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이야기는 중증의 불면증 환자로부터 시작한다. 1741년, 독일 드레스덴 주재의 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 그는 지독한 불면증으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고트리프 골드베르크라는 연주자를 고용해 매일 밤 자신이 잠들 때까지 클라비어(2단 건반의 쳄발로)를 연주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면제 대용으로 쓰일 수 있는 곡을 바흐에게 의뢰한다. 건반악기를 위한 단일작품 중에서 유례없이 긴 명곡은 그렇게 탄생했다.
모자 얘기인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웬 바흐냐고? 헬렌카민스키의 모자를 보면 나는 엉뚱하게도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떠올린다. 다수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자신이 궁정음악가가 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그리고 거금의 작곡료를 기꺼이 지불하는 카이저 링크 백작을 위해 바흐가 쓴 곡, 그리고
호주의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아이들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헬렌 마리 카민스키가 직접 만든 모자. 특별한 사람을 위해 만든 창작물이 어떤 힘을 갖게 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들이다.
(왼쪽) 헬렌카민스키 최초의 모자 ‘Classic 5'. (오른쪽) 헬렌 마리 카민스키. Ⓒ 헬렌카민스키 제공
헬렌 마리 카민스키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만든 모자에 가장 먼저 주목한 사람은 캔버라 마누카에 있는 한 작은 상점의 주인이었다. 헬렌은 어느 날 자신이 만든 모자를 그 가게에 두고 갔는데 그것이 그날 바로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었다. 상점의 주인은 그녀에게 장담했다고 한다. 오후 동안 5개를 팔 수 있겠다고.
그렇게 하나의 브랜드가 시작되었다. 브랜드 초창기부터
지속 가능한 최고급 천연 재료에 관심을 가졌던 헬렌은 세계 최고의 라피아가 재배되는 곳,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공예 워크숍을 설립한 것이 1985년의 일이다. 1990년에는 처음으로 핸드백을 선보였고, 1년 후 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 곧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으로 진출하게 되는 스토리. 멋진 성공스토리이지만,
그보다 내 마음을 끄는 건 브랜드가 일하는 방식이다.
헬렌카민스키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재배되는 야자수 나뭇잎만을 사용하며, 전통 방식을 계승해 여전히 수작업으로 모자를 만든다. 그런데 모자를 만드는 장인들을 직접 육성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소규모 커뮤니티와 협력하는 방식을 택했다. 50명 이상의 마을 지도자들과 각각 파트너십을 맺고 2천명 이상의 여성들을 훈련시켜 최고급 모자를 만드는 장인으로 키우는 것. 그들이 고급 기술을 배워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브랜드의 목표 중 하나다.
장인정신과 진정성, 그리고 친환경. 이 세 가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헬렌카민스키는 몇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재사용되었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
동물 복지에 관한 국제 규정을 지키는 것, 나무를 해치지 않고 라피아 섬유를 채취하는 것, 튼튼한 제품을 만들어 제품의 성능과 수명을 연장시켜 궁극적으로 환경을 덜 훼손하는 것.
모든 장인에게 합당한 근무조건과 처우를 제공하는 것, 그리하여 현대판 노예제도가 없는
공정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 등등. 스스로 내세운 것 치고는 매우 엄격한 기준들이다.
호주에 사는 한 엄마가 만든 모자에서 시작된 스토리는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엄마들의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좋은 물건을 좋은 방식으로 만드는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증명하고 있다.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