여성 첸 맨이 촬영한 이 사진들에는 올리비아 팔레르모와 제시카 차스테인, 공효진, 그리고 이란 출신의 모델 시바 사파이, 아랍에미리트 출신의 가수 발키스 파티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여성들의 독립심과 창의성, 강인함, 열정, 관대함, 유쾌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이 영상 속에서 털어놓는 진솔한 대화 속에는 자신의 성취와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녀들은 삶을 통해 얻은 교훈을 전 세계의 여성들과 소녀들과 공유하기 위해 애쓴다. 모든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나는 이 영상을 보며 여성들이야말로 원하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서포트하고 있다고 그녀들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기분을 느낀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흑백 사진을 올리는 #challengeaccepted #womensupportingwomen 챌린지도 생각나고.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