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살에 생애 첫 구두를 만들고 일생 동안 1만여 종류의 구두를 디자인한 슈즈 메이커 살바토레 페라가모. 작은 구두 공장에서 시작된 그의 이력은 할리우드로 이주한 이후 조금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는 발이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야간대학에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은 모방할 수 있지만 편안함을 모방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 이 장인은 집요하게 발의 아치에 대해 연구했고, 살아있는 동안 350개 이상의 신발 관련 특허를 얻었다(와인 코르크를 이용한 플랫폼 슈즈와 관련한 특허는 패션 역사상 최초의 특허였다). 세계 최초의 웨지힐과 패치워크 슈즈, 인비저블 슈즈, 오드리 슈즈 등 전설적인 신발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바라 슈즈가 탄생한 건 1978년의 일이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제공
바라 슈즈를 디자인한 사람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첫째 딸 피암마 페라가모였다. 둥근 앞코를 가진 낮은 굽의 신발, 바라의 신발의 발등은 보우로 장식했다. 보우는 원래 가죽 디자인이었는데 메시지가 잘못 전달되어 그로그레인으로 제작하게 되었고, 이 우연은 뜻밖의 행운으로 작용했다. 보우 장식이 훗날 간치니(말발굽 모양의 모티프)와 함께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상징이 된 것이다. 실력에 행운까지 더해졌으니 성공은 당연한 수순. 바라 슈즈는 전 세계적으로 1백만 켤레 이상 판매되었다(90년대에 서울 거리를 휩쓸었던 바라 슈즈를 떠올려보라!). 발이 매우 편안한데다가 우아한 디자인까지 갖춘 이 슈즈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건에도 성격이 있다면 비바의 성격은 이전 세대 슈즈의 단정하고 얌전한 숙녀 같은 느낌은 아니다.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조각 블록 형태의 힐은 당차고 당당한 이미지다. 어머머 숙녀라니 그게 웬 구시대적인 말이냐고, 내가 바로 페라가모의 새로운 주자라고, 함께 비바(이탈리아어로 ‘살아있다’라는 의미)!라고 외쳐나 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 카랑카랑 맑은 목소리로.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