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애석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빛나는 시절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기회를 잃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평소에는 볼 일이 거의 없는 화려한 드레스와 꽃 장식도 그렇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요즘 오래되고 아름다운 결혼식 사진을 검색하곤 한다. 그리고 재클린의 두 번째 결혼식 장면에서 매번 같은 이유로 감탄한다.

1968년 10월에 열린 재클린 케네디와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결혼식. Ⓒ게티 이미지
1953년에 열린 재클린의 첫 번째 결혼식(존 피츠제럴드 케네디와의 예식)이 더 화려했지만, 내가 그녀의 두 번째 결혼식을 더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34세의 나이에 미망인이 된 전 영부인의 두 번째 결혼식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녀의 스타일 역시 많은 것들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1968년 10월, 재클린은 물결무늬 레이스 블라우스와 무릎 바로 위에서 찰랑거리는 플리츠스커트를 입었다. 그리고 굽이 낮은 펌프스를 신고 머리는 리본으로 내추럴하게 장식했는데, 그 모든 것이 전형적인 결혼식 복장과는 달랐다. 단정하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스타일. 그날의 의상은 첫 번째 결혼식에서와 마찬가지로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작품이었다.


2020년을 살아가가는 엘르 독자들이라면, 발렌티노를 떠올릴 때 락스터드 컬렉션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2008년에 화려하게 은퇴한 브랜드 창시자의 뒤를 이어 발렌티노 하우스를 맡게 된 듀오, 피엘파올로 피촐리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지금은 크리스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작품이다(가라바니와 듀오 사이에 또 다른 디렉터 알레산드라 파키네티가 있었지만, 그녀는 단 두 시즌만 진행하고 하우스를 떠났다).
발렌티노 특유의 낭만적인 아이템에 펑키한 스터드가 장식되는 순간, 발렌티노 하우스에는 새로운 개성이 더해졌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 현대적인 로맨티시즘에 기꺼이 열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발렌티노를 이야기할 때 여전히 레드 드레스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레드 드레스야말로 낭만적인 감수성을 표현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황제(이 표현은 2009년 공개된 발렌티노의 다큐멘터리의 제목(Valentino: The Last Emperor)에서 가져왔다)’를 가장 잘 설명하는 아이템이라고 확신한다.
발렌티노가 오트쿠튀르 컬렉션에 자주 사용한 빨간색은 ‘발렌티노 레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오렌지 톤이 살짝 섞인 강렬한 빨강, 발렌티노 레드는 그가 밝힌 것처럼 스페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꽃과 리본 모티프, 섬세한 레이스와 비즈 장식을 즐겨 사용하고 대조와 과장의 기법을 도입했던 그의 화려하고 우아한 디자인 세계의 핵심이 바로 이 빨간색이었다.




그리고 그 빨강은 특히 여성의 인체 위에서 흐르는 드레스에 적용되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레드 카펫에 설 때에는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지 않는다는 오래된 관습을 깨고 많은 여배우들이 발렌티노의 레드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서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2007년에 로마에서 열린 발렌티노 전시의 한 섹션을 오직 레드 드레스만으로 구성한 것도, 그리고 2008년에 열린 고별 컬렉션의 피날레에 등장한 레드 드레스가 가라바니라는 디자이너의 45년 역사의 막을 내린 것도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디자인의 정수가 바로 레드 드레스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